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치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담이니 심리학이니
하는 따위의 일들 말입니다
또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거나
마음을 배우거나
하는 등의 일들 말입니다
그런 하등의 무가치한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슨 자조적인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도 아시겠지만 저는
염세주의라면 딱 질색입니다
자신의 외로움을 잊고자
나날이 감동적인 척
가치있는 일을 하는 척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척
열광에 취해
도취에 빠져
자신을 먼저 선동하던
그 모든 일은 무가치합니다.
마음을 잘 보는
상담자가 내담자를
변화시켜줄 수 있다고요?
개미는 하늘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내담자는
자신이 변화하고 싶을 때만
스스로 변화합니다.
자신이 세상을
더 좋게 바꾸어가고 있다고요?
깨어있는 좋은 사람들이 뭉쳐서
그 일을 실현해내고 있다고요?
그런 내용의 만화도 있었습니다
소설도 많았고 드라마화도 되었습니다
그런 축제가 열리던 시절도
있었을 겁니다
축제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공터에 머물러만 있던
그 아이들은 이제
집으로 가야 할 때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각자의 가슴에서 경험될 무언가가
처음부터 그들이 배워야 했던
바로 그것임은 분명합니다
어떤 역할에 몰입해
어떤 가치부여를 통해
어떤 좋은 사람이 되려 했든
그것은 단지
홀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 모든 가치를 뒤로 하고
그 모든 가치 너머로
계속 펼쳐지고
계속 상승하는
아주 넓은 하늘의 풍경
실은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자신은 홀로서도 언제나
문제없는 자신이었을 뿐입니다
홀로라서
하늘은 이렇게나 커다랗던지요
그대여
홀로라는 것은 이렇게나
커다란 것이었는지요
혼자가 되었을 때야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돌아가는 길에는
누구나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자신의 크기를 다시 찾고 싶어서
그 크기가 그리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무가치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지만
처음부터
부족한 것도
결여된 것도 없는
자신이었을 뿐입니다
그런 의미만이
이 무가치한 모든 것 위에 내리며
계속 계속
반짝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