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심리학으로 다시 쓰는 십계명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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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는 나 외에 다른 것을 섬기지 말라.


나로 태어나 나로 죽게 될 이 한 번뿐인 삶, '나'라는 것을 경험할 이 한 번뿐인 기회인 '나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나밖에 없다. 나라는 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알아보고, 그렇게 나를 존중하며, 또 그런 나만을 의지할 때, 우리는 심리학적으로 가장 건강한 삶을 살게 된다. 다시 말할 수 있다. 이 삶이라고 하는 것은 '나'라는 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섬겨볼 기회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다 각자의 자신, 바로 '나'로 이 세상에 온 것이다.




2. 우상으로 실체화된 대상을 숭배하지 말라.


상대적인 세계에서 최고의 비교우위로 망상된 그것이 우상이다. 그런 망상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물에 투사해서 실체를 가진 우상으로 공고화한 뒤 그것을 숭배하는 일은, 자신을 점점 더 상대적인 비교와 열등감의 세계로 추락하게 만든다. 그렇게 자신의 상태가 열악해지는 만큼 더욱 우상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비롯된다. 자기가 만든 망상에 힘을 부여한 뒤 그 힘에 치이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숭배하는 그것이 자기가 만든 우상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그 힘을 되찾아오라. 그것이 대단한 것처럼 착각되던 상대적인 세계로부터, 진실로 내가 귀한 절대적인 삶으로 돌아오라.




3. 진리[신]를 남용하지 말라.


정의, 도덕, 윤리와 같은 것에 절대적인 진리의 권위를 부여하여, 곧 신의 이름을 부여하여, 그것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하지 말라. 특히 오늘날 정의를 남발하며 자기가 신이라도 된 양, 또는 신의 심판을 대신하는 히어로라도 된 양 행세하는 사기꾼들을 경계하라. 고전적인 성서에서는 이러한 이들을 돌로 쳐죽이라고까지 말했다. 정의를 외치는 이들과 빠르게 멀어질수록 우리 삶은 참되게 선해지고 건강해진다.




4. 쉼을 기억하며 지켜라.


쉬어야 한다. 심리학의 핵심은 어떻게 잘 쉬는가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쉼을 통해서만 자라나며 그 빛이 환해진다. 우리가 '나'로 돌아오는 시간도 이 쉼의 시간이다. 혹자들은 쉬면 죄책감이 느껴진다고 하지만 거꾸로다. 쉬지 못하니 죄책감이 계속 생겨나는 것이다. 죄책감이란 자기가 존재해선 안된다는 그 감정. 이것은 자신의 존재가 지금 약화되어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쉬어야 존재가 그 힘을 스스로 다시 충전할 수 있다. 쉼 자체가 존재의 근본상태이기도 하다. 쉼을 기억하고 지킨다는 것은 곧 존재를 기억하고 지킨다는 것. 이것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의 참의미다




5. 생명을 귀하게 대접하는 자를 대접하라.


부모는 신이 낳은 생명을 먹이고 키우면서 귀하게 대접하는 이. 그렇게 모든 부모는 다 남[신]의 자식을 귀하게 대접하는 아름다운 이들이다. 결코 자기의 것이 아닌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일, 이것은 인간의 원형일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자기의 뜻대로 소유할 수 없는 자신의 목숨을 살아가는 존재인 까닭이다. 결국 이러한 입장에서 모든 인간은 그 스스로가 자기의 생명을 귀하게 먹이고 키우는 부모의 입장과도 같다. 그러니 그러한 자신을 귀하게 대접하라. 생명을 귀하게 대접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귀하게 대접하는 그 일이 곧 생명을 귀하게 대접하는 일. 신이 가장 기뻐하시는 바로 그 일이다. 자신의 자식을 그렇게 아낌없이 사랑하고 있는 이를 보며 신은 큰 축복을 내릴 것이다.




6. 가스라이팅하지 말라.


물리적으로 인간의 육신을 죽이는 일과, 심리적으로 인간의 인격을 살해하는 일은 동일한 무게다. 가스라이팅은 자신이 신의 흉내를 내며 인간의 인격을 지배하고 조종함으로써 결국 그 인격을 살해하려는 일이다. 이 인격살해의 일은 양쪽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신의 흉내를 내던 이도 실은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인격을 살해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인간임을 부정하고 신인 척하는 그 일이 곧 가스라이팅인 것이며, 이것은 인간이 인간 스스로의 자리를 가장 파괴하며 저주하는 방식이다.




7. 선동하지 말라.


선동은 정신적 간음이다. 사이비교주들은 선동을 통해 NTR의 현실을 이룬다. 이것은 자신의 엄마를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유아적이고 미숙한 정신상태에서 야기된다. 자신의 선동을 통해 다른 이의 애인 및 배우자가 원래의 파트너 대신에 자기를 선택해주기를 꾀하는 이 NTR의 일은, 자신의 엄마가 다른 형제자매 또는 아빠 대신에 자기만을 그 품에 안아주기를 바라던 그 오랜 소망이 굴절된 사회적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결국 선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현실이란 총체적인 미성숙의 현실이다. 선동하는 주체와 동일한 유아의 상태만이 사람들 사이에서 끝없이 감염되어가는 것이다. 불건강한 심리학적 사회의 모습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8. 남의 삶을 도둑질하지 말라.


남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 것이 도둑질이다. 오늘날 SNS 세상에서는 삶마저도 도둑질하려 한다. 자기가 그런 인물인 것처럼, 남의 삶을 도둑질해 자기의 삶으로 위장하려 한다. 자기계발서라는 이름의 불쏘시개들에는 이 삶의 도둑질이 특별한 성공의 비법인 것처럼 소개되는 일도 허다하다. 도벽은 분명 정신병과 관련된 것인데, 삶의 도둑질은 그 중에서도 중증이다. 그렇게 해서 잃어지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병식 자체가 없기에, 이 정신병의 수위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도둑질당한 남의 삶도 파괴시키고 도둑질한 자신의 삶도 상실시키는 이 일이 초래하는 것은 모든 삶의 파괴, 곧 지옥행 특급열차에 모든 것을 강제로 함께 태우려는 악마의 사업과도 같다.




9. 거짓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말라.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우리가 만드는 것은 이야기다. 거짓의 이야기를 만든 뒤 그 이야기가 진정한 자신을 증언해준다고 믿는 것이다. 정직하게 거울을 보는 이에게는 어떤 이야기도 필요없다. 거울에 비치는 그 모습 자체가 진실된 증언이다. 개인의 심리학적 건강성을 평정하는 핵심적인 기준은, 개인이 얼마나 그 자신을 사실적으로 받아들이는가다. 곧, 거짓의 이야기를 꾀하지 않는 만큼 그는 심리학적 안녕 속에 있다. 오늘날 최대치의 거짓은 도덕이라고 하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자신이 얼마나 선하고 순결하며 정의로운 존재인지의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것이 최대치의 병이다.




10. 네 이웃과 비교하지 말라.


이웃의 것을 탐내게 되는 것은 지금 이웃과 자신을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열등감과 절망의 지옥에 떨어진다. 그리고 결국 이웃의 것을 빼앗으려 함으로써 이웃 또한 동일한 지옥에 빠트리고자 하게 된다. 이웃과 일부러 비교하려고 하는 이유는 도파민의 자극을 받기 위해서다. 대립과 투쟁,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가 도파민착즙을 위해 최적화된 구조를 만들어준다. 이처럼 도파민중독은 결국 상대성중독이다. 절대적인 자신의 삶을 일부러 상대적인 열등감의 세계로 추락시킨 뒤 그 대가로 도파민을 공급받는 것이다. 이런 것을 지옥의 노예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다른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도파민보다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자신의 삶이며, 그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존재다. 그런 귀한 자신을, 자신만큼이나 귀한 자신의 이웃과 비교하지 말라. 다만 함께 온전하라. 그렇게 최대치로 함께 건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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