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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Mar 08. 2020

아... 마스크 벗고 싶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구례 꽃놀이 가고 싶은 아줌마의 한탄

코로나 때문에 세상이 난리다.    

  

풍파 많은 한국에서 근 50년을 살고 있으니 전쟁 빼고 어지간한 난리는 다 겪어봤지만

이번에는 참 난리가 특이하기도 하다.

타인과 2미터를 떨어져야 피할 수 있는 난리라니... 참 희한하다.


언젠가 한 해는 1년 동안 바다에서 큰 배가 빠지고 지하철이 터지고 한강 다리가 끊어지고 이 세 가지 환란이 한해에 일어나서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그렇느니 나라가 기울고 있다는 징조라느니 참 세상 사람들 입방아가 유난했던 해도 있었다.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 일일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서 그렇지

돌아보면 마음 아픈 일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그런 험한 시간들을 다 보내고도 다시 해가 떠오르면 밥벌이를 하고 웃긴 일에 웃고 졸리면 잠자고 멀쩡히 일상을 살아내는 인간들도 참 대단들 하다 싶다.     


몇백 명의 꽃 같은 아이들을 짙고 험한 바다가 며칠에 걸쳐 꼴깍꼴깍 삼켜버리는 것을 눈코입 똑똑히 뜨고  지켜봐야 했던 피같은 봄날도 있었다.

   

이번 코로나는 어느 날 지나가다 들른 손님처럼 우리한테 왔다.

대수롭지 않게. 아... 그런가 보다 며칠 정신없고 저러다 가겠지 했더니만 그 손님이  안방을 차지했다.

손님이 누군지 어떻게 내보내는지 궁리할 새도 없이 부리는대로 팔짝팔짝 뛰면서 콩 튀듯 팥 튀듯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이 와중에 엉뚱한 신념으로 뭉친 뜬금없는 종교집단은 나의 병을 너에게 알리지 말라...

이순신 장군 코스프레인가?  황당한 고집으로 전화도 안 받고 기를 쓰고 의사를 피해 다니고 있단다.

다종 다양한 인간의 어리석음이 염치없는 바이러스와 뒤범벅이 되어서 더 정신이 없다.       


검부라기처럼 힘없고 대책 없는 시민들은 그저 내 입 하나 겨우 막을 마스크나 한 장 어떻게 구해보려고 한편에선 난리를 치고 한편에선 왜 그리 오두방정이냐고 서로 싸우고 난리도 아니다.      


내 침을 막으려고 쓰는 건지. 누군가가 튀는 침을 안 맞으려고 쓰는 건지. 그런 거 따질 새도 없다. 그냥  입이 처음부터 내 몸에 달리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사람처럼 서로의 입을 부끄러워하며 피하고 가리기 바쁘다.  어디라도 사람 모이는 곳을 들고 날 때면 어디나 비치되어 있는 100% 살균 알코올 세정제로 손바닥을 열심히도 비빈다.  마트에서 본 어떤 아저씨는  처덕처덕 다량을 짜더니 손바닥은 물론 팔뚝까지 하도 벅벅 문질러서 저러다가 얼굴도 저걸로 문지를라나? 조마조마 지켜본적도 있다.  균도 죽지만 그 독한 냄새 때문에 사람도 죽을 판이다.  세정제 인심이 이렇게 후할 수가 없다.  버스에도 택시에도 손바닥만 한 가게방 입구에도 큼지막한 세정제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차에 뭘 두고 와서 잠시 다녀온다고 맨 입으로 문밖을 나섰다.

무심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차차... 마스크...

깨닫는 순간 띵!  바로 밑에 층에서 하필 누가 탄다.

으이그... 나는 황급히 얼굴을 돌리고 옷섶으로 입을 가린다.

나는 확진자는커녕 수도권에 120명 있다는 확진자가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이제 막 병을 않다가 나온 사람처럼 나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언제 마스크를 써야 하고 언제 벗어야 하고 일일이 따지기 귀찮으니 새벽에 혼자 공원을 산책하면서도 우리는 마스크를 쓴다. 혼자 운전할 때나 혼자 산을 오르면서도 요새는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      


엊그제 마트 가는 공원길에 본 일이다.

애기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지나가면서 아이가 귀찮은지 마스크를 잠시 귀에서 뺐는지 어쨌는지. 황급히 마스크를 다시 귀에 걸어주며 이거 안 쓰면 못 나온다고 했지 않느냐. 다시 집으로 갈까. 다시 빼면 엄마한테 맴매다 애가 잘하면 오줌도 지릴 수 있을 것 같은 큰 목소리로 혼내고 있었다.      

아이는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는 큰 마스트 위로 동그랗게 뜬 두 눈이 불쌍했다.    

  

청명한 공원길의 공기조차 의심스러운 건 아닐터인데 어디 가나 불안한 건 인간들 이리라.      

나의 생각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불안해할지 그걸 배려하며 행동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조심이 과잉이 되어가고 있다는 의견에도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한다. 하지만  니가 나를 그렇게 불안해한다면 내가 너를 배려해서 이렇게 해줄게 이 마음은 대단히 교양 있고 젠틀한 시민의식인것도 맞는것 같다.  무엇보다  호시탐탐 다른 숙주를 찾아 헤매는 못된 바이러스들한테 이 교양 있는 행동이 최소한의 가림막이 되지 않을까.  

 

애들 어릴 때 치카치카 잘하라고 보여주었던 EBS 만화에 보면 까만 삼치장을 든 충치균들이 이빨 잘 닦는 어린이의 칫솔질 공격에 으악... 하고 죽는 장면이 있는데 딱 그 모양이다. 늙었다고 뭐가 다를까. 그 만화가 진리였다. 순진하게 계속 막다 보면 지가 지쳐서 떨어져 나가겠지.     

바이러스야 착하지... 올 때 그랬던 것처럼 갈 때도 스르륵 우리 사이에서 떠나가 줘라.

이 정도 분탕질을 친 손님이라면 양심상 조용히 떠나라.


춥고 어두운 겨울이야 그랬다 치고 봄이 오고 있는지 마는지. 이대로 여름으로 바로 가나...아쉬워할 정신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직 봄을 포기할 수는 없다.   

   

구례에 봄 꽃이 피었단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온다고 어느 시인이 읊었던가.

코로나놈들이 빼앗은 들에도 봄이 오나보다.

마스크도 없이 100% 살균 알코올 세정제도 없이 구례의 포근한 언덕으로 꽃놀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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