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살림을 위해 필요한 것"
마음살림을 잘 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가 삶을 잘 살게 된다는 것이다.
잘 살려면 잘 배워야 한다.
잘 배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당신은 이미 들어본 적이 있다.
핵심은 '질문'이다. 질문을 통해 배움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나쁜 버릇이 생겨있다. 당신은 좀처럼 질문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이 죽고 인생이 막힌다.
그렇지만 이것이 당신의 문제는 아니다.
당신이 질문하지 않게 된 것은 당연하다. 답정너들이 당신에게 질문을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가진 정답을 당신에게 가르치는 일을 보람으로 삼는 이들이, 당신에게 정답이 이미 상정된 질문만을 하라고 종용해왔다.
혹시라도 당신이 답 없는 질문을 하면 그들의 표정은 매우 언짢아졌다. 만능해결사처럼 답변할 수 있는 자기의 유능성이 위협받는 것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해결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들이 아는 정답에 끼워맞춘 질문을 당신이 쥐어짜내는 동안, 당신은 질문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감동을 상실하고야 말았다. 당신이 이제 질문하고 싶지 않아진 것은 당연하다. 특히나 답이 없는 것에 대한 질문은 당신에게나 해결사들에게나 금기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 당신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질문은 질문을 잘 하는 자만큼이나, 질.문.을. 잘. 받.을. 수. 있.는. 자.의. 존.재.가. 중.요.하.다.
질문을 잘 받을 수 있는 자는 '답 없는 질문'을 받을 수 있는 자다.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답 없는 질문'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답 없는 질문을 계속 할수록 당신의 마음은 환하게 살아난다. 지금은 답이 없지만 답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가려고 마음이 날갯짓을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답 없는 질문이라고 곧잘 착각하곤 하는 것은 '답을 정해놓은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하면 할수록 마음을 죽이는 일이 된다. 답은 이미 다 아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화와 짜증만 나다가 결국 우울해질 뿐이다.
가고는 싶은데 어떻게 가야 할지 그 답을 모르는 곳이 있다. 이러한 곳을 갈 때는 마.음.을. 타.고. 가.야. 한.다. 손오공의 근두운처럼 마음을 타야만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
질문을 통해 뭉게뭉게 마음을 살아오르게 해서, 그 마음을 곱게 모은 뒤, 마음에 훌쩍 올라타 가는 법이, 우리가 인생을 잘 사는 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답 없는 것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이것을 '역설'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갖고 태어난 고유한 힘이 바로 이 역설의 힘이다. 우리가 현재의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현실 또한 역설의 힘에서 비롯한다.
이는 '경외감'의 문제를 시사하는데, 경외감이란 답이 없는 것에 대해 떠오르는 물음표의 감각인 까닭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답이 없는 것은 현.재.의. 당.신.보.다. 크.기. 때.문.에. 그것이 답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답이 없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행위는 그것이 당신보다 크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행위가 된다.
그러면 당신은 편해진다. 경외감은 당신을 편안하게 만든다. 당신은 알지 못하고, 하지 못한다. 그러니 아는 척해야 할 필요가 없고, 하는 척해야 할 필요가 없다.
마음에게 맡기면 된다.
당신이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 앞에서, 당신은 질문을 통해 마음을 살아오르게만 하면 된다. 마음이 당신을 태우고 넘어갈 것이며, 당신은 도착할 것이다. 이제 당신의 자리가 아름다운 그 자리가 될 것이다. 당신 자신이 무척이나 경외롭게 느껴질 것이다. 뒤돌아보면 기적 같을지도 모른다.
마음살림은 이 기적을 일상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일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어도 거기에는 답이 없다.
그.러.니. 당.신.은. 질.문.을. 해.라.
당신의 답 없는 질문을 잘 받을 수 있는, 바로 여기 마음살림터가 있다.
당신의 마음살림을 위해 필요했던 유일한 것은 마음살림터였을 수 있다.
당신의 질문이 결코 비난되거나, 무시되거나, 하찮게 취급되지 않을 이 터에서 당신의 마음이 살아나는 장이 펼쳐질 것이다.
먼 길을 오느라 고생했던 당신이다.
등에 타라.
이제 깨어난 마음을 타고 성큼성큼 거침없이 이동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