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함의 의미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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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괜찮다."


우리는 이것을 온전함의 의미로 여깁니다.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라는 표현은 '존재 그 자체로'라는 표현과 같습니다.


존재의 반대말은 전통적으로 행위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존재란 분주한 행위가 멈추어진 가운데 비로소 발견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한 존재의 특성은 가장 완벽한 것입니다. 행위로 인해 생겨난 무수한 갈등이 사라지고 영구한 평화를 찾은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유지되는 조형물과도 같습니다.


즉, 이 경우 존재는 정지해있는 명사(名詞)입니다.


'있는 그대로'라고 하는 것은, 이 정지해있는 존재의 상태입니다.


때문에 온전함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존재의 상태가 되는 것, 곧 동작이 멈춘 명사가 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명사가 되어야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괜찮은 상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표현은 분명 중의적입니다. 명사(名詞)는 명사(名士)입니다. 명사(名士)는 모두가 알아주는 이상적인 상태를 성취해, 그렇게 유지될 것이라고 상정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한 존재의 상태, 곧 명사(名詞)를 얻기 위해, 명사(名士)가 되기를 추구하곤 합니다.


아주 쉽게, 명사(名士)인 연예인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명사(名詞)적 모습입니다. 그가 혹여 변하더라도, 우리가 충분히 추적할 수 있는 예상범위 내의 변화이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그를 계속 사랑할 수 있으며, 그 또한 우리를 배신하지 않고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까닭입니다.


이처럼 명사(名詞)란 사랑의 증명으로 간주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의 자기증명으로서 늘 요구되어 온 덕목입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러한 요구를 하고 있기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사랑에 대해 배신당한 것 같은 소외감을 반드시 경험하게 됩니다.


소외감은 곧 거리감입니다.


사랑에 대해 고정된 명사로서의 입장을 요구하는 만큼,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 거리감을 더욱 느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 까닭입니다.


사랑은 특정한 상태의 좌표에 고정시켜둔 채 우리는 움직이고 있을 때, 사랑에 대한 거리감은 반드시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이를 이상적인 조형물처럼 보고 있는 한, 그와 우리 사이에는 끝내 소외감이 경험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지정하고 있는 한, 그것은 우리 자신을 오히려 사랑으로부터 소외되게 하는 결과를 야기합니다.


온전함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쉽게는, 사랑받고 있는 존재의 상태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고정된 것으로 두고 있으면, 우리는 사랑과 점점 멀어짐으로써 결국 온전함을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존재의 특성을 착각하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존재는 명사(名詞)가 아니라 사실 동사(動詞)입니다.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실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장이 뛰고, 폐가 오르락내리락하며, 피가 온몸을 순회합니다. 우리는 늘 움직이고 있습니다.


존재가 늘 움직이는 동사로서 펼쳐내는 사건, 이것을 삶이라고 부릅니다. 삶은 존재가 동사라는 가장 명확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다고 생각할 때도, 삶쪽에서 먼저 우리에게 진입해 들어오는 까닭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늘 움직임 속에 위치짓는 까닭입니다.


정지해있는 존재라고 하는 것은 곧 그 자체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죽음은 평온합니다. 갈등이 사라지고 평화로운 상태입니다. 이러한 감정적 평온함의 상태를 보통 온전함이라는 이름으로 묘사하곤 하지만, 사실 이 정도에만 쓰이기에는 그 깊이를 충분히 펼치지 못해 아까운 표현이 바로 온전함입니다.


곧, 온전함이 더 활동해야 할 무대는 바로 삶입니다. 감정적으로 편한 죽음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불편할 수 있는 삶이 더욱 온전함의 의미가 개방되어야 할 지평입니다.


이에 따라, 이제 '있는 그대로'라는 표현은 더는 명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동사를 지칭하는 의미로 다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있는 그대로'는 '움직이는 그대로'의 의미를 회복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움직이는 그대로'는 다시 한 번 '사는 그대로'로 묘사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벗어난, 모종의 정지된 이상적 상태의 존재가 따로 있고, 그것이 온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펼쳐낸 현재 우리의 동작 그대로가 온전한 것입니다.


"움직이는 그대로 괜찮다."


즉, 이것이 온전함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정말로 괜찮을 수 있는 이유는, 사랑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이렇게 큰소리로 발화되던 예전의 한 광고문구는 정확한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움직이듯이, 사랑도 움직입니다.


사랑도 움직이는 그대로 괜찮은 것입니다.


사랑이 움직여야만, 사랑은 우리를 뒤쫓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 스스로의 완벽한 상태를 깨고 움직이는 것은, 바로 우리를 뒤쫓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에게는 완벽함보다 우리입니다. 꽃보다 사람입니다.


움직임의 세련된 표현은 바로 변화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뒤쫓기 위해, 사람이 변하는 만큼, 사랑 자신도 함께 변화해갑니다.


사랑은 "사람을 이 세상에서 혼자 두지 않겠다."라는 존재의 약속인 까닭입니다.


존재가 동사인 이유는, 늘 변화하는 이유는, 바로 이 오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늘 사랑받는 상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즉 늘 온전함을 '사는 그대로' 그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존재의 약속은 이행됩니다.


우리도, 사랑도, 상호적으로 함께 움직입니다.


그래서 돌아보면 늘 사랑이 우리의 곁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정지해있는 것처럼 경험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움직이든, 어떻게 변화되든, 괜찮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움직이는 그대로'가 이미 '있는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움직이는 것은 온전합니다.


삶은 온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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