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안에 사는 윤리적 동물"
사이코프로드는 놀라울 정도로 윤리를 강조한다.
인간은 서로 협력하며 살아야 하고, 과거의 선배들로부터 받은 좋은 것을 더 발전시켜 미래의 아이들에게 건강하게 전해줘야 한다고,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인간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렇게 사이코프로드가 윤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가 동물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동물이니 세상이 다 동물로 보인다.
윤리는 원래 동물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동물들의 행동을 제어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윤리다. 더 쉽게 말하면, 동물이 인간세상에서 그래도 인간의 형식을 갖추고 살 수 있도록 적용되는 거푸집이 윤리인 것이다.
비유적으로 윤리는 쑥과 마늘이다.
윤리를 소비하면 동물들은 자기가 인간이 되는 줄 안다. 이처럼 인간이 되고 싶은 동물들에게 심리학적 쑥과 마늘을 팔아 인간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것이 사이코프로드다. 그렇다고 사이코프로드가 인간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동물을 구원하겠다고 나선 동물 중의 동물이다. 곧, 동물의 왕이다.
사이코프로드는 자신이 동물의 왕이 되고자 윤리를 주장한다.
그렇기에 사이코프로드가 판매하는 심리학적 윤리상품을 구입해서 소비하면 인간이 되지 못한다. 아주 단순하다. 사이코프로드는 동물의 왕이기를 꿈꾸는데, 동물들이 다 인간이 되어 자기의 영토에서 사라지면 그는 왕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결국 사이코프로드는 인간이 되고 싶은 동물들의 욕망을 자극하여, 더욱 동물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길을 안내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선지자의 일이다.
이는 예수가 광야에서 당한 시험과도 유사하다.
악마는 예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존재가 되게 해준다고 제안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동물의 길을 거절하고 사람의 길을 선택하겠다는 예수의 선언이었다.
그리고 이 선택의 핵심은 윤리가 아니다.
비유적으로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빅터 프랭클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이것을 '양심'이라고 다시 부를 수 있다.
양심은 정직한 거울이다. 자신과 타인과 하늘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을 속이고 자기 자신마저도 속이려 하는 사이코프로드들은 이 양심의 기능이 마비되어 있다.
양심이 마비된 이가 대신 윤리를 주장한다.
그렇게 윤리적인 외현을 보임으로써, 자기의 내면에 양심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이코프로드는 위장한다.
사이코프로드가 자기도 양심을 가져 인간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주장할 때의 근거는 그가 한 모종의 의식체험이다. 그는 특정한 의식체험을 통해 자기가 동물에서 사람이 되었다고 간주한다. 곰이 사람으로 바뀐 것 같은 '놀라운 체험'을 한 그 증거로 윤리를 강조한다.
그리고는 이제 자신이 가장 자애로운 윤리적 태도로 다른 동물들을 잘 돌보겠다고 한다. 인자한 유교 선비 같은 모습으로 그들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보살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동물들을 착취하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것은 가스라이팅의 구조다.
최고의 양육자는 원래 최고의 착취자다.
나아가 사이코프로드는 더욱 최고의 양육자이기 위해, 자신이 예수와 같이 종교적 깨달음의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도 은근하고 은밀하게 선전함으로써, 인간의 궁극적 의미까지도 모독하는 일에 성공한다.
그가 갖는 깨달음의 개념이란 아직 인간이 아닌 동물을 사랑하며 그 동물이 인간이 되도록 돕는 최고의 가르침일 수 있다. 이것은 무협지에 자주 나올 법한 유교적 개념이다.
사이코프로드는 이처럼 가장 인간다운 차원의 의미조차도, 전부 다 동물지향성의 논리로 뒤바꿔 버린다.
그럼으로써 그는 커다란 이득을 취한다.
다른 동물들을 구원하는 흉내를 내고 있는 동안, 그는 자기가 동물이라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투사하고, 자기는 상위존재인 척할 수 있는 이득을 확보한다.
즉, 자기는 먹이사슬의 피라미드에서 최상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이들은 이처럼 동물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자리를 얻고자 윤리를 주장하며, 그 윤리에 깨달음이란 이름을 붙인다.
자신이 모든 신적인 영광을 가지려는 거짓선지자들의 전형이다.
가장 영광된 스포트라이트를 얻으려는 이는, 가장 어둠 속에 있는 이다.
사이코프로드는 동굴 속에 산다. 동굴 속에 살며 윤리를 주장하는 동물이다. 무서워서다.
사이코프로드는 자기가 이제는 동굴 밖으로 나가 진리를 알았기에, 아직도 동굴 안에 있는 착한 동물들을 도와주려 한다는 자기의 정체성을 알리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동굴 안에 사는 것은 사이코프로드뿐이다.
자기만이 동굴 밖이 무서워 웅크리고 있기에 모두가 자기를 보호해줘야 한다는 당위성의 윤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며, 자기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싫기에 남들이 그러고 있는 것처럼 투사한 뒤 자기는 동굴 속의 동물들을 보호하는 척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정말로 동굴 밖으로 나갔다면, 자기만 빼고 이미 모든 이가 동굴 밖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가르치고 지켜줘야 할 불쌍한 동굴 속 동물은 어디에도 없다.
자신이 알아줘야 할 동굴 속 마음은 그 어디에도 없다.
동굴 안에서 쑥과 마늘이라는 윤리를 먹으면 사람이 된다는 환상을 팔고 있는 사기꾼만이 있을 뿐이다.
윤리는 동물에게 적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이처럼 사람들을 애초 동물로 보고 있는 것은 사이코프로드뿐이다. 자기가 동물이기에 자연스레 그렇게 보인다.
가장 동물이면서, 또 동물의 왕을 꿈꾸면서, 자신이 가장 사람인 척한다.
이 기만성이 사이코프로드의 동굴 같은 마음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