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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Feb 19. 2023

일상 : 페이스북과 자격지심

페이스북에서 내가 몸 담았던 단체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진들을 본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직원들,  탁구 클럽 사람들, 학교 동창들. 그들이 함께하고 있는 사진들을 본다.


거기를 나보다 먼저 떠났던 사람들, 나 이후에  떠났다는 사람들이 그 모임에 아직도 거리낌 없이 나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속해 있을 때는 나 역시 상당한 결속력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활동했었다.  궂은일 험한 일 도맡아 했고  사람들의 경조사에도 빠지지 않고  쫓아다녔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그곳들을 떠난 후  다시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을 뿐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 '곁'을 내어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순간순간 몰두할 대상,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나저나  다 같이 모여 있는 사진들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다. 


"무슨 목적으로 뭐 건질 게 있다고 저런 곳에 계속 나갈까"

무엇보다 거기에 내가 없어 시샘이 난다.




아주 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사람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재기에 성공했는지, 다 잊고 카메라 앞이라 잠시 웃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요즘 세상에 다시 일어서는 것이 쉽나. 행색이 초라한 걸로 봐서는  모르긴 몰라도 사진 찍는다고 하니 억지로 웃고 있을 것이다.


나잇살이 붙은 사람들.  사정이야 어쨌든 관리하지 않는 모습은 미련해 보인다.  나도 살이 좀 붙기는 했지만.


그 성질머리 하며 일그러진 세계관이 아직도 얼굴에 가득한 사람들. 저런 사람들이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다니 바람직하지 않다. 저런 사람들을 왜 받아 주는 거야 도대체.  운영진은 반성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은 사람들. 적잖은 세월이 지났는데 왜 저럴까.  난 이만큼 나이 든 티가 팍팍 나는데.  아무튼 제일 부러운 부류다.


한 명씩 파도타기로 그들의 근황을 들여다본다.  다들 견고하게 살고 있음에 살짝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거창하게 어디어디 CEO라고 적은 사람들, 최고경영자라고 적은 사람들. 기본이 임원이다. 

누구는 멘트에 ‘항상 최고만을 추구해 온 내 삶에... 어쩌구저쩌구’라고 적어 놓았다. 

가당찮다.  똥멍청이었던 기억이 있는데.


[아무리 잘 나가봐야 물질적 성공은 중요한 게 아냐, 나처럼 풍성하고 깊은 정신세계로 살아야지 진정 성공이지.  니들이 세속적 성공을 탐할 때 난 영혼을 키웠어]라고 자위해 본다.


나처럼 좌천이나 답보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 더 정이 가는 건 그런  내 자위가 내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들의 카톡 프로필을 다시 본다.


궁금하고 질투가 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프로필에는 호감이 간다.

'언제나 배고프게 언제나 바보같이' 같은 각오를  적어 놓은 것도 뭐 나름 OK다.


'다름과 틀림을 배워 가는 중입니다' 이런 건 너무 싫다.  저런 겸손한 학습형 부류의  인간이 아닌데도 어디서 베껴다 놓았는지 질색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누가 써 놓았냐에 따라 쓰레기 문구로 바뀐다. 이렇게 하는 건 사이코패스 테러리스트가 '박애, 희생, 사랑, 공감'을 입에 담는 것과 진배없다.


'Again'  'Never let me down'  'Que sera sera' 등의 모호란 영문 글귀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나도 예전에 한번 'Disconnected'라고 프로필에 해두었는데,  지인들이 내 카톡 계정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카톡 탈퇴했냐고 해서 다른 걸로 바꿨던 적이 있다. 


'좀 편하게 살려고 했더니'  ' 난 정말 안될 놈이야' 같은 자학 문구를 제일 좋아한다.

꼭 나 같아서 좋다.  그런데 저렇게 써 놓고 잘 살고 있으면 배신감을 좀 느낄 것 같다.





뭐가 애달픈지 조금 있다 그 사진 속 중 한 명에게 조심스럽게 친구 요청을 날려 본다.  

응답이 없어 한동안 안달이 나있다가 존엄성 없게 친구 요청 취소를 누른다.


누구 하나 날 반기지  않을 사람 없거늘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호기롭게 떠나놓고 성공하지 못한 자격지심 때문이겠지. 이번 추석에는 전화 한 번 해볼까.  


다시 다른 몇 명에게 친구 요청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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