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배송일은 내게 꽤 잘 맞는 일이었다.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동안 해왔던 여러 직업들 중에서 괜찮은 편에 속했다.
그래서 5년 넘게 하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우리구역은 뒷골목의 뒷골목까지 훤했고 수많은 고객의 대략적인 성향까지 두루 파악하게 되었으니 나름 일에 대해서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일도 일이지만 무엇보다 함께 했던 사람들이 좋았었다.
일도 괜찮았고 동료들도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고민했던 이유는 조금씩 체력적으로 힘듦을 느꼈고,
그래서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마침 괜찮은 일자리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가 불확실했다.
'기간제 임시직'
정규직을 염두에 둔 것이었지만, 정규직이 된다는 보장도 없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경쟁률도 어마어마하단다.
무엇보다도 이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사람이었다.
5년여 동안 일하며 함께했던 사람들.
너무 정이 들어버렸다.
동료들은, 정규직도 아닌 기간제 일자리에 뭐하러 가느냐고 만류했다.
그래도 더 늦으면 이런 고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일단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았고...
준비해 간 예상 질문이 나와서 비교적 덜 버벅거리며 대답을 할 수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 보니 마트 배송일을 그만두고 이직에 대해 알아볼 수 없으므로
직장을 옮기는 사이에 공백이 있으면 안 되었고, 있더라도 최소화해야 했다.
(내 경우는 이직을 하려면 우선 차를 팔아야 했다.
지입차이므로 마땅한 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헐값에 넘겨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헐값은커녕 아예 팔리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사겠다는 사람이 여럿이면 제 값 이상을 받을 수도 있다.)
다행히 마트에 출입하던 택배기사분의 소개로 좋은 사람을 만나 차를 양도할 수 있었다.
일도 잘하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있단다.
차를 양도한 돈으로는 남아있던 대출금을 상환했다.
계산해 보니 정규직 시험이 있을 연말까지의 용돈과 생활비, 그리고 약간의 비상금으로 쓰면 될 만큼의 돈이 수중에 남았다.
기간제 근로자는 거의 100% 국비지원으로 학원을 다닐 수도 있다.
시간이 많이 남아 학원을 등록했고, 잠시나마 학생 신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이러다가 시험에 떨어지면... 대책이 없다.
운전은 계속하고 있다.
전 직장의 주 무대는 노원구였고, 이제는 서울 전역과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의 일부로까지 많이 넓어졌다.
전에는 상품 배달이었고... 지금은 손님을 모시고 있다.
장애인 콜택시 운전원.
'지금 댁 앞에 있습니다'라는 기존의 매거진 제목과 잘 어울리는(약간의 어감의 차이는 있지만)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