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손편지가 편지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손편지'가 아니라면 발 편지라도 있다는 건지...
주로 이메일이나 SNS를 이용한 메세지를 주고받다 보니
정말 손으로 한 자 한 자 눌러쓴 편지가 귀해졌으므로 강조하기 위함이겠지.
'수제'버거처럼.
지난 목요일 퇴근 무렵 차고지 근처에서 콜을 받았다.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남자였다.
치료시간이 조금 더 남았으니 와서 기다려달라고 부탁했고
목소리가 상냥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대기하는 동안 화장실도 다녀오고 스트레칭으로 몸도 풀었다.
오래지 않아 이용객이 보호자와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이용자는 20대 정도의 학생으로 보였고, 보호자 역시 많아야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리프트를 내리는데 이용자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보호자와 속삭였다.
요는 운전기사가, 알던 운전자가 아니라 '나'라는 것이었다.
아직 전용차량을 지정받지 못한 나였기에, 휴무자의 차량을 운전했으므로 차와 기사가 매치되지 않았던 것.
내가 운전했던 차량의 기사는 몸이 아파 1년가량의 휴직계를 낸 상태였다.
설명을 하고 나니 손님은 안심이 되어 보였다.
그는 전 기사님과 친했다고 하면서 보고 싶다고도 했다.
이용자가 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친분을 가지고 있는 그 선배 기사를,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병원을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은 보호자를 통해 내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
편지였다.
"이 편지 제가 받아도 돼요?"
선배 기사에게 주려던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더니 '아니에요, 기사님 드리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뭐지?'
그러니까, 그 손님은 그날 그날 떠오르는 생각이나 정보를 적어두었다가 만나는 운전기사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운전 중이라 읽어 볼 수는 없어서 '정말 고맙다'라고 인사를 했더니
보호자에게
"이 기사님도 되게 친절하신 것 같애..."
라고 말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기사님, 40대로 보이세요"
"40대 맞아요.."
"30대로도 보여요"
"고마워요...."
"20대까지로도 볼 수 있겠어요"
"네? 에이~ 그건 아닌데..."
30,40대로 보인다는 말까지는 그냥'그런가 보네'했지만,
20대 얘기가 나오는 순간 어째 '이 편지가 내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국에 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간다면 유심히 보아야겠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두었다가 그 손님을 만나게 되면
"손님 말대로 정말 색깔도 다르고 소리도 크던데요"
라고 얘기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진짜' 편지를 받아본 게 얼마만인지...
그것도 연필로 쓴 편지는 아마 국민학교 이후로 처음이지 싶다.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도 그는 봉투를 건넸다.
문자로라도 답변 쓰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오늘은 뭐라고 썼을까?'라는 기대가 조금 더 컸다.
퇴근 후 사무실에 들어와 봉투를 열었더니
이번에는 프린트된 편지였다.
약간 서운(?)했지만... 손편지보다 편리해서 그럴 수도, 아니면 컴퓨터 사용법을 배운 걸 자랑삼아 프린트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신분당선을 타보았었는데...
그 손님 아니었다면 그게 자동으로 운전되고 있는지도 몰랐을 테지.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고 또, 게으르기도 해서(이게 더 큰 이유) 답장을 쓰지는 않고 그때마다 문자로 대신했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연필로 답장을 써서 건네고 싶다.
어떤 내용으로 채울까... 정말 미국을 여행하고 경험담을 써보고는 싶다.
그러면 정말 나를 보고 싶은 기사로 기억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