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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Mar 07. 2024

세상에 없던 마음공간을 만들어보자 #8

"여덟째 날"




  이제 테이블을 짠다.


  테이블 안쪽으로 공간을 둔 뒤 조명을 설치하고 유리상판을 덮어, 테이블 하나하나가 작은 전시공간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몇 개의 내부는 테라리움의 형식으로 꾸미고, 또 어떤 테이블에는 체스판 시트지를 유리에 붙이기도 할 것이며, 그외 다양한 소품들이 각각의 개성있는 느낌을 살려 전시될 것이다. 테이블을 골라 앉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공간을 만들기로 구상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그림은 사람들이 은은하게 빛나는 테이블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마음을 들여다보듯이 그 빛 사이로 예쁘고 사랑스러운 어떤 형상들을 감상하며 행복한 미소가 떠오를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마음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말하고 싶은 전부다.


  우리의 삶은 빛이고 기쁨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개 이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장 막는 것은 놀랍게도 자기 문제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남들을 걱정하며 사는 이들이 자신을 빛과 기쁨의 삶으로부터 추방하곤 한다.


  나는 고 신해철 님이 FM음악도시의 마지막 방송에서 했던 말을 아직 기억한다. 어딘가에 찾아보면 그때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체 왜 사는지, 삶에 대한 물음을 갖고서 철학과에 진학하고 또 음악활동을 하며 찾아왔던 그 대답을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며 신해철 님은 이렇게 말했다.


  실은 너무 단순했다고.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내가 마음이라는 것을 보는 관점과 나의 상담관도 이러하다.


  상담자는 남들을 걱정하며 남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이가 아니다. 그렇게 혼자 불행한 고뇌를 싸안고서 자신이 다른 이들을 잘 성장시키고 키워내겠다고 다짐하는 어떤 비장미를 띤 유사부모 같은 것이 아니다.


  상담자는 자신의 행복을 통해, 행복이라는 것이 정말로 인간에게 가능하다는 사실과, 바로 내담자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으며 또 행복해도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안내하는 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행복해져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는 상담자다.


  그래야 그는 행복을 인간의 당연한 현실로서 증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이렇게 사는 것이지요. 하루하루 저 또한 버텨가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도리로서 이 고된 삶을 다만 살아낼 뿐입니다. 후훗."


  이렇게 비극적 자기도취의 윤리에 빠진 이들은 제발 상담자가 되지 마라. 소설가가 되면 된다.


  작가는 쉬이 행복해지거나 구원받아서는 안되는 운명.


  그러면 작품을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아주 통속적인 표현으로, 우리는 배부른 돼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것인가를 요구받곤 한다.


  이것은 행복은 물질적인 것인가, 또는 정신적인 것인가에 대한 프레임 위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이 프레임 자체가 기만적인 함정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나'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경험이다. 절대주관의 경험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인가, 정신적인 것인가?


  마음의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이 행복감이다. 그런데 마음의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바로 몸의 뜻이 아름답게 펼쳐졌다는 것이다. 꽃이 피는 일과 같다. 애초 분리될 수 없다. 몸이 마음이고, 마음이 몸이다.


  그래서 온전성이라고 부르며, 나는 온전한 이 경험 자체다. 행복의 순수경험이다.


  이렇듯 우리는 이 삶을 순수하게 경험하고자 이 세상에 왔으며, 결국 다 행복의 소재인 것이다.


  이 사실이 망각되어 있을 때 그 회복을 돕는 것이 '낯설게 하기'의 감수성이다. 이것이 숲의 은유다.


  숲으로 간다는 것은 낯선 것과 조우한다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낯선 것과의 만남은 바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 된다.


  우리에게는 아마도 '나'라고 하는 것이 가장 낯선 것이어야 하리라.


  물질? 정신?


  그렇지 않고 그냥 신비다.


  인간이  우주에 출현했다는 사실이 신비며, 인간인 내 바로  구체적 생활환경에서 그렇게 나로 살아갈  있다는 사실이 신비다.


  행복은 신비를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감에 따라 더욱 자신의 것으로 느껴지는 것.


  행복 자체가 신비의 감각이다.


  이런 내가 행복할 수 있다니.


  이런 나도 행복해도 된다니.


  마음은 이미 다 눈치채고 있었다.


  행복에 눈뜬 마음을 위해 만든 곳, 바로 이 마음공간이다.


  어떻든 숲의 감수성이다.


  중앙공간만이 아니라 각각의 방들도 조금 더 그런 느낌이 풍길 수 있도록 구성하려고 한다. 그런 마음을 담고자 하는 것이다.


  여덟째 날, 물질도 정신도 부족한 나는 마음을 쓰고 있었다. 마음만은 원없이 쓸 수 있어서, 살아가는 일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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