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인 Feb 11. 2020

브라보 마이 라이프 03

벌써 20년!  달고 쌉쓰름한 자영업분투기 04

하지만 이때까지는 우리의 용감한 김 사장님은 절망하지 않는다.

이게 다 경험이 없어서이지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젊어 고생만 사서 하나.

100세 시대라는데 나 정도면 청춘이지.


일하기 편하다고 어색하게 떨쳐입은 청바지가 이제 막 익숙해지는 마당인데

그래. 다시 추스르고 이번 실패를 교훈 삼아 한번 더 재도전해보자.     

다행히 제2, 제3, 의 초짜 김 사장이 널리고 널려서해외로 이민 간다 똑같은 핑계 대고 가게를 넘겼다.

다시 브로커 비용이 들었고 인테리어니뭐니 가지고 있던 자본의 반 정도를 잃었지만 

아직 억 단위의 돈이 남아 있다.


이거면 충분해     

너무 이름나서 가맹비나 권리금이 비싼 거 말고 작고 실속 있는 거 해야지.

고생 좀 해야지 뭐.

괜찮아. 아직.     

김 사장님은

그렇게 긍정적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프랜차이즈를 전전하는 사장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다.

왜 사거리 피자집은 우리가 상호를 외우기도 전에 간판이 그렇게 자주 바뀌는 걸까.

집에 쌓여있는 자석 전단지는 내가 기억했다가 마침 시켜먹으려고 하면 전화를 안 받는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떵떵거리는 가맹점으로 시작한 김 사장님은 몇 달 혹은 1년을 주기로 조금 더 영세한 조금 더 겸손한 브랜드의 프랜차이즈로 한 단계 한 단계 

내려오기 시작한다.      

이거는 확실합니다.

새로 뜨는 브랜드를 하셔야지요.

** 그거 요새 누가 먹어요. 먹거리도 트렌드예요. 트렌드

참 안 트렌드스럽게 생긴 세상 촌스러운 브로커가 살판났다는 듯이 훈계를 해댄다.


에이... 그 브랜드 사장 놈 제가 잘 아는데요.

완전 사기꾼이에요. 다단계 했던 애들이잖아요.

그런 회사 믿고 가게 차리시는 거 아닙니다. 제 말 믿으세요.

자기들이 더 사기꾼 같은데 덮어놓고 남 깎아내리는 못된 본사의 꼬임도 이제는 속이 뻔히 보이지만 이렇게 라도  털어놓고 

어려운 사정 의논할 데가 여기밖에 없다.

친구고 식구고 까맣게 탄 내속을 누가 알랴.


안 그래도 뭔가가 찜찜했는데 오호라...

지난번 그 본사가 양아치 짓을 했기 때문이구나 큰 깨달음을 얻는 것 같다.

이제 진짜 자본이 별로 없기 때문에 진짜 이번엔 성공해야 한다.

시골에 계신 큰아버지를 꼬셔서 선산을 담보로 돈을 융통했다.

사촌들이 알기 전에 갚아야지 안 그러면 얼굴 못 들고 다니는 것은 시간문제다.     

갖가지 기기묘묘한 방법으로 돈을 융통하기 시작한다.     


직장 생활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내가 궁해서 뛰어다니기 시작하니까

의외로 돈을 얻을 데가 적지 않다.

내가 다 그동안 인맥관리해놓은 덕이지.

일 이년 고생하고 다 갚으면 되지. 사업하면서 자기돈으로 하는 사람 있나.

기업들은 지 돈보다 몇 배 더 빚내서 한다잖아.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영악하게도 돈을 융통할 수 있는 방법까지 귀띔을 해준다.


그게 다 나중에 빚으로 쌓인다는 생각은 못하고 또 다른 꿈에 부푼다.      

이제 월 천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데

그래 월 500이면 안정적으로 노후를 살 수 있지.

죽으면 썩어질 몸 아끼면 뭐해.

이번에는 사람 쓰지 말고 내가 직접 뛰어야지. 야무진 성실함이 더욱더 단단해진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겸손한 프랜차이즈는

막상 오픈을 하고 보니.

나도 내 상호가 헛갈릴 정도로 인지도가 없다.

게다가 비슷한 컨셉의 가게들이 한 상권 안에 대여섯 개가 넘을 정도로 넘쳐난다.

한집 건너 하나씩 비슷한 컨셉의 가게들이 들어서는데 같은 회사는 아니다 보니

본사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지지도 못한다.      

본사에서 떼 가는 게 없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더니 떼 가는 게 없는 것뿐 아니라 이렇다 할 영업지원도 없다.


오픈 첫날 풍선 인형 탈바가지 두 명이랑  알바비 적다고 짜증 내면서

동네가 구려서 사람들이 쳐다도 안 본다고 춤도 대충 추던 삐끼 아가씨 한 명 보낸 것 외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내가 본사 방문했을 때 분명 영업부 직원들이 다 외근 나갔다고

요새는 직원들이 사무실에 들를 새도 없이 전국을 돈다고

그 정도로 잘된다고 사장이 자랑 자랑하더니 사실은 내가 만난 사장이랑 서성대던 직원 몇 명이 회사 직원의 전부였던 것 아닌가...

김 사장은 본사가 영 미덥지 않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04로 이어집니다. )

작가의 이전글 브라보 마이 라이프 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