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에서의 눈맞춤
"이 세계에는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자신의 아내를 위협하는 한 야쿠자를 시비 끝에 죽이게 된 뒤 살인죄로 복역을 마치고 나온 전직 야쿠자가 있다. 그의 시선을 통해 사회와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들여다보인다.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며 센 척 허세를 부리고, 정도(正道)를 주장하며, 그 정도에 의거해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데 필사적이다. 그러다보니 늘 자기모순에 빠진다.
모순 속에서 우리는 인내하며 버티거나, 아니면 망상적인 꿈을 꾼다. 울증이거나 조증이다. 둘 다 화다.
세계는 화로 가득 차있다.
조금 더 섬세해서 마음의 수용력이 좋은 이들, 더 쉽게는 상처받기 쉬운 이들은 그래서 내면에 불지옥을 안고 산다. 세계의 화가 그의 안으로 들어온 까닭이다.
그래서 다시 울증과 조증은 강화된다. 똑바로 화를 참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물로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더 가득 누르니 몸이 아프고, 되는 일이 없어 답답한 현재의 상황이 TV 출연 한 번이면 해결될 것 같은 마법적 도취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이 괜찮은 존재처럼 보이기 위해 다른 존재를 고통스럽게 하며, 카메라 앞에서 짐승처럼 웃는다.
사회를 구성하는 문법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이에게 야기하는 이상심리학의 현실이다.
모두가 부조리하다고 느끼면서도 순응한다. 싫다고 여기면서도 누구보다 그 싫은 것을 열심히 실천하려 한다. 규칙이 빽빽해서 마음이 뻑뻑하다. 틈새가 없다. 사방이 닫혀 있는 것만 같다.
이곳은 대체 어디인가?
사회라고 불리는 곳이다.
교도소에서 갓 나온 이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맹세한 그 장소에 자신이 이미 돌아와있음을 깨닫는다.
주인공의 관점에서 교도소와 사회는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처음부터 자유를 봉쇄하고 규칙에 따르게 하는가, 아니면 구성원들 각자가 자기는 자유롭다는 착각을 품게 하면서 자발적인 순응의 형태로 규칙에 따르게 하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교도소라는 '세계'나 사회라는 '세계'나 살기 참 어려운 세계다.
마찬가지로 교도소에서나 사회에서나, 살기 어려운 이 세계를 그래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마치 관계인 것만 같다. 진정으로 자신을 염려하며 좋은 감정을 나누어주는 인정어린 관계가 따듯하다고 생각한다. 살기에는 어렵지만, 세계는 또 따듯한 것만도 같다.
그러나 관계는 아무 것도 구원하지 못한다.
관계는 한 개인의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본질적으로 아무 영향력도 갖지 못한다.
관계는 다만 망연자실할 뿐이다.
살기 어려운 이 세계에서 최후로 남아있는 긍정적인 것이 관계라고 곧잘 우리가 품던 착각을, 이 영화에서는 산산조각낸다.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다.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이러한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순응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가치가 정말로 있는 것일까?
없다. 이 세계에는 가치가 없다.
이것은 실존주의적 사유다.
세계의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실존주의는 세계의 의미를 개방하고자 한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시작하는 것이다. 외적인 규칙이나 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영화에서 우리는 '눈맞춤'의 순간을 자주 목격한다. 한 등장인물의 눈을 빌려 다른 등장인물과 우리는 눈이 맞는다. 표면적인 눈동자는 떨리지만 그 눈빛은 깊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눈맞춤 속에서, 하늘을 닮은 가장 깊은 그 눈빛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어떤 것도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해주고 있었을 뿐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따듯한 배려를 전하고 있었다.
그렇게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에는, 우리 자신은 있었다.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에서 시작되었던 것, 그것은 사랑이었다.
눈맞춤 속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우리가 가장 살기 어려운 그 자리에서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바로 그 의미였고, 우리는 그 의미를 시작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선물한 코스모스 꽃다발의 향기를 맡는다.
사랑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가득하게 사랑받고 있었다.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해왔지만, 언제나 아낌없이 사랑하고 있었다.
막힌 사방에서도 하늘을 눈물로 열어내어, 그렇게 자신이 하늘과 똑 닮았다는 사실을 밝히던 것이 사랑이었다.
이 세계에는 살아갈 의미가 있었는가?
우리는 이제 그 답을 안다.
떠나간 것에도, 남겨진 것에도, 의미는 새겨진다.
사랑은 영원하다.
정말로 멋진 세계에서 일어나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