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사이비에게 상담을 받고 그만"
전화와 이메일, 커뮤니티 쪽지 등으로 많은 문의를 받아왔다. 그게 이 연작글을 쓰게 된 이유다.
그 문의들은 대개 이렇게 시작되었다.
"제 친구가 어떤 분에게 상담을 받았는데요."
"제 친구가 어디에 가서 심리학 강의를 들었는데요."
상담을 받거나 강의를 듣고난 뒤 친구의 상태가 이상해져서 혹시 그 상담자나 강사가 사이비가 아닌지를 묻는 질문들이었다.
많은 경우 아마도 친구가 아니라 본인의 사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본인이 그렇게 당했다고는 말하기가 어렵다.
이게 심리학사기의 가장 비극적인 점이다.
사람들은 사기를 당하면 자신이 바보같고 멍청해 당했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자신을 자책하고 수치스러워한다.
사기는 이처럼 사람들의 수치심을 매우 크게 조장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어려워지고 속만 끙끙 앓게 된다.
더 심한 경우는, 자신의 수치스러움을 잊기 위해 오히려 심리학사기꾼이 제대로 된 인물인 것처럼 찬사를 보내며 지지하게 되는 경우다. 사이비종교에 빠진 이들이 자주 보이는 인지부조화의 현상이다.
사이코프로드들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수치심을 빌미로 잡아 자신의 성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사이코프로드들은 학벌도 능력도 없는 만큼 '자수성가 판타지'에 집착한다. 이것은 자신의 지적 능력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고 세상을 자기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내용의 판타지다.
사이코프로드는 이 판타지에 근거한 인생스토리를 각본처럼 펼쳐간다. 그 세부사항은 거의 언제나 영화 매트릭스에서 묘사될 법한 SF적 개념들을 내포하며, 스토리의 색채는 어벤져스와 같은 근미래적 영웅서사의 성격을 띤다. 텍스트, 프로그래밍, 멘탈리스트, 집단무의식, 해킹, 의식언어, 메타인지, 탈서사적 작가의 시선 등은 사이코프로드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들이다.
사이코프로드가 이처럼 근미래적 SF의 소재처럼 마음 내지 심리학을 다루고 싶어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러면 과학적으로 심오한 것처럼 보이는 착각을 더 유발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대단히 똑똑해보일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사이코프로드의 혈관을 흐르고 있는 핵심성분은 바로 열등감이다.
특히 이들은 지적 열등감으로 인해 자신을 수치스럽게 경험하며, 이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이비과학을 활용해 자신이 가장 지적으로 권위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이코프로드들의 사기에 당한 이들이 왜 극도의 수치심을 경험하게 되는가의 그 이유다.
사이코프로드는 자기가 만들어낸 바보같은 소재를 사람들에게 소비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바보로 만든다. 그럼으로써 자신은 열등감에서 벗어나 상대적인 우월감을 얻어내고, 사람들이 자기 대신 지적 열등감을 느끼도록 촉진한다.
예외없이, 모든 사이코프로드는 이 일을 한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심리학사기는 생겨나는 것이다.
사이코프로드에게 당한 어떤 이들은 대뜸 인근의 심리상담소에 전화를 걸어 거기 사이비 아니냐고 시비를 걸기도 한다. 사기를 당해 생긴 수치심과 그로 인한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서다.
심리학사기에 당한 이들은 이처럼 심리학 및 심리상담이라고 하는 분야 전체를 사이비판으로 의심하게 된다. 심리학 분야에 대한 불신감은 팽배해진다. 그리고 그 피해는 모조리 건강한 심리상담사들이 받게 된다.
성실한 노력을 통해 정당한 수련과정을 밟고 학위와 자격을 얻은 무수한 심리상담사들은, 이 심리학사기꾼들 때문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처럼 똑같은 사이비로 취급받아 저열한 지옥의 일원으로 몰락하게 된다.
나아가 심리학사기꾼들이 내담자들의 마음에 투척한 각종 오물들을 치워야 하는 것도 심리상담사들의 몫이 된다. 상담이라는 활동이 몇 배는 더욱 힘들어진다.
이 연작글은 더는 이러한 사이코프로드들 때문에 못살겠다는 건강하고 성실한 심리상담사들의 마음을 대변하고자 쓴 글이다.
오늘날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이비가 창궐하는 시대다. 분명하다. 남의 것을 표절해 자기의 권위로 삼다가 들통나는 경우들이 빈번하다. 그렇게 안보이던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기꾼으로 드러남으로써, 이제 우리는 전문가라는 것을 쉽게 믿을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오늘날 반지성주의라는 이름으로 전문가불신의 풍조가 생겨난 데는 분명 사람들에게 끼친 사기꾼들의 악영향이 지대하다.
다행인 것은, 사람들이 과거보다는 훨씬 표절이나 저작권침해와 같은 주제들에 더 민감해졌다는 것이며, 또한 사이비에 대한 경계심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여러 소모임들이나 강의플랫폼들에서 어떠한 활동주체가 사이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자 하는 비판적 의식들도 분명 생겨나있다.
더는 사기꾼들에게 바보취급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우리에게 아직 사기꾼을 변별할 수 있는 충분한 안력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심리학 분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자신이 진짜 전문가인 것처럼, 브런치를 포함해 여러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및 플랫폼들에 뻔뻔하게 홍보공지를 올리며 사기의 경력 및 자격을 게시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속는다. 그렇게 당한 뒤 괜히 애꿎은 심리상담사들을 의심하며 오히려 피해를 입은 자신의 정당한 힘이 될 수 있는 이들을 매도함으로써, 더욱 어려운 상황 속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켜간다.
사이코프로드들이 전염시키는 현실이 이처럼 참담하다.
사이코프로드는 그 활동방식 자체가 전염병이다.
열등감의 화로 타오르는 독기운을 가득 품은 불길이다.
사이비에게 상담을 받은 그 친구도 불길이 옮겨붙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다 유독하게 불태우기 위해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이제 진정한 뭔가를 알게 되었다는 듯이 평화롭고 부드러운 미소를 연출할지라도, 그 내장은 불에 타서 더욱 뒤틀려있다. 그렇게 기괴하게 속이 꼬여 어떻게 하면 세상이 대단한 자기 자신을 인정하게 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일로만 하루를 보내다가 우울해진다.
그렇게 친구는 사기꾼과 똑같은 상태가 되었을지 모른다.
사기를 당한 이는 이처럼 또 다른 사기꾼으로 거듭난다. 좀비에게 당한 이가 좀비가 되듯이.
무기력 속에서 그가 온전한 기쁨과 활력을 경험하는 순간은 사기를 치는 그 순간뿐이다. 사기에 의존해서만이 그는 자신이 행복하며 모든 것이 잘 되어간다고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사기중독의 상태다.
모든 중독자는 자신이 중독이라는 사실을 수치스러워 한다.
그러니 심리학사기꾼은 자신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가장 들키기 싫어한다. 그래서 그는 사기꾼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역으로 자신이 심리학사기꾼들을 비판하며 건강한 심리학문화를 만들어가는 인물인 것처럼 곧잘 기만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하든 간에 결코 속일 수 없는 사실들이 있으며, 이는 어떠한 이가 심리학사기꾼인지 아닌지를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의 <사이코프로드 체크리스트>는 유효하다.
① 심리학 분야에서 석박사 이상의 학위가 있는가? (대학원 수료는 결코 학위가 아니다.)
② 심리학박사 이상급 전문가의 권위를 가진 슈퍼바이저가 있는가? 슈퍼바이저의 감독하에 상담활동을 하는가?
③ 심리학박사 이상급 전문가가 보증하는 학회 및 기관에서 발급된 심리상담의 자격이 있는가?
④ 소지한 자격증이 정말로 정당한 수련과정을 통해 취득한 자격증인가? 수련의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⑤ 국내 및 해외의 학술지에 게재된 학술적 업적이 있는가?
⑥ 상담경력에 대해 적격한 심리상담활동으로서의 공인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⑦ 비전문적 대중이 아니라 전문가 집단에서 인정받고 있는가?
⑧ 자기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정식으로 교육분석을 받았는가? 누구에게 얼마나 받았는가?
⑨ 자신의 객관적 경력 및 자격의 수준에 적절한 상담비를 받고 있는가?
⑩ 자신이 정말로 사회적으로 정당한 심리학의 전문가라는 사실에 목숨을 걸 수 있는가?
이 체크리스트에서 긍정으로 대답할 수 없는 문항이 3개 이상인데 자기를 심리전문가이자 상담전문가로 선전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사이코프로드로 판정할 수 있다.
이것은 높은 기준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낮은 기준이다.
학위나 수련과정은 심리전문가나 심리상담사의 전부는 물론 아니다.
전부가 아니라 기본이다.
전부는 커녕 기본도 안 갖춘 이가 심리전문가나 심리상담사로 활동하니 사기가 되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났더니 놀라운 체험과 함께 마음이 다 보이는 심리상담사가 되었다. 그 동안 내 자신이 해왔던 활동들도 실은 심리상담이었다는 걸 알았다. 전부 다 내 심리상담의 경력이다. 자격이나 학위가 무엇이 중요한가? 인생은 실전이다. 나는 대중들도 인정하는 실전경험이 많다. 책으로 공부만 하던 이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의학교과서만 보고 환자 배 하나 갈라보지 않은 의사가 의사인가? 치열한 독학을 통한 실전으로 다져진 내가 진짜 전문가다."
사이코프로드는 대개 이렇게 생각한다.
건강한 심리상담사들은 다 사이코프로드 이상으로 '실전경험'을 갖고 있으면서 그 위에 학위와 자격 그리고 슈퍼바이저와의 관계까지도 갖추고 있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간과한다.
방구석 망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자아팽창이라고 한다.
자아는 사회적 산물이다. 그러니 다른 것이 자아팽창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그것을 갖고 있는 큰 주체인 척하는 것이 자아팽창이다.
혼자 자기 방 안에서 물리학 대중서를 몇 권 읽은 뒤, 자기가 서울대 물리학 박사만큼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습과 같다. 만약 이러한 이가 자신은 물리학 전문가라며 다양한 온라인 채널 등에 자기를 고급상품으로 선전하기까지 한다면 그는 사기꾼이며, 일종의 정신병자다.
전술했듯이, 심리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사기꾼들에게 가장 우습게 보이는 보이는 분야는 오늘날 단연 심리학이다.
그러니 이 사이코프로드들을 알아볼 안력을 갖추는 일이 우리에게는 시급하다.
심리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손으로 '건강한 심리학'의 영토를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글도 그 일환이다.
이 연작글은 사이코프로드를 깨우치게 하려는 글이 아니다. 이러한 글로 사이코프로드들이 변화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관심없다. 애초에 그러한 목적의 글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더는 사이코프로드들에게 속지 않을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가보고 싶은 바람을 담은 글이다.
도시전설처럼 끝없이 연쇄되는 친구의 친구(friend of a friend)의 비극적 이야기가 이제 멈추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고 싶었던 글이다.
오직 그 불우했던 인간의 친구를 위해서만 써온 글이다.
우주에서 제일 똘똘한 우리 사이코프로드들에게는 이 말만을 남길 수 있겠다.
반박시 님 말이 다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