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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연인이 되어보자 #4

"힘들 때 필요한 것은 연인을 향한 회복탄력성"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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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달리다가 실패하고, 좌절하고, 도달하지 못하고, 이루지 못해서 넘어지게 되었을 때 우리는 힘들다. 행위가 멎게 되어서 몸은 덜 힘들게 되었을지라도, 그럴 때는 마음이 더 힘들다.


넘어지지 않을 수는 없다. 넘어져도 얼마나 빨리 다시 일어설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것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넘어져서 몇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기만 하다가 "나를 다시 일으켜줄 이야기가 있어야 돼. 내가 의존할 이야기가 있어야만 나는 일어설 수 있어."라며 넘어진 그 자리에 누운 채로 스마트폰을 들고 넷플릭스의 이야기들을 검색하고 있는 이의 모습을 한번 떠올려보자.


그렇게 수 시간이 다시 경과한 뒤 "그래! 찾았어! 이게 나를 일으켜 세워줄 딱 맞는 이야기인 걸! 자 일어나자! 이 이야기를 따라 이제 진정한 나의 길을 가자!"라며 갑자기 어벤져스 가입허가 메일이라도 받은 것처럼 벌떡 일어나는 이의 모습도 계속 떠올려보자.


이것이 회복탄력성일까?


회복의 이야기에 의거해 자신을 회복시키는 것이 회복탄력성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회복탄력성은 자존감의 문제다.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감각이다.


흔히 자기효능감과 자기존중감[자존감]을 비슷한 의미로 혼용하기도 하지만, 엄밀히는 그 둘은 다른 것이다. 자기효능감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대상에 대한 성취도에 의해 판정되는 자기평가다. 반면 자기존중감은 스스로의 존재에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자존감(自尊感)을 자존감(自存感)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것은 표현 그대로 자기의 존재를 존중한다는 것이며, 존재는 언제나 스스로 서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높으면 대상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 즉, 자존감이 높으면 대상에 의존해 회복하지 않게 된다. 스스로 회복한다.


회복탄력성이란 이처럼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존재의 자존감에 근거한 특성이다.


자존감이 높은 이가 회복탄력성이 높다. 당연하다. 그러니 이제 질문은 이것이다.


자존감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 것일까?


많이 사랑받으면 자존감이 올라갈까? 그러다가 자기를 사랑해주던 이들이 사라지면 자존감도 같이 내려가는 것일까? 그러니 자존감을 계속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사랑해줄 팬들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로, 이러한 방식으로는 결국 사람들의 눈치만 보게 되고 소진되기만 하니, 이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길을 택하기보다는 내가 직접 나를 사랑하는 길을 택하면 되는 것일까? 어떻게든, 기어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를 악물고서라도, "나야, 무조건 사랑해!"라며 내가 나를 격하게 품고 끌어안아주면 자존감이 무럭무럭 올라가 상종가에 도달하는 것일까?


이러한 것들이 다 교묘한 회복의 이야기들이다.


회복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두 양상을 띤다.


남을 사랑해서 내가 사랑받거나, 나를 사랑해서 내가 사랑받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이 두 이야기의 유형들은 동일한 하나의 본질을 갖고 있다.


남 또는 나라고 하는 대상을 사랑함으로써, 그렇게 대상을 위해 사랑이라는 이름의 노력을 함으로써, 자신이 사랑을 획득하게 된다는 내용의 본질이다.


더 쉽게 말해, 이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 자아의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연애미숙자들 내지 연애무능력자들이 신앙하는 신화다. 보다 공정한 언술로는, 사랑이 두려운 이들이 그 두려운 사랑을 통제하고자 채택하고 싶어하는 메뉴얼이라고 할 수 있다.


유일한 문제는 이 메뉴얼이 절대로 작동하지 않는 메뉴얼이라는 점에 있다.


메뉴얼이 정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논리적 구조가 부실해서가 아니다. 즉, 말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말은 되지만, 작동하지는 않는다. 메뉴얼의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뉴얼은 언제나 이분법적이다. 거기에는 남과 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랑은 남도 나도 아닌 제3의 방향성을 갖는다.


남도 나도 아닌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마음이다.


사랑은 남도 나도 아닌, 언제나 마음을 향한 사랑일 뿐이다.


이 마음을 향한 사랑 속에 있을 때, 자존감이라고 하는 것이 배양되고 증대된다. 이에 따라 회복탄력성이 담보가능해진다.


자존감을 높이는 전략을 소개하는 실용서들에서 곧잘 말하곤 하는, 소위 남을 신경쓰지 말라는 말은, 정확하게는 대상을 신경쓰지 말라는 말이다. 대상은 이야기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곧 대상이다. 그리고 나라고 하는 것이 습성, 기억, 개인사 등의 이야기에 입각해 캐릭터처럼 만들어져 있을 때, 이러한 나도 대상에 다름아니다. 그러니 남을 신경쓰지 않으려면 나도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이야기 속 모든 등장인물은 관심종자들이다. 대상은 언제나 관심먹는 하마다.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주고 있을 때, 사랑은 요원하다.


남에게도 나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을 때, 남도 나도 아닌 마음에게 처음으로 관심이 향할 가능성이 개방된다.


사실 더 자연스러운 방식은, 처음부터 마음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남에게도 나에게도 관심을 줄 필요가 자동으로 사라진다.


이것은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연인과의 약속장소로 달려나가던 도중에 넘어진 이가 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아 보일지 멈칫멈칫 남의 눈치를 살피고 있지도 않고, 또 "괜찮아, 나야, 내가 있잖아. 넘어진 나도 사랑해. 그 모습도 온전해. 꼭 안아줄게."라고 자신을 토닥토닥거리며 애틋한 눈빛으로 뭔가 다 알겠다는 식의 눈물을 흘리고 있지도 않는다.


그는 최대한 빨리 일어나 무릎을 툭툭 털고 또 달려갈 뿐이다. 그의 눈앞에는 연인의 얼굴로만 가득하다. 그 얼굴만으로도 모든 세상이 행복하게 가득차서, 남 생각이나 내 생각 같은 것은 더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회복탄력성이다.


이 회복탄력성을 발휘하고 있는 이는 아주 성숙한 이다.


힘들게 경험된 돌뿌리 같은 사건에 대해,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남 탓이오."의 이야기를 소비하지도 않고, 비장한 표정으로 "내 탓이오."의 이야기를 소비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 어떤 이야기에 의존해서 자기를 회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남도 나도 아닌 마음을 향한 사랑으로 스스로 설 뿐이다.


그는 아주 성숙한 마음의 연인이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이 넘어졌을 때, 초능력자인 아빠가 자신을 구하러 오는 이야기, 스파이더맨이 거미줄로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는 이야기, 닥터 스트레인지가 연 포털을 통해 어벤져스들이 자신을 위해 출동하는 이야기, 간달프가 독수리를 불러 자신을 구출해주는 이야기, 다스베이더가 가면을 벗고 까꿍 하며 자신을 위해 웃어주는 이야기 등을 꿈꾸는 이가 있다.


그는 일부러 바닥에 더욱 뒹굴기까지해서 상황을 보다 비극적으로 만든 뒤, 사람들이 막 실시간으로 SNS에 응원메시지를 올리고 청와대에 청원도 하는 등, 가장 비극적인 자신에게 이 세상 모두가 전념으로 사랑을 전하기 위해 행동하는 그 그림을 실현하기 위해 연극을 펼친다. 그렇게 돌뿌리의 사건을 통해 자신이 가장 사랑받는 슈퍼스타가 되기를 기대하고 기획한다.


유아적 전능감, 개인적 우화, 상상의 청중 등, 어떠한 용어를 써서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다만 미숙한 이다. 사랑에 미숙한 이다.


우리가 이처럼 사랑에 미숙할 때, 마음은 힘들어진다.


넘어진 우리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


넘어진 사건을 남과 나를 통해 이루려는 슈퍼스타의 이야기로 뒤바꿈으로써, 우리가 마음을 잊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 달리고 있었는지 그 목적지를 망각한 것이다. 그리고는 남과 나라고 하는 대상의 사랑을 성취하는 것이 원래 목적이었던 것처럼 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자신을 잊어서 마음은 힘들다.


연인에게 잊히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는 까닭이다.


넘어졌다는 것은 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달리고 있었다는 것은 바로 마음이라고 하는 연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러하다. 우리가 열심히 하는 모든 것은 다 마음을 향해 하고 있던 것들이다.


그 사실을 망각하면 마음이 정말로 힘들어진다.


우리의 마음이 힘든 때는 지금 그 순간 우리가 마음을 향한 방향성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남도 나도 아니라 바로 마음을 향하고 있었다는 그 사실만 기억하면 우리는 즉각 회복한다. 회복탄력성이 작동한다. 마음을 향한 관심의 회복이 곧 회복탄력성의 가동조건인 셈이다.


무수하게 깔린 회복의 이야기들이 아니다. 마음이라고 하는 연인을 향한 회복탄력성만이 우리를 정말로 회복시킨다. 마음과 우리의 사랑을 회복시킨다. 우리 자신을 마음의 연인으로 회복시킨다.


"뭔 일 있는 거 아니지?"


"뭔 일은, 다 대수롭지 않지, 자기에 비하면 모두 다. 금방 갈게, 자기야."


남도 아니고 나도 아닌 우리 사이가 이렇게 탄탄하다.


남도 아니고 나도 아닌 사랑만 있는 탄탄대로다.


마음이 힘들지 않은 길이다.






Ally Kerr - The Sore Feet Song (蟲師 OP)
I walked ten thousand miles, ten thousand miles to see you
난 당신을 보기 위해 만 마일을 걸었어
And every gasp of breath, I grabbed it just to find you
숨이 차오를 때마다 당신을 찾기 위해 견뎠어
I climbed up every hill to get to you
당신을 찾기 위해 모든 언덕을 올랐고
I wandered ancient lands to hold just you
오직 당신을 만나기 위해 고대의 땅을 여행했어
And every single step of the way, I paid
나는 기꺼이 발걸음을 내딛었고
Every single night and day I searched for you
매일 밤낮으로 당신을 찾아 헤맸어
Through sandstorms and hazy dawns I reached for you
모래바람을 뚫고 안개 낀 새벽을 지나 드디어 당신에게 닿았어
I stole ten thousand pounds, ten thousand pounds to see you
나는 당신을 보기 위해 만 파운드를 훔쳤어
I robbed convenience stores 'cause I thought they'd make it easier
난 편의점을 털었어, 그러면 당신을 쉽게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
I lived off rats and toads and I starved for you
쥐와 두꺼비들과 지내면서 당신을 소망했어
I fought off giant bears and I killed them too
거대한 곰들과 싸웠고 또한 그들을 죽이기도 했어
And every single step of the way, I paid
나는 기꺼이 발걸음을 내딛었고
Every single night and day I searched for you
매일 밤낮으로 당신을 찾아 헤맸어
Through sandstorms and hazy dawns I reached for you
모래바람을 뚫고 안개 낀 새벽을 지나 드디어 당신에게 닿았어
I'm tired and I'm weak but I'm strong for you
난 지치고 약해졌지만 당신을 위해서라면 강해질 수 있어
I want to go home but my love gets me through
이제 그만두고도 싶지만, 이 사랑이 나를 끝까지 가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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