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살림 #1

"마음살림이란 무엇일까?"

by 깨닫는마음씨




당신의 콜라병 속에는 고래가 살고 있을까?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은. 살.고. 있.다.


당신은 무엇보다 그 고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것은 당신만 볼 수 있는 고래이며, 그렇게 당신만을 위한 고래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맥락에서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당신은 모든 콜라병 속에서 고래를 보기 위해 태어났다고.


이것이 '마음살림'의 본질적인 의미다.


당신이 본 콜라병 속의 고래를 당신이 만약 글이나 그림으로 묘사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될 것이다. 이러한 예술은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누군가가 당신처럼 콜라병 속의 고래를 그림으로 그린다고 해도, 그는 고래를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척하는 일은 아주 힘든 일이며, 그는 단지 힘들고 있는 중일 뿐이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쉽다. 그림실력이 부족해도 상관없다. 당신이 보는 뚜렷한 그 형상을 '되는 대로만' 그저 묘사하면 된다. 되.는. 대.로. 대.충. 해.도. 잘. 된.다. 당신에게는 이 일이 일어난다. 누군가는 천직이라고도 부를 것이고, 재능이라고도 부를 것이다.


당신이 콜라병 속에서 고래를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재능이다.


당신의 마음이 살고 있다는 것, 이것은 재능이다.


개인들마다 각기 발달한 감각이 다르다. 시각이 발달한 이는 고래를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청각이 발달한 이는 세이렌의 노래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콜라를 맛보면서 그 맛을 색으로 경험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미각이 시각과 연합된 것이다. 이러한 것을 공감각이라고 부른다. 당신이 어떤 부분에서 아주 섬세할 때 경험되는 현상이다.


우리가 마음을 말하고자 할 때 우리는 반드시 이 섬세함을 말해야 한다. 마.음.은. 섬.세.하.다. 섬세함이 전부다. 그래서 마음에 대한 기술적인 접근을 취하면 반드시 마음은 시들 수밖에 없다.


마음에 대한 가장 기술적인 접근은 마음을 챙기는 일이다. 마음챙김은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마음에 대한 가장 고도의 기술화다.


원래 양육은 기술이 집약된 행위다. 문명은 더욱 성공적인 양육을 이루기 위해 발전해왔다. 마음챙김은 마음의 양육을 위한 심리학적 기술이며, 그만큼 소외를 야기할 수 있는 기술의 역기능적 차원을 강화시킨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잘 양육된 아이가 예술가가 되는가?


기획사에서 기술적 전략으로 키워낸 대중적 아이돌을 예술가라고 부른다면 그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만약 고래를 본 이가 그린 그림이 팔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그에게 대신 사이다병 속에 든 사자의 그림을 요구한다면,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할 때 그의 선택이 그 자신이 '마음살림의 예술가'일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


남의 판단에 따라 자신의 섬세한 감각을 무시할 때, 그는 자신이 갖고 태어난 천성의 아름다움을 잃고 퇴락한다. 아름답지 않은 이가 아름다움을 세상에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효과적인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해지는 여름 저녁 강가에 나와 있다. 매미소리가 들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강물에 반사된 붉은 빛이 당신을 포근하게 감싸안는다.


당신이 보고 있는 이 '통째의 그림'을 묘사해보라. 되는 대로만 묘사해보라. 말로 해도 좋고, 글로 써도 좋으며, 춤을 춰도 괜찮다.


단, 이러한 조건을 전제해서 묘사해보라.


이. 세.상.에. 당.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당신은 아마 옷을 훌훌 벗어제끼고, 환희의 음성을 내지르며, 강둑을 달려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온몸을 써서 표현하는 이 묘사의 행위를 통해 당신이 체험하고 있는 이 완벽한 삶의 그림을 기쁨으로 축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강둑에 앉아 유튜브를 틀고, 대단히 신나는 척 목소리를 과잉되게 높이며, 맥주를 마시고 있는 이들 앞에서 당신의 나신을 실제로 노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당신의 세계 속에는 분명 이 현실이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대중의 시선 앞에서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죽인다.


오직 이것만이 문제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대중이라고 하는 집단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은 왕 대신에 대중이 독재하게 된 현대사회의 특징이다. 이에 따라 고래를 보는 당신은 고래를 보지 못하는 절대 다수의 대중에 의해 '미친 사람'의 판정이 내려진다. 그러니 당신은 자신이 콜라병 속에서 고래를 보는 일을 숨기고 싶어질 것이다.


당.신. 자.신.을. 늘. 억.눌.러.야.만. 할.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억누른 만큼, 누군가가 당신을 알아줬으면 하고 바라는 그 강도는 높아진다. 자신이 끝없이 인정을 바라는 애정결핍인 것처럼도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 문제는 당신이 자기 자신을 억눌렀다는 그 사실 하나뿐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놀라운 착각이 있다.


그 착각의 내용은 "진정한 개성은 대중을 더 널리 만족시킬 수 있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대중을 '공정한 신(神)'처럼 가정하는 관점이다. 전적으로 틀린 가정이다. 재난심리학에서는 인간이 군집이 될수록 판단력이 떨어지고 움직임이 둔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민함은 언제나 섬세함과 연결된다. 마음은 오롯한 개인의 마음일 때, 가장 섬세하게 아름다운 마음이다.


만약 당신이 이 세상에 당신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묘사했다고 해보자. 그것은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위한 시(詩)다. 당신의 귀에 먼저 좋은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그 마음이 만족스러워진다.


그리고 정말로 멋진 일은 그 다음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해 노래했을 뿐인데, 그 노래를 들은 이들이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 마음 직접 들여다본 것처럼 어떻게 알고 계세요?"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가?


당.신.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콜라병 속의 고래를 노래한다. 고래가 얼마나 힘차게 헤엄치는지 그 웅장한 몸짓과 그에 따라 밀려드는 파도의 시원한 형상을 묘사한다. 당신은 지금 콜라를 마실 때의 사실적인 탄산작용을 절묘히 묘사해낸 것이다. "콜라는 탄산이 강하다."라는 언술보다, 더욱 그 작용의 사실적인 면모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콜라를 마셔본 사람들은 당신에게 공감한다. "맞아요. 그게 제 기분이었어요!"라면서, 자기들보다도 더 자기들을 잘 대변해준 것 같은 당신의 묘사에 감동을 받는다.


이것이 당신이 콜라병 속에서 고래를 볼 수 있는 감각을 갖고 태어난 바로 그 이유다.


당.신.은. 인.간.을. 감.동.시.키.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당신만의 고유한 감각은, 당신에게서 가장 가까운 인간, 바로 당신 자신을 누구보다도 빨리 감동시킨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동은 사람들에게로 전해진다.


당신은 대중을 감동시키려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감각을 정직하게 묘사하려고만 했다. 그러자 사람들도 대중에서 벗어나, 당신을 통해 인간으로서 감동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의 마음을 살리는 일이 이처럼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살리는 일이 된다.


당신만의 가장 고유한 표현으로 사는 일이,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의 마음을 울리는 보편적인 일이 된다.


이것을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살면' 사람들의 마음이 '알아진다.'


마음살림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챙겨 들어서 알아줌으로써 그 마음을 알아주겠다는 마음챙김의 일보다 훨씬 효과적이며 성공적인 것이다.


이 글이라고 다를까?


우리 한번 정직하게 생각해보자.


마음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왜 그렇게 많은가? 무조건적으로 공감해주고, 아무리 피곤해도 경청해주며, 힘든 마음이 있을 때 그것을 꾹 자기 안으로 넣은 채 가만히 수용의 태도로 버티고 있어 보면, "아하!"하며 마음을 알게 된다는 이 '고행'의 일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이제 그만 좀 챙기고 싶지 않은가? 이제 작작 좀 돌보고 싶지 않은가? 왜 맨날 우리만 마음을 알아주려고 그토록 고생을 해야 하는가? 정말로 피곤하지 않은가? 마음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다 때려치고 싶지 않은가?


이러한 말들에 당신은 지금 공감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가 단지 자신의 마음을 '사는' 이 일에 신기하게도 당신의 마음은 '알려지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공.감.한.다.


사실에 대한 감각은 개인마다 더 잘 발달된 감각을 통해 형상화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고래이며, 다른 누군가에게는 교향곡이다. 그러나 그것을 세상에 자신만 있는 것처럼 정직하게 묘사하기만 하면, 그 개인적 묘사가 기인한 사실에 대한 감각이 보편적으로 공감된다.


이 경우 "세상에 자신만 있다."라는 이 표현은 "세상에 인간의 대표자로서 자신만 있다."라는 의미다. 각각의 개인이 모두 다 이처럼 인간의 대표자로서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살아간다. 어떠한 개인의 경험은 그것이 무엇이라도 '인간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도 인간인 것'이다.


마음을 살리는 일이란 결국 인간을 살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이 태어난 이유다.


인간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 구원투수처럼 당신이 왔다.


당신이 콜라병 속에서 고래를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현재 인간을 살릴 바로 그 그림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自身; 自信)해도 좋다.


당신이 자신할 수 있는 이것이 바로 마음살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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