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매버릭(2021)

하늘의 촉감 "Need the feel"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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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6년간 누군가는 G-1 가죽자켓을 걸치며 가와사키 바이크에 올라탔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하세가와제 F-14 프라모델을 조립한 뒤 정성스럽게 데칼을 붙였을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플레이스테이션 패드를 꽉 붙잡고서 협곡을 통과하는 일에 온신경을 집중했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도 누군가는 에이스컴뱃 7 게임에서 '다크스타'를 그 손으로 직접 몰고 있지는 않을까. 또는 쟁쟁한 최신예기체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F-14 톰캣만을 고집하던 그 하늘의 역사도 지금 이 순간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분명 낭만이라고 불리며, 낭만은 손끝에서 태어난다.


문화가 직립보행을 통해 자유로워진 인간의 손끝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놓치지 않는 감각은 바로 '접촉'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굳이 디지털적인 것에 대한 아날로그적인 것의 반동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문화가 어떻게 발전되어가든 간에 그 핵심은 접촉에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하는 의도다.


손으로 직접 만지고, 다루고, 움직이는 접촉의 감각이 문화를 형성한다. 이것은 원초적인 재미다. 그래서 문화는 본래 재미있는 것이다. 재미있어서 그 기억이 선명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윽함의 향기도 더해간다. 의미가 생겨난다.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우리의 노스탤지아는 우리가 어떤 것과 '잘 접촉했던' 그 재미와 의미의 시공간을 향해 있다. 그렇게 이루어졌던 가장 빛나는 문화의 순간이 곧 낭만의 소재가 된다.


바이크의 핸들을 잡고, 전투기의 조종간을 당기며, 연인의 몸을 어루만지던 그 모든 손길로부터 낭만의 순간들이 창조되었다. 1986년의 전작은 그러한 낭만을 노래하고 싶었던 이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져, 우리에게 또 하나의 낭만의 소재로 분명하게 기억되었다. 그리고 2022년의 오늘날, 바이크와, 전투기와, 연인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손길을 뻗는다. 그리고는 더 선명하고 더 그윽하게 이해하게 된다.


이 생생한 '촉감'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는 하나의 작은 삽화에 불과하지만, 실은 인류사의 총체를 꿰어내는 핵심적인 그 무엇을 담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폐부에 직접 손길을 뻗어 와닿는다. 자못 거창하게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고 말해보자. 영화관에 앉아있는 우리에게는 이 촉감이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대사가 있다.


"생각하지 마."


아마도 그 뒤에 이어질 수 있는 말은 이렇게 함축되어 있었을 것이다.


"느끼는 대로 해."


영화사에 남은 명문구가 된 전작의 주인공의 대사를 떠올려보면 이는 자연스럽다.


"Feel the need."


그저 자신의 느낌대로 살아감으로써 한계를 돌파하는 기적의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매버릭의 모습은 36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혹시 잊을까봐 그는 '가르침'의 형태로 강조한다.


"너희가 아는 것은 상대도 다 안다. 다만 상대가 모르는 것은 너희의 한계다."


이것은 삶이라는 것이,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지에 대한 그 '앎'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자신다운지에 대한 그 '느낌'의 문제라는 사실을 개방한다. 우리는 언제나 '앎'을 통해 '느낌'을 봉쇄함으로써 한계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보자면 한계란 '자신의 한계'가 아니라, '자신이 되지 못한 한계'인 셈이다.


그 어떤 상대적 '앎'으로도 예측될 수 없이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들은 분명한 문화적 성공의 순간들이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자기 자신을 향하는 연습, 연습, 그리고 또 연습이다. 흡사 『갈매기 조나단』의 메시지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인간종을 위해 명백하게 특화되어 있는데, 연습되어야 할 소재가 '날개'가 아니라 '손'인 까닭이다.


필요한 일에, 직접 손을 써서 느끼며 살아가는 일이 우리로 하여금 한계를 넘어 자기 자신이라는 인간이 되게 한다. 필요에 정직한 태도가 우리 자신의 초월적 인간성을 가능하게 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제를 묘사하는 데 있어 이 영화는 일관적이며 순수하게 올곧다. 정통파 용사의 문법이다. 그래서 낭만적이다.


직립보행을 시작한 순간 손을 자유로이 쓸 수 있게 된 모든 인간이 실은 용사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을 때, 이 낭만의 울림은 우리에게로 더욱 강렬히 찾아든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향한 물음이 된다. 우리의 정직함을 촉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떠한 필요에 정직해야 하는가? 문구는 뒤집힌다.


"Need the feel."


우리는 지금 '촉감'을 필요로 한다. 접촉하는 일을 필요로 하며, 손끝의 '그 느낌'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인간으로 산다는 그 '낭만'의 의미인 까닭이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필요를 느끼며,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인간이라는 느낌을 필요로 한다.


"Feel the need."와 "Need the feel."은 완벽한 순환을 이룬다. 그래서 이 영화는 완벽하다.


인간과 가장 잘 접촉해 있는, 가장 빛나는 인간의 순간을 위해, 이 영화는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가장 완벽한 그 하늘의 촉감으로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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