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심리학 #2

"강력한 뻥과자를 획득하는 법"

by 깨닫는마음씨




사이비라는 것은 언제나 어떤 것에 대한 사이비입니다.


'진짜인 척하는 것'이라는 사이비의 뜻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누구도 바나나맛 우유를 사이비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짜파게티를 사이비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바나나맛 우유는 바나나와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맛있는 음료이며, 짜파게티 또한 짜장면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맛있는 음식입니다.


그러나 바나나맛 우유가 바나나라고 우기거나, 심지어는 자신이 바나나보다 더 진정한 바나나라고 주장할 때, 또는 짜파게티가 동서고금의 모든 위대한 짜장면의 지혜를 선별적으로 통합해서 만들어낸 최고의 짜장면이라고 선전할 때, 바나나맛 우유와 짜파게티는 사이비가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NLP, EFT, 호오포노포노 등의, 사이비심리학으로 분류되는 것들은 심리학과 연루시키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는 사이비가 아닙니다. 그 각각은 정당한 공상과학소설이고, 정당한 한의학적 소재이며, 또 하와이원주민들의 정당한 문화전통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심리학이라고 주장할 때 이는 사이비심리학이 됩니다.


여기에는 '권위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이비는 '진짜의 영토에서 진짜보다 더 권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가짜'의 현상입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갖고자 하는 이가 매우 자주 사이비가 되곤 합니다. 이러한 이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자기의 권위 획득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짓밟고 자기가 제일 높은 존재라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사이비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욕먹게 만듭니다.


아름다운 원주민들의 전통인 호오포노포노를 놀라운 심리학의 마법으로 주장하는 이가 있기에, 멀쩡하던 호오포노포노는 끝내 욕을 먹게 됩니다. 나아가 이러한 것을 팔고 있는 심리학의 영토는 조금 이상한 분야로 취급당하며, 멀쩡하던 심리학도 괜히 욕을 먹게 됩니다.


모든 것을 조롱하고 바보취급함으로써 자기만이 제일 높아지고자 하는 이 일을 사이비심리학의 주체들은 자행합니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강력한 권위를 얻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다른 이들을 모자란 바보나 불쌍한 아이로 취급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위를 얻으려고 할까요?


아무 것도 없이 속이 텅빈 자입니다.


자기가 쌓은 진짜의 시간이 없는 이들이 늘 열등감에 시달립니다. 열등감이 만든 피해의식에 싸인 채 지금 자기를 무시하냐며 권위를 내세우곤 합니다.


속이 비어 있으니 껍데기라도 센 척하며 부풀려보려는 것입니다.


사이비심리학은 이러한 뻥과자의 소재이며, 사이비심리학의 주체들은 세상에서 제일 강력한 뻥과자를 만들고자 하는 빵과자장수입니다.


사이비심리학의 설명들이 다 가장 권위있는 척하며, 또 노골적으로 '강력한 권위를 얻는 법' 등의 선전문구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그 이유입니다. 태생이 뻥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인생을 회피하고 늘 일확천금이나 숏컷과 같은 성공에 대한 망상만을 꿈꾸던 이들이 자주 도달하게 되는 자리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성실하게 살지 않아 현재 쌓인 자원은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과대한 자아상을 만족시킬 성공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이들은 결국 뻥으로 그것을 이루려고 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중요한 인물이 되고자 했던 양치기소년의 모습과 같습니다. 특히나 오늘날에는 '어그로'는 돈이 됩니다. 돈은 이들의 자아팽창을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소재입니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뻥을 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일이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이비들을 사기꾼이라고 비판하는 일은 실은 아무 의미없는 일입니다. 이들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 부모에게 사기꾼이라는 말을 들어도, 당신들처럼 몇 푼 안되는 돈에 벌벌 떨며 약하고 불쌍하게 사는 것보다는 낫지, 라며 피식 웃어넘기는 이들입니다.


"응~ 나 사기꾼 맞는데 너보다 돈 잘 벌어~ 내가 이겼네~ 질투나서 어쩔 줄 모르겠지? 후훗. 배알 꼴리면 내 제자가 되어 나한테 돈 버는 법 배우든가~"


사이비들의 전형적인 대사입니다.


소위 말하는 도판, 영성판 등지에서 촌스러운 메타인지 체험 같은 것을 한 뒤 자기가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다른 누구보다 높은 자기의 스승된 권위를 증명하기 위해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결국 이들은 돈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며 그 앞에서 벌벌 떨던 자기들의 부모와 완벽하게 똑같은 모습이 되어 실은 자기들 또한 돈에 벌벌 떨고 있는 것입니다. 돈만이 자기의 존재를 유일하게 증명해준다고 간주하며, 돈이 될 만한 어그로 뻥튀기 사업만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끝내 모른 척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자기 존재의 부재감입니다. 내면이 텅텅 빈 공허한 그 감각입니다.


뻥과자를 더 크게 만들수록 그 안쪽의 공간은 더욱 커집니다.


허세를 부리면 부릴수록 마음은 가난해져서 조바심이 커집니다.


그러다가 이들이 문득 내면을 들여다보게 될 때 엄청난 공포감이 엄습해옵니다. 자기의 인생이 전적으로 무(無)였다는 사실이 조우되는 까닭입니다.


자신은 많은 인기와 돈을 얻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강력한 권위자로 인정받는다는 언술로 자기를 위로하려 해보지만, 내면에 펼쳐진 냉랭한 지옥은 그러한 자기위로의 온기를 가차없이 후 불어 꺼버립니다. 그러면 추위에 더해 어둠까지 밀려와 더 공포스러워지며, 그만큼 뻥으로 껍데기를 더욱 부풀려 자기를 보호해야 한다는 충동이 강렬해집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역기능적 순환은 생겨나며 지옥의 세력은 한층 강력해집니다.


결국 사이비들은 가장 강력한 지옥의 권위를 얻게 되는 셈입니다.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내면의 지옥은 무엇일까요?


이 대답은 분명합니다. 존재해선 안 된다는 '존재의 수치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열등감은 그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자기 존재의 수치심을 씻고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이들이 강박적으로 강력한 권위를 추구하게 됩니다. 앞서 묘사한 것처럼, 내면이 허한 이들이 껍데기로 무장하려는 행위와도 같습니다.


보통 이러할 때 취해지는 껍데기는 당시에 인기있는 사회적 소재인 경우가 지배적입니다. 그래야 "와 껍데기 예쁘다."라며 더 많은 사람들의 호의섞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사이비심리학이 사이비심리학인 이유는 오늘날 심리학이 인기있는 소재라서입니다. 단지 그 이유입니다. 사이비가 자꾸만 자기도 과학이라고 주장하려는 이유 또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과학이란 것이 가장 신뢰성 높은 소재로 전제되어 있어서입니다.


이처럼 사이비심리학은 기본적으로 대중적 유행과 영합하려는 속성을 갖습니다. 동시에 그 주체들은 자기들이 대중 위에 서서 대중을 조중할 수 있다고 간주합니다.


"뻥!" 소리를 크게 울리면 사람들이 다 자기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며 자기의 생각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 이것이 바로 사이비가 꿈꾸는 강력한 권위입니다. 지옥에서 만들어져 더 많은 이들을 공허한 지옥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강력한 뻥과자입니다.


이 뻥과자를 소비하는 이들이 지옥에 같이 말려들게 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소비하면 할수록 실은 유치한 맛이라 수치스러워지는 까닭입니다.


그렇게 이미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커진 수치심에 의해, 자신이 이상한 것을 소비하며 사이비에게 속았다는 사실은 인정하기에 매우 어려워집니다.


특히나 자신이 평균 이상으로 똑똑하다고 믿는 이들일수록, 그러한 자기의 판단으로 사이비를 '현명하게' 선택했다는 사실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수치심으로 인한 고통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인지부조화를 일으켜 오히려 자기를 남용한 사이비를 보호하려는 입장을 취하게 되곤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사이비가 공략하려는 정확한 급소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이비는 자기의 뻥과자 같은 권위에 대한 최종적인 보장을 얻게 됩니다. 양치기소년을 대신해 이제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주게 되니 양치기소년의 권위는 자동적으로 더욱 굳건해집니다.


사이비는 이처럼 수치심에서 태어나 결국에는 그 수치심에 빌붙어 살기까지 하는 기생충의 생태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수치심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더 많은 사람들을 수치스럽게 하려고 하는 것이 실은 사이비의 무의식적 목표입니다.


이 목표를 위해 각각의 분야에서 멀쩡한 것들을 모아 이상한 형태로 조립해 결국 사이비적인 소재로 만들어내고, 이 이상한 것을 최고의 것처럼 포장해 사람들에게 전파함으로써 모두가 다 이상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사이비의 꿈입니다.


강력한 뻥과자의 맛에 담겨 있는 공허한 그 꿈입니다.


남의 생각을 따라 살거나,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며 살 때, 우리는 자신의 시간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그 둘이 싸우는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싸움만 하고 있으면 자신의 시간을 쌓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내면은 텅비게 됩니다. 이럴 때 경험하게 되는 것이 수치심입니다. 남의 생각을 숭배하거나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면서 그 둘을 대립시킨 결과는 반드시 수치심입니다.


그리고 대립의 소재였던 남의 생각이나 자기의 생각이나 둘 다 똑같이 유치한 소재라는 것이 드러나고, 그 유치한 것들에 목숨을 걸었던 자신의 삶이 전적인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알려질 때, 천지를 흔드는 "뻥!" 소리와 함께 인지부조화의 뻥과자는 생산됩니다. 사이비가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뻥치는 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꼭 책에서 주워보거나 특정분야의 권위자에게 들었던 남의 생각을 자기의 생각처럼 말하며 뻥을 칩니다.


여기에는 이중적인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남의 생각과 자기의 생각을 다 존중하는 형태로 통합해서 갈등이 없게 하려는, 그럼으로써 더는 자기가 수치스러워질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가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둘을 동시에 조롱하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반대되는 것들을 다 알아주려는 이들은, 실은 그것들을 다 조롱하려는 의도 속에 있는 이들입니다.


자기는 초월자처럼 이분법의 바깥으로 빠져서 그것들을 존중하는 형태로 조롱하는 것이, 가장 순결하게 자기를 수치심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최종적인 문법이라고 이들은 믿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궁극적 '자기의 생각'을 지옥처럼 고집하는 것이 결국 사이비입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형제자매와 싸울 때의 그 양상입니다. 아무 내용도 없지만 그 생각의 형식만이 고집됩니다. 그러한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전적으로 무의미하며 공허하기만 한 일입니다.


뻥과자의 텅빈 속에는 분명 이 허무주의라는 지옥이 담겨 있습니다.


허무해서 외롭고, 외로워서 사이비는 사이비가 됩니다. 외로우면 조금 미치는데, 모든 사이비가 그렇습니다.


자신들의 고유한 영역에서 멀쩡하게 존재하는 정상적인 것들을 끌어들여 이상한 것으로 뒤바꾼 뒤 자기 영토에 강제적으로 위치시킵니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똥을 던지며 조롱한 뒤 우리집에 놀러오라고 말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뻥을 쳐야 사람들이 자기에게 호감을 보이고, 자기를 필요로 하며, 나아가 자기와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 이 미숙하고도 불가능한 꿈이 강력한 뻥과자의 텅빈 속에는 가득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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