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지구"
엄마와 또 말싸움을 했다.
이놈의 집구석, 집을 나가야겠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지구를 떠나야겠다.
살 의미가 없다. 되는 일도 없고, 잘 해보려고 해봤자 오해만 쌓인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몸은 무기력 속에 피곤함으로 눌어붙고, 의식은 무중력 속에 몽롱함으로 떠다닌다.
이것은 좌절의 상태이며, 지구는 좌절의 별이다.
좌절한 이의 마음에는 언제나 가리워진 소망이 있다.
마음은 그 소망을 담아 집을 나간다.
시작과 끝을 임의로 정해 스토리라는 '한계'를 만드는 언어의 집을 나가야, 자신에게 어떠한 '한계없는' 소망이 있었는지는 비로소 환히 발견될 수 있는 까닭이다.
마음은 결국 소망으로 알려지기 위해 집을 나간다.
엄마에게 못난 딸이라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 엄마에게 좋은 집을 사줄 수도 없었고, 엄마가 경험하는 직장갈등의 고민을 효과적으로 해결해줄 수도 없었으며, 심지어 설거지 하나 제대로 돕지 못하는 딸이다.
할 수 없는 저주의 스토리들로 가득찬 저주받은 딸이다.
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들도 있었다. 스토리 속에서는 그 이유들이 명확하게 제시되었다.
'아, 엄마의 스토리와 나의 스토리가 달라서 그렇구나.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모두가 다 정당할 뿐, 다만 원래 인간은 서로의 스토리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뿐이구나. 그게 또 인간이라는 존재가 살아가는 재미이자 슬픔이기도 하겠지. 모두가 자기만의 스토리를 가진 외딴 섬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칠석에는 오작교가 놓이지는 않을까 아름다운 꿈을 미래로 전하고 있는 작은 별들. 이렇게 결국 섬과 섬을 잇는 다리가 되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게 해주는 것 또한 스토리라는 것이겠지. 후훗.'
지랄은 한번 시작되면 풍년이지만, 이제는 지구촌의 풍년 따위에는 관심없다.
우리는 지구를 떠날 거니까.
그런데 어디로 떠나고 싶은가?
우리의 소망이 다 이루어진 곳.
무엇을 소망했는가?
엄마가 부자가 되고, 건강하고, 외롭지 않고, 부족한 것 없이, 늘 웃음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기를.
우리 자신이 할 수 없는 그 모든 한계의 이유들을 넘어서서, 그래도 소망하고, 또 그 소망이 이루어진 곳, 바로 그곳으로 가고 싶다.
지구를 나가 그곳으로 가고 싶다.
'마음의 지구'로.
이렇게 지구를 나가려는 이는 마음의 지구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바라던 소망의 크기만큼이나, 그 소망이 다 이루어진 거대한 크기로 창조되어 있는 마음의 지구를 우리는 마음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마음이 담고 있던 소망으로 형상화된 그 소망의 별, 마음의 지구를 목격하게 된다.
이 마음의 지구에도 엄마가 있을까?
불현듯 궁금해진다.
자신이 엄마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 정말로 다 이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엄마는 어떤 모습일까?
살짝만 보고 와야겠다.
시선이 카메라처럼 줌인되어 대기권으로 돌입한다. 동아시아대륙과 한반도로 근접해간다. 서울, 합정동, 그리고 엄마에게 선물한 메세나폴리스가 보인다. 저기에 살고 있겠지? 휴스턴, 휴스턴, 이제 곧 착륙 직전이다.
엄마가 있다!
식탁 위에는 벤츠와 포르쉐의 차키도 보인다.
이제 허리는 아프지 않은가보다. 요가를 하며 관절을 쭉 뻗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다.
매일 아침 화원에서 배달되는 꽃들로 화분들이 싱그럽다. 다즐링의 향기는 부드럽게 집안을 감싸고 있다. 건강과 여유가 물씬 느껴지는 배경 속에 있는 엄마의 모습이 조화로운 그림이다.
엄마는 행복한 것 같다.
그 뒷모습만 봐도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이다. 마음의 지구에서는 이렇게 잘 살고 있구나.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홀로 줌아웃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엄마가 말을 한다.
"혜정이니?"
보이지 않는 이 시선을 어떻게 눈치챘을까?
엄마가 말을 건네며, 서서히 고개를 돌린다.
시선이 마주한다.
이제 알겠다.
내가 소망했던 것은 이 얼굴이다.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이 행복한 얼굴을 나는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만이 나의 소망이었다. 이것만이 내가 찾던 답이었다.
마음의 지구에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마음의 지구에는 모든 것이 이미 다 이루어져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내가 사랑하는 모습 그대로 가장 온전하게 숨쉬며 다 살아가고 있는 곳, 마음속에는 분명 그러한 소망의 별이 있었다.
그 별에는 가장 행복한 엄마의 모습이 있었고, 그 엄마의 얼굴이 있었으며, "혜정이가 만들어준 이 별에 살 수 있어서 엄마는 너무 행복해."라며 전한 엄마의 환한 미소가 있었다.
집을 나가 공원 벤치에 앉아 들여다본 마음의 지구에는 그렇게 혜정이와 엄마가 같은 표정으로 서로를 만나 이룬 그 하나의 미소만이 가득했다.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그 소망은 이미 이루어졌던 것이다.
엄마의 행복을 소망하는 마음만큼 이렇게 커진 마음의 지구에서 만난 엄마의 표정은 분명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살짝 들여다볼 때면, 엄마는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웃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컸던 만큼, 해주지 못한 자기비난의 무게에 스스로 눌려 늘 임전태세로 선빵을 날리고자 했던 과격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제는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때라고 느낀다.
툭툭 털고 벤치에서 일어선다.
그러다가 불현듯 하나의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 현실의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나도 설마 그러한가?
나도 지금 바라봐지고 있는가?
사실은 나에게도 모든 것이 다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인가?
내가 가장 사랑해서 그 행복을 소망한 이들이 마음의 지구에서 살게 되었듯이, 어쩌면 나 또한 이 지구에서 그렇게 있게 된 것인가?
이 어마어마한 느낌에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음이 즉각 또 집을 나가려 한다.
망설이다가 한번 물어본다.
"엄마야?"
그리고 왈칵 미소가─────.
마음이 집을 나가는 것은 언제나 존재의 근원을 묻고, 또 만나고 싶어서다.
그것만이 마음에 담긴 유일한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