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시절 #1

"나는 중생이 될 것이다"

by 깨닫는마음씨




"나는 모든 사람이 될 것이다. 즉, 나는 죽을 것이다."


보르헤스가 『알렙』에서 말한 이 구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은 중생(衆生)의 의미 그대로다. 그 말이 맞다. 그것은 중생(重生)의 의미 그대로다.


불교에서는 중생(衆生)이라고 쓰고 '모든 생명'을 뜻한다. 기독교에서는 중생(重生)이라고 쓰고 '귀한 생명'을 뜻한다.


그리고 이 두 의미는 실은 전적으로 같은 것이다.


모든 생명을 귀한 생명으로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보르헤스처럼 말하리라. 우리 자신은 모든 생명이 될 것이라고, 곧 죽을 것이라고.


레비나스가 하이데거에게 반동한다고 하지만, 그가 타자의 존귀함을 상기시키는 주요한 소재는 그의 스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이데거가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우리 스스로에게 유한성의 자각을 촉구한다면, 레비나스는 직접적으로 우리의 눈앞에 실례를 제시한다. 구체적인 타자의 얼굴을 들이밀며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죽일 수 있겠습니까?"라고.


중생(衆生)이 중생(重生)으로 깨어나는 순간이다.


중생(衆生)이 부처임을 깨닫는 순간이며, 죄인이 중생(重生)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이처럼 귀한 생명으로서 우리 자신을 바로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모든 생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죽어갈 것이, 그러니 지금 이순간의 삶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그래서 중생의 시절이다.


우리의 이 삶이란.


중생을 살아갈 기회, 또 중생이 되어볼 기회. 봄날의 꽃향기를 누리고, 가을밤의 달빛을 누리듯이, 우리는 중생을 누리고자 삶이라고 하는 이 귀한 시간을 얻었다.


좋은 시절이었는가?


사무치게 아름다웠는가?


사랑한다고 넘치도록 많이 말해보았는가?


그러고 싶어서, 우리는 다시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이, 아니 우리가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지금이순간이 바로 중생의 시절임을.


나는 중생이 될 것이다. 즉, 나는 죽을 것이다.


그러니, 이 삶이여,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이여.


영원하리라.


끝없이 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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