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기로 한 것들의 도시"
서울을 살아간다는 것은 돈을 벌기로 한 일이다. 순수하게 돈을 버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은 서울을 살아가는 필요다.
돈을 번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을 안하기로 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일이란 이러하다. 가만히 차분하게 있으면 자신이 도덕적으로 잘못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는 어떤 정신적 노새처럼, 자기가 늘 이렇게 세상을 위해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는 그림을 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갈아넣으며 쇼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기가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인 것처럼 남들도 자신을 그러한 위상으로 인식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위해 힘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일에 쓰고 있는 상태다.
그러니 집중되지 않는다. 늘 산만하며, 에너지의 효율이 떨어진다.
이것은 지금 순수하게 돈을 벌려고 하는 상태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권위라고 하는 것을 얻으려는 상태다.
다시 부연해보자.
서울을 살아간다는 것은 돈을 벌기로 한 일이다. 반면,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권위를 얻기로 한 일이다. 이 둘은 유사해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일이다.
도시에서 사는 일이 자신의 어떤 특별한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 같은 권위가 된 것은 근대의 잔재다. 시민(citizen)과 도시인(bourgeoisie)을 여기에서 구분할 필요는 없다. 그 둘은 어떻든 간에 혈통에 준거해 권위를 얻은 왕이나 귀족과는 다르게, 자신의 힘으로 도시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 이들이며, 그것이 그들의 권위가 되었다.
그러니 도시에서 살아가는 일은 필연적으로 권위의 문제와 연합될 수밖에는 없게 된 것이다. 나아가서는 이제 자신을 권위있는 존재처럼 보이려고 하는 이가 도시에서 살고자 하는 상황을 낳았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어떤 열등감의 문제를 상정해볼 수 있다. 도시는 수단이고, 권위는 그 목적이다.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한.
이 경우 순수하게 도시를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다만 도시라고 하는 수단 위에서 살아갈 뿐이다. 권위의 획득이라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시를 살아갈 그 필요를 위해 힘을 쓰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가는 권위있는 이로 보이기 위한 일에 힘을 쓰게 되는 그 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꾸만 쓸데없는 일만 펼쳐진다. 에너지 낭비의 쇼를 하게 된다. 수단은 소비되어야 하는 것이라서다. 수단을 더 많이 소비해야 목적은 달성될 수 있다고 가정된다. 이처럼 도시는 단지 소비를 위한 공간으로 전락한다. 자신의 몸을 소비하고, 자원을 소비하며, 시간을 소비하고, 당연히도 돈을 소비한다. 실은 다 낭비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도시에서 살아가는 일은 돈을 낭비하는 일이 되고만 상황에서, 도시를 살아가고자 순수하게 돈을 버는 현실은 더 멀게 경험된다. 그게 무엇인지 감을 잡기에도 어려워진다.
그러니 다시 기억해보자.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에 정직할 때, 우리는 자신의 힘을 써서 돈을 번다. 뒤집어 말하면, 돈을 번다는 것은 자신의 힘을 쓴다는 것이다.
섹스라는 단어만큼이나 돈이라는 단어에도 온갖 잡다한 것들이 다 덕지덕지 붙어있게 되어서 우리는 헷갈릴 수 있지만, 그 본질은 분명하다. 순수하게 돈을 번다는 것은, 순수하게 자신의 힘을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생명다운 일이다. 모든 생명은 자신의 힘을 충실하게 써서 살아가며, 그럼으로써 미래로 자신을 이어간다. 거기에는 어떤 여분이 없다. 쓸데없는 일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집중되며, 자연스럽게 분주한 요동이 멎는다.
이런 것을 어떤 '몰입'의 현상이라고도 부를 것이다. 우리가 집중해서 자신의 힘을 쓰고 있을 때, 우리는 동시에 무척 차분해지며 일종의 쉼과도 같은 상태가 된다. 힘을 쓰면서 쉼이 일어나는 그 역설이 성립되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집중해서 자신의 힘을 쓰지 못할 때, 우리는 계속 애먼 힘만 쓰다가 지치게 되곤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도시의 삶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도시를 사는 일이 아니라 도시에서 사는 일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다. 도시라는 지정학적 품목을 소비만 했을 뿐, 도시라는 삶을 살지 않았으니, 그는 아직 도시를 모른다. 도시가 얼마나 살아있는 것인가를.
도시에서 어떤 끝의 냄새를 맡는다면, 그것은 자신이 끝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힘을 낭비한 결과다. 만약 자신이 순수하게 자신의 힘을 쓰고 있다면, 거기에서 맡을 수 있는 것은 생명의 냄새다. 자신이 지금 하나의 생명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도시에도 생명이 가득 찬다. 살아있는 도시가 된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는가.
우리의 삶의 터전은 우리가 더욱더 살아있는 존재로 살려고 그것을 살기로 한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우리의 힘을 써서 돈을 번다는 것은 정말로 살아있는 것으로서 살아있고 싶어한 우리의 필요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있는 척하기 위해 얻으려 하는 권위와는 정반대편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권위는 애초 죽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박하다. 거기에는 생명이 자기 자신의 호흡을 할 때 자연스럽게 발산되는 어떤 고귀함이 없다.
자신이 돈을 번다고는 하지만, 또 실제로 많은 돈이 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천박하게 드러나는 이들은 왜 그런가? 이들에게는 도시에서 사는 일이 수단이듯이, 그 매개인 돈도 당연히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이들은 말은 돈을 벌고자 한다지만 실은 권위에만 꽂혀 있는 이들이다.
자기 부모의 돈으로 부모가 가진 건물에서 가게 같은 것을 차리며 쇼를 하는 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쉽다. 이들은 진실한 자신의 필요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쇼를 하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잘나가는 존재이고 대단한 인물인지를 연출하고 싶을 뿐이다. 남들 보기에 그러한 권위를 가진 자로 보이려는 것이 이들의 유일한 목적이다.
왜 그런지는 분명하다. 자신에게는 아무 역량이 없어서다. 자기의 힘으로 정직한 자기의 필요를 채우며 스스로 충족하는 그 생명의 방식으로,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서다.
이러한 이들은 주민등록증의 주소가 서울로 기재되어 있더라도, 서울을 살아본 적이 없다. 곧, 자신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다만 서울 위에 놓여 있을 뿐이다. 자기 삶의 터전 내지 그 근거와 분리되어 그 위에 공허하게 떠있다. 뿌리가 없는 나무처럼 표류할 뿐이다. 그러니 그러한 삶은 불안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불안하니 다시 또 집착하게 되는 것이 권위다. 이러한 이들이 결국 자기가 자기 힘으로는 살지 못해 생겨난 불안을 권위로 해결해보려는 그 방식은 어떠할까?
늘 투쟁심을 불태운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그것과 적대하며 그것에 대해 승리하려고 한다. 자신이 적으로 상정한 그 대상에게 승리하게 되면, 자기가 권위있는 존재로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라이벌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에이스 축구선수처럼 사람들이 자기에게 박수갈채를 보내줄 것만 같다.
이것을 저 유명한 발달심리학의 용어로는 '상상의 청중'이라고 부른다. 청소년기에 반드시 나타나는 증세다. 자신의 힘을 써서 살지 않고, 자기 부모에게 의존해 권위를 얻으려는 이들은 그 심리가 미발달되어 있고 유치한 까닭에, 몸이 성인이 되어서도 이러한 증세를 경험한다. 바로 이 '상상의 청중'에게 잘 보여서 권위를 얻으려는 그 발상이,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부다.
능력도 실력도 없으면서 고집만 센 그 모든 유아적 불만의 표정을 청중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꾹 억누르고는, 하얗고 선량한 표정을 위장해서 남들에게 착한 척하려는 이 일이 이들의 아주 전형적인 행동양식을 형성한다. 바로 그 위선의 표정으로 실은 자기보다 잘나보이는 이들을 적대하며 그 내면에서는 늘 투쟁의 불길만을 부글부글 끓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에는 이러한 표정으로 살고 있는 이들이 많다. 표면적으로는 선한 표정을 지으나 그 내면에는 타인을 짓밟으려는 악의로 가득찬 이들.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권위를 획득하려는 유치하고 천박한 이들.
서울이라는 곳이 원래 이렇게 삭막하고 황폐한 시공간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서울을 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곧, 서울을 자신의 삶으로 살지 않아서 이 일은 생겨난다.
다시 말하지만, 서울을 산다는 것은 돈을 번다는 것, 자신의 힘을 순수하게 쓰며 산다는 것이다. 하나의 생명으로서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그 삶을 사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자신의 삶을 위해 자신의 힘을 충실히 쓰는 현실은 단 하나만을 의미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이다.
쓸데없는 것은 다 빼고 그렇게 자기 자신의 삶만 남기기로 했으며, 바로 그것 하나만을 위해 집중하는 그런 사랑을 한번 해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순수한 마음.
서울을, 바로 자신의 삶을 자신이 살고 싶은 아주 사랑스러운 것으로 꿈꾸고 있던 그 마음이다.
서울을 살아가고자 돈을 벌기로 했다는 그 사실에는 이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으며, 이 마음 자체가 의미롭다. 그러니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도 의미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서울을 살아가는 의미. 우리 자신의 사랑이 이 도시를 의미의 빛으로 가득 채워갔다. 살아있는 그 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