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깨닫는마음씨 Mar 03. 2024

세상에 없던 마음공간을 만들어보자 #4

"넷째 날"




  주방공간의 경계가 세워졌다. 아늑하고 든든하게 느껴진다.


  나무로 만들어진 기본구조 위에 석재를 붙일 것이고, 또 담쟁이과의 조화식물을 위쪽에서 많이 내린 뒤, 군데군데 작은 들꽃들이 틈새에서 피어나있는 것처럼 연출할 것이다.


  와인셀러, 주류냉장고, 에스프레소머신 등등 새로 들여올 장비들도 충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주방을 넓게 구성했다.


  메인메뉴는 역시 비프스튜다. 그것도 아주 클래식한 맛의. 예전에 카페 어웨이크닝에서 팔아보면서 제법 인정받았던 오리지널 레시피다. 그 맛의 원류는 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7세 때 함께 다니던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그때 그 시절의 비프스튜다. 혀가 기억하는 맛을 따라 대충 재현해보았더니 비슷한 결과물이 나와 레시피로 삼았다.


  그 외의 메뉴구성은 마녀의 고양이들에게 맡기고 있다. 나는 분명 어떤 것에 대해 고집을 갖고 있지만 그 고집을 최소화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걸 배우지 않으면 사회적 생활이 너무 힘들어지더라.


  아무리 내 입장에서는 맞고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사이의 만남을 위한 매개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이라면 만남을 위한 공간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어떻든 내가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해서다.


  나는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하고 싶다.


  그 아름다움이 또한 다른 이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내는 일에 일조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원래 상대적 비교재가 아니다. 아름다움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몹시 유치해진다. 가장 유치한 것은 많은 이들이 자기를 아름답다고 평가해주니 자기는 정말로 놀라운 수준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다.


  나는 나다, 이 말은 나는 나를 향해서만 열려 있는 어떤 고유한 아름다움을 보도록 되어 있다는 말이다.


  모든 인간은 예술가로 태어나는가?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그 자신이 아니라면 보이지 않고 또 세상에 드러날 수 없을 그러한 아름다움들이 있다.


  '의미'라는 표현은 바로 이 지점을 시사한다.


  의미롭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뜻이다.


  내 삶에는 의미가 있었는가, 이렇게 묻는 이는 자기 존재의 아름다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내 삶은 혼돈투성이였다. 한 번도 말쑥한 석고상처럼 완벽한 형상으로 정리된 적이 없다.


  아무리 심리학이라는 분야를 오래 공부했어도 나는 아직도 마음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정의할 수가 없다. 깊이 파면 팔수록 그 일은 더 어렵기만 하다. 이렇게 말하면 반드시 거짓이 생겨나며, 거짓을 없애기 위해 이제 저렇게 말하면 다시 새로운 거짓이 생겨난다.


  나는 정리하는 일을 포기했다. 이 말은 삶의 소재들이 완벽하게 정리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포기했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적당히 대충대충 둔 채로, 그때그때 필요한 맥락에 따라 기동할 유연성만을 남기려 한다.


  가벼운 몸으로 있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 모습은 아직 덜 지어진 느낌 같기도, 또는 무엇인가 완성되었던 것이 적당히 파괴된 느낌 같기도 하다.


  내가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풍경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이다.


  그와 같은 혼돈을 정말로 아름답다고 느낀다.


  위트가 있다.


  그래서 자유가 있다.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주방 안쪽에서 바라본 풍경이 묘하게 아름다워보인 것은 거기에 임의적인 경계를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경계의 이쪽편에서 나는 이 모든 것이 실은 대충대충이면서도 신비한 마법처럼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모습을 목도한다.


  이런 것이 세상이었고, 우리들의 삶이었다.


  그것은 정녕 아름다운 혼돈이었다.


  자유 그 자체였다.


  나는 인간이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라는 이 사실을 고집하며, 이에 대해 양보할 마음이 전혀 없다.


  아무리 최소한도로 줄여도, 인간은 절대적으로 자유롭다.


  그 근원적 경계가 아늑하고 든든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태초에 주방이 있어 철학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넷째 날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 없던 상담소를 만들어보자 2nd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