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지옥을 가진 이와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사이코프로드와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그들에게 왜 사람들을 착취하며, 정직하게 일하는 심리상담사들의 영토를 진흙탕으로 만드냐고 따지는 일은 무용하다. 또한 사이코프로드의 희생자가 그들에게 정당한 사과를 요구하는 일도 전적으로 무의미하며, 그들을 이론적 정당성으로 비판하는 일도 전적으로 무용하다.
사이코프로드에게는 산더미 같은 궤변들이 이미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궤변론자들이며, 궤변은 리스크 관리를 위한 그들의 주된 도구다. 무책임과 회피로 점철된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발달해온 영역이다.
그렇기에 사이코프로드를 대하는 가장 좋은 태도는, 길에서 마주치면 그냥 패버리는 것이다.
사이코프로드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신체가 물리적으로 위협받는 일에 대한 엄청나게 큰 공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지성에 위탁한 궤변을 발달시켜 왔다.
사이코프로드들은 사이코패스처럼 누구보다 동물적인 본능으로 사는 이들이다. 이들이 논리적으로 하는 궤변에 혹해 이들이 매우 이성적인 인물로 곧잘 착각되곤 하지만, 돌고래와 하마도 지성이 높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그러나 돌고래와 하마를 지배하는 것은 본능이다. 사이코프로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생존에 엄청 민감한 이들이다. 특히 약육강식의 논리와 계급의 구조에 예민하다. 늘 어떤 공동체에서든 눈치를 살피며, 자신이 최대한 가장 높은 계급에 속할 수 있도록 머리를 굴린다.
동물로 비유하면 쥐에 가장 가까운 생태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들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신체의 크기와 자신의 신체의 크기를 자주 견준다. 상대가 무력으로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인지를 검토한 뒤, 그렇지 않으면 안심하고 사기를 치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들에 대한 최선책은, 이들이 가장 당하기 싫어하는 그 현실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며, 이들이 통제가능하다고 분석한 그 판단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곧, 현실을 조종하려는 이들의 지적 통제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이들의 패배다.
결국 사이코프로드에게는 물리적 폭력이 답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명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오히려 폭력은 우리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다.
사이코프로드들은 거의 대부분 제도권을 부정하며 자기가 제도권보다 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나, 희극적이게도 그들은 언제나 제도권으로부터 그들의 핵심적인 약점을 보호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응할 수 있는 차선책은, 니체의 질문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용'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말하고 있는 주체'를 묻는 질문법이다.
이들과 아무리 내용을 갖고 논쟁해봤자, 이들은 자신도 적격한 정통의 심리학과 똑같은 개념과 원리를 말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현상학의 원리를 상담에 적용하고, 건강하게 라포를 형성하며, 내담자를 통제하지 않고 내담자 스스로 말하는 자율적인 원칙에 근거해 상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사기꾼이 사기꾼으로 알아봐지기 힘든 것이 이 지점이다.
사기꾼은 그 내용의 차원에서는 정통의 것과 99% 일치하도록 말한다.
원래 악마는 예수의 말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한다.
문제는 나머지 1%에 있다.
그 1%로 인해, 지금까지 말한 99%가 다 뒤집힌다.
이것은 99%를 긍정하는 척하면서, 마지막에 얹는 1%를 통해 99%를 완전히 뒤틀어 꼬아내 최종의 1%를 위해서만 전적으로 봉사하게 만드는 이들의 사기술이며,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러한 1%가 무엇인지 내용 속에서 찾는 것은 또한 아주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들의 핵심 중의 핵심인 까닭에, 1%는 이미 그것을 말하는 주체의 태도 속에 이미 담겨 있다. 즉, 1%는 내용인 동시에, 주체의 속성 그 자체다.
사이코프로드가 1%를 위해 모든 것이 봉사하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면, 사이코프로드는 바로 그러한 1%의 주체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이코프로드는 1%의 주체가 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자기를 치장하기 위한 액세서리로 종속시킨다.
더욱 쉽게 말해, 상위 1%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돈, 인기, 명예를 얻는 일에, 사이코프로드는 그 모든 심리학의 이론들을 봉사시킨다.
심리학은 그에게 자신을 빛내줄 도구다. 그가 심리학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이 그를 사랑해야만 한다.
확실한 질문이 있다.
돈과 인기를 얻지 못해도 심리학 강의 및 심리상담을 계속 할 것이냐고 사이코프로드에게 물어볼 수 있다.
물론 그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평생 돈 안내고 그에게 상담을 받고 강의를 들어도 되는지 다시 물어보라.
그를 더 알리기 위한 강의후기나 상담소감도 남기지 않을 것이고, 그를 위해 친구를 강의에 데려오지도 않을 것이며, 그에게 어떠한 찬사도 보내지 않을 것인데, 그가 돈과 인기를 얻지 못해도 자신의 활동을 한다고 했으니 그러면 그 말을 지켜달라고 그에게 요청해보라.
'자신의 말에 책임지라고' 그에게 분명하게 말해보라.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재치있음을 가장한 궤변이 시작될 것이다.
그는 사이코프로드다.
그는 자신이 더는 당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고, 그 웃음 속에서 당신을 차단하고 멀리할 예정을 품고 있을 것이다.
사이코프로드는 '성공'이라는 단어와 '돈버는 일'에만 맹렬하게 집착하고 있는 이다.
그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가 심리학을 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사이코프로드는 언젠가는 또 다른 영역의 사기꾼이었고, 미래에도 새로운 영역의 사기꾼일 것이다.
오직 자기의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으로만 살아가고 있는 이다.
자기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에게 자원과 에너지를 착취하는 일에 전혀 서슴없는 동물 그 자체다.
이처럼 사이코프로드가 살아가는 세계는 힘과 약탈의 논리가 전부인 적자생존의 지옥이다. 머리를 굴려가며 그 안에서 끝없이 생존투쟁을 벌이는 '머리만 큰 동물들'이 사이코프로드들이다.
즉, 사이코프로드의 내면에는 지옥이 있다.
영원한 투쟁의 지옥이 있다.
그래서 사이코프로드들과 논쟁을 하게 되면, 그 지옥이 외현화되어 논쟁자도 사이코프로드의 지옥에 휘말리게 된다.
사이코프로드는 일종의 어그로꾼이라고 할 수 있다. 어그로를 끌어 더 많은 이가 자기에게 달라붙게 함으로써, 내면의 지옥을 더 많이 외현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다 같이 지옥에 있게 되니 상대적으로 안심이 된다. 이 또한 무리짓기를 택하는 동물의 습성이다.
동물과 논쟁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약탈의 지옥을 내면에 가진 이와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자신이 동물이기를 선택했으니, 결국 최선책은 패는 일이다.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는 동물에게는 물리적 폭력이 정말로 그 답이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그리고 이 동물들이 우습게 여기는 인간의 제도권은 그 품이 넓어 동물에게도 친절하기에, 사이코프로드의 목숨은 보전된다.
사이코프로드는 자기를 살리고 있는 인간에 의존해서 인간을 죽이려 하는 사기를 지속한다.
이 자기모순이 사이코프로드가 놓인 상태이며, 이것이 바로 그들의 내적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