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아이"
가장 잘 키운 아이는 어떠한 모습일까요?
어디서나 사랑받을 아이입니다.
언제 어느 때라도 사랑받을 아이입니다.
바로 조건없이 사랑받을 아이입니다. 그렇게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살아갈 아이입니다.
언젠가 부모님이 아이의 곁을 떠나게 되더라도, 아무 걱정없이 이 우주에서 언제나 사랑받을 아이입니다.
이것이 궁극의 아이입니다.
이것이 궁극입니다.
이 궁극의 사실 위에, 가장 든든한 반석 위에 자리잡을, 그래서 어떠한 일이 아이에게 일어나도 괜찮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을, 바로 그러한 궁극의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마음을 사실적으로 새롭게 이해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마음을 통해 존재를 사실적으로 다시 이해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궁극이지만 생각보다 쉽게 가능합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조금 낯설 뿐입니다.
그러나 그 낯설음 속에는 분명 우리의 존재를 관통해 흐르고 있던 아주 친숙한 향기가 느껴집니다.
새로움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은 망각했던 것을 다시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본적인 자기부정을 깐 채로, 조건없이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자기예언적 저주를 깐 채로, 그 위에서 펼쳐내는 그 모든 노력은 우리를 공허하게 할 뿐입니다. 그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여러 환상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보지만 그 모든 이야기는 우리를 더욱 지치게 할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 존재의 근본적인 속성을 상기하고 또 회복하고자 하면, 이 모든 것은 원래 그러했던 바대로 이 우주에서 가장 긍정될 존재로서 자연스레 우리의 자리를 되돌립니다. 바로 이 탄성의 작용이 존재의 근본적인 속성입니다.
존재는 존재에 여타의 이야기들을 갖다 붙이지 않고 그냥 놓아두기만 하면, 온전한 제자리로 돌아가는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존재가 가야 할 길은 존재 자체가 제일 잘 압니다. 우리가 존재에 아름다운 목적을 가진 이야기를 부여하여 존재를 이끌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일들이 바로 우리를 공허하고 지치게 만드는 불필요한 노력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더 안 좋아지는 결과를 낳는 뱀다리와 같은 것입니다.
가만히 관심 속에서 놓아두면 가장 좋은 길을 갔을 아이에게 우리가 만든 아름다운 이야기를 입혀 오히려 아이가 표류하게 만드는 현실은 빈번합니다. 그러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또 새로운 이야기를 개입시키고, 그럼으로써 아이가 이제는 완벽한 우주의 미아가 되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게 되는 현실 또한 자주 생겨납니다.
존재는 사실입니다. 마음은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온전한 사실입니다.
아이가 지금 어떠한 마음인지에 대해 가만히 관심을 가지면, 아이에게 지금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사실이 알려집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언제나 부모와 아이를 동시에 구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힘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며, 우리 아이를 소중하게 지키는 힘도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마음을 향한 관심이 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힘으로써, 아이의 운명을 함께 밝힙니다. 궁극의 아이로서 운명지어진 우리 아이의 위상을 환하게 밝혀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사실을 말해봅시다.
허구보다 더 아름다운 우리 존재의 사실을.
이 존재의 사실이 우리를 방문하는 것을 사태라고 합니다.
사태는 그냥 막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엄마! 라고 외치며, 터질듯한 웃음으로 우주를 가득 채우며, 그 우주만큼의 에너지로, 우리의 품으로 힘차게 밀고 들어오는 아이처럼.
그렇게 있는 그대로 이미 우리에게 찾아온 기적과도 같은, 이 놀라운 존재적 사태가 바로 우리의 눈앞에 있는 이 아이입니다.
이제 그 궁극을 환대하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네, 라고 말해주세요.
존재를 향한 문이 고요히 열려갑니다.
우리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처럼.
그 미소는 분명, 우리 아이가 있는 그대로 타고 태어난 바로 그 궁극의 운명을 알아본 증명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