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자신을 위해 힘을 써라"
이 삶은 누구나 자신만의 여행을 온 것이며, 자신이 경험하고 싶은 것을 경험한다.
이 사실을 흐리는 것이 각종의 게임규칙이다. 마치 우리가 동일한 무대 위에 놓여 있으며, 같은 퀘스트를 함께 깨나가는 입장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게임규칙은 구성된다.
사회는 그 자체로 게임이다. 무엇인가 공통의 과제 같은 것을 출제한 뒤 모두가 그 해답풀이에 봉사하도록 만든다. 국가니, 민족이니, 이념이니 등의 것들이 다 그러한 게임의 장치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 자신의 힘을 우리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게 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또는 "힘이 있는 이는 약한 이를 위해 그 힘을 써야 한다." 등의 말들을 살펴보자. 그 요지는 단순하다. 자신을 위해 힘을 쓰는 일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힘은 게임에 투입되어야 한다고 권장된다. 그래야 게임 자체가 지속될 수 있으며, 게임을 운영하는 이들이 최대치의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의 운영자들은 게임에 힘을 많이 투여한 이들, 곧 게임의 고인물 플레이어들에게 그 힘을 일정 부분 돌려줌으로써 어떠한 공공선의 환상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모두의 이득인 것 같은 착각을 유발시킨다. 게임에 성실하게 봉사한 당신의 그 놀라운 힘으로 저 약한 하층계급의 뉴비들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식이다.
그래서 상기한 표현들은 실은 힘에 대한 어떤 자아도취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고 있기도 하다.
자신은 형편없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그런 자신이 다른 누군가를 도울 바로 그 힘이 있었다는 사실에, 바로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곤 하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착시효과인지.
힘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있었다. 그렇기에 게임에 힘을 투입할 수도 있던 것이다. 힘이 없는 것처럼 오해된 것은 자신을 위해 그 힘을 쓰는 일이 봉쇄당했기 때문이며, 그 대신에 게임을 지속하는 일에 그 힘을 다 써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게임 때문에 힘이 없어진 이가, 게임으로부터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힘을 적게나마 돌려받은 뒤, 이제야 자신이 힘있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도취에 빠지게 되는 이러한 현실은 대체 얼마만큼의 착각을 담보로 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도취가 생겨날 때는 거기에 결핍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힘에 도취되어 있는 이는 실은 힘의 결핍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핍의 핵심을 이해해야 한다.
자기 주위에 아무리 물이 많더라도, 자신이 그 물을 마실 수 없는 이는 결핍을 느낀다.
이처럼 모든 결핍은 자신이 자신을 위해 힘을 쓸 수 없다는 그 상황에서 기인한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위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면, 어떤 올바른 언어들의 꼬리표가 당신에게 붙는다 해도, 실제의 당신은 늘 충족되지 않는 결핍감에 시달리며, 불행하다.
차라리 이렇게 이해하는 일은 유익하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면, 그 책임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책임지는 일에 대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또 힘이 있는 이가 약한 이를 위해 그 힘을 써야 하는 것이라면, 여기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약한 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면 된다.
당신의 삶은 우리 모두를 위한 어떤 공통의 게임판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만의 여행길이다. 당신의 여행에 써야 하는 그 힘을 다른 곳에 쓰고 있다면, 그 여행길은 고되고 힘들기만 할 것이다. 어쩌면 가기 싫어질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렇게 주저앉아 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사회라는 이 게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가상공간의 게임으로 도피했던 것일까.
당신의 힘은 원래 어디에 쓰여야 했던 것인지를 기억해보자.
당신이 경험하고 싶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 당신은 이 여행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경험하고 싶은 것을 잘 경험하는 바로 그 일, 거기가 당신의 힘이 정말로 투입되었어야 했던 자리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자신을 구원하는 일에 자신의 힘은 온당하게 쓰여야만 한다는 뜻이다.
자신을 정말로 살아있게 하는 바로 그런 일에.
모두는 정말로 각자 자신의 여행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게임에 많은 힘을 제공했다면, 그래서 게임의 고인물 플레이어 같은 것이 되어 있다면, 그런 이에게 다른 이들의 모습은 흡사 자신이 구원해주어야 할 어떤 결핍된 모습 같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게임이 만든 착각이다. 더 정확하게는 그 모습이 바로 게임에 힘을 뽑아먹혀서 힘이 없어진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지금 그렇게 결핍에 시달리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약한 자의 모습을.
왜 그이를 돕지 않는가?
그를 구원하려고 당신은 이 여행길을 떠나온 것일텐데.
오직 그만을 간절하게 살리고 싶어서, 당신은 이 긴 여정을 시작했던 것일텐데.
잘 경험한다는 것은 잘 살린다는 것.
당신 자신을 살려라. 정말로 살아있는 것으로서. 당신을 살아있게 하는 일에 모든 힘을 다 써라. 그럼으로써 당신 자신이 가장 살아나야 한다.
그렇게 당신이 살아나게 되면, 힘도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다시 또 당신 자신을 향해 투입가능해지면, 그만큼 당신은 더 살아날 것이며, 힘도 더 충천할 것이다. 이 위대한 자력발전의 일은 바로 끝없는 당신의 여행길을 위한 것. 그 성공과 완수를 위해, 또 당신의 건강과 안녕 그리고 행복을 위해.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당신의 삶은 당신만의 여행길. 누구나가 그렇다.
당신을 살아있게 하는 어떤 느낌도 받지 못하는 것들로부터 당신은 빠르게 철수해, 오직 당신을 살아있게 하는 것들에만 당신의 힘을 다 쓰면 된다. 그러면 당신을 둘러싼 모든 일이 다 살아나게 된다.
이를테면, 당신이 길을 가다 목이 말라, 당신에게 무척 반갑게 다가오는 길가의 개울에서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는 또 경쾌히 발걸음을 옮기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 장면은 길가에 목이 말라 쓰러져있던 이들에게도 목격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개울에서 물을 떠마시면 안된다고 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게임규칙이었다. 그러한 이들에게 당신의 모습은 하나의 빛이다. 한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해도 된다는 그 위대한 역사의 확증이다.
살아나게 된 것은 이처럼 더 많은 것을 살아나게 한다.
자신이라는 인간을 위해 이롭게 쓰인 힘은 이제 인간 모두를 위해 이롭게 쓰일 그 방향성을 결정짓는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당신을 위해서만 살아라.
당신의 힘은 당신을 정말로 살아있게 하는 그 일을 위해서만 써라.
큰 힘에는 그 큰 힘을 자신을 살리기 위해 쓸 큰 책임이 따르며, 힘이 있는 자는 게임규칙들에 착취되어 힘이 약해진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그 힘을 써야 한다. 가끔 당신이 여행길에서 이 새로운 격언이 써있는 이정표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든 당신이 당신의 길을 잘 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걱정할 필요없다. 당신이 잘 가고 있다면, 인간도 잘 가고 있다. 인간을 정말로 살아있게 하는 그 참된 힘의 주인인 바로 당신으로 말미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