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 달고 쌉스름한 자영업분투기20
골동 장사를 하다 보면 물건이랑 나랑 손님이랑 얼추 스타일이 닮아감을 느낀다.
까칠한 장사는 출장을 다니면서도 자기처럼 까칠하고 이쁘장한, 금칠이든 은칠이든 공교로운 장식이 있는 물건을 주로 사모으고 손님도 딱 그런 손님들이 붙는다.
내보기엔 물건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딱 비슷한데 왜 나한테는 항상 이런 진상 손님만 붙냐고 징징댄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딱 당신 같은 사람들만 몰리니 너무 억울해 마시우 하고 고소해했다.
나는 그럼 어떤 스타일이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이쁘장한 골동품보다는 그냥 나잇살 제대로 먹은 투박한 느낌의 물건들이 좋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내가 그런 것들을 좋아하니 그런 물건들만 눈에 들었고 지금도 외국 잡지를 보다 보면 눈이 머무르는 장면은 소박하고 따스한 시골 풍경들이다. 언젠가 구경간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의 무슨 방이니 무슨 방이니 제대로 맘먹고 긁으면 벽에서 가구에서 금을 한동이는 긁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금칠 은칠 방에서는 별안간 속이 울렁거렸다.
여하튼 나는 영국 앤틱이 맞았다.
손님들의 기호를 따라 프랑스도 벨기에도 네덜란드도 앤틱 가구 소품이 있을만한 곳들은 다 찾아다녀봤지만 언제나 내 결론은 영국이었고 손님들도 나중에는 딱 그런 물건을 찾는 손님들이 날 찾아왔다.
첫 컨테이너가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던 손님들이 고맙게도 술술 사가 주어서 물건들을 파는 것은 참 수월하게 자리를 잡았다. 2005년부터 계절마다 혹은 2개월마다 계속 수입을 하러 나가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큰 어려움 없이 자리를 잡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잘 팔리는 와중에도 수입하는 양이 많아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재고가 계속 늘어가는 것이 문제였다.
오프라인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상대로 파는 것은 한계가 있는 듯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당시 빠르게 늘어나는 쇼핑몰을 통한 온라인 판매였다.
처음에는 골동품을 온라인 쇼핑몰로 파는 것이 가능한가.. 나도 의아했다
내가 쇼핑몰을 만든다고 했을 때 그게 가능하냐고 반신 반의 한 친구들이나 가족들의 걱정도 당연했던 것이 지금은 너무나 흔한 여성의류 사이트들 조차도 많지 않았던 시절이고 어떤 물건도 어떻게 보지 않고 사느냐. 그냥 시장 가서 사지 누가 그걸 사진 몇 장으로 사느냐 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유럽 골동 물건들을 온라인에서 파는 사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친하게 되어 오랜 친구가 된 젊은 골동상들 두엇이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 카페에서 유럽 골동 가구와 소품을 사진으로 판매하고 있었고 그걸 보면서 더더욱 아.. 이걸 본격적으로 쇼핑 사이트를 만들어도 되겠구나. 확신이 섰다.
주변에 컴퓨터 쪽으로 통달한 지인이 있었으면 이럴 때 찰싹 달라붙어 유용하련만 나는 흔한 프로그래머 후배조차 없었다. 당연히 온라인을 뒤졌고 쇼핑몰 제작 업체를 몇 개 소개받았다.
지금은 웹사이트 하나 만드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쇼핑몰 하나를 프로그래밍하는데 적게는 삼 개월에서 복잡한 사이트는 1년 이상 걸렸다.
아주 간단한 사이트도 2개월 이상을 얘기했다.
지금이 마트에 걸린 기성복을 입고 계산하고 바로 걸어 나갈 수 있는 시대가 왔다면 당시에는 맞춤옷을 지어 입듯이 상담하고 하나하나 꼬매고 오래오래 손질하고 가봉하고 마침내 옷을 받는 날 경건하게 착장하고 거리로 나서야 하는 시대였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 이름 서울솔루션.
쇼핑몰 전문 제작 업체였는데 처음에 내가 팔려고 하는 물건을 어떤 모양으로 페이지를 구축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유럽에서 골동 가구를 가져와서 팔겠다는 아이디어를 누가 선 듯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걸 어떤 모양으로 페이지 디자인을 해야 할지 피차 막막했다.
담양 죽세공품 안내 페이지나 단양 신륵사 관광 안내 페이지 등을 보여주면서 이런 식으로 제작하면 되냐고 물을 때는 고구마 한 고랑을 통째로 삶아 먹은 것처럼 답답했다
하도 이야기가 안되니까 국내에서 그 물건을 먼저 판매하는 사람의 사이트라도 보여달라길래 한참을 뒤졌지만 아쉽게도 쇼핑몰의 형태로 판매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 내가 잘 나가는 여사장으로 소개되어 여기저기 인터뷰도 하고 방송에도 나오고 할 때 국내에서 처음으로 골동 가구 쇼핑몰을 만들었다고 소개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은 100 % 진실은 아니다 당시에도 여기저기 카페나 블로그의 형태로 이미 골동을 활발히 거래도 하고 있었다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계약을 하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아담하지만 아기자기하고 효율적인 디자인의 쇼핑몰을 꾸리려고 나름 애를 많이 썼다.
돈도 당시에도 어지간히 비쌌다.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진행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아까운 돈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3개월이 지났지만 내 사이트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없었다.
오래 걸린다고 듣기는 했어도 이건 심하다 싶어 연락을 하니 웬걸 전화도 안 받는다.
연락이 없을 때는 3개월도 잘 기다리겠더니 막상 연락도 안되고 화가 치미니까 당장 하루도 더는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연락처에 적힌 주소는 영등포의 어느 건물이었다.
쇼핑몰 만들다가 연락 안 된다고 본사를 찾아갔다고 하면 요새깐으로는 참 웃기는 이야기다.
온라인의 바다는 무슨. 오프라인의 주먹맛 좀 봐라. 니들이 내 돈을 떼먹어? 나는 자뭇 비장했다.
씩씩 뜨거운 콧바람을 휘날리며 뛰어든 사무실 내부는 너무나 조용하고 평온했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찾아왔다 이야기를 하니 어느 희멀겋게 생긴 프로그래머가 자기를 팀장이라고 소개하고 상담실로 나를 안내했다. 둘러보니 운동장만 한 사무실에 얼핏 보아도 100대는 넘는 pc와 100명은 넘는 프로그래머들이 개화기 전화교환원들처럼 빼곡하게 들어앉아서 사정없이 각자의 pc를 두드리고 있었다. 영화 모던 타임즈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었다.
안내받아 들어간 방에서 녹차 한잔을 대접받으며 들은 이야기는 기가 막혔다
내 사이트 담당 직원이 결혼을 앞둔 총각이었는데 내 사이트 작업을 한창 하던 와중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신혼여행을 갔다가 사고로 머리를 다쳐서 내 사이트 작업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 상태로 퇴사. 현재 내 사이트의 작업이 전면 중단된 상태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다쳤다는 내용도 황당했지만 그런 사정으로 내 사이트 제작이 피해를 입고 있다니 이걸 믿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당황스러웠고 더불어 그 팀장을 위로를 해야 할지 내가 위로를 받아야 하지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여하튼 빨리 좀 부탁한다고 두서없이 인사를 하고 다른 직원이 바로 이어받아 다시 작업에 들어갈 테니 걱정 마시라 확답도 포기도 아닌 애매한 답들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도 사실 그 팀장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은 할 수 없지만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사이트를 그 뒤로도 5년 이상 잘 써먹었으니
사연 많게 만들어진 깐으로는 나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이어준 소중한 내 첫 번째 온라인 매장이었다.
(앤틱을 누가 살까 10 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