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어버이날이다.
팔이나 다리의 절단사고를 겪은 사람들이 마치 아직도 그자리에 팔다리가 있는것처럼 느끼고 아픔도 느끼는것을 환상통이라고 한다던데.
나는 올해 어버이날의 엄마를 환상통으로 느끼려나보다.
며칠전부터. 문득 문득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아.. 올해 카네이션은 뭘로하지.
생화로 하나 그냥 편하게 오래보시도록 조화로 한아름 가져다 드릴까.
생각속에 지나가는 문장은 그자체가 한덩어리여서 이 모든 착각이 순식간에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아차차...한박자 늦게 내 엄마는 지금 안 계시지..헛다리를 짚은 후들거리는 다리처럼 가슴이 허전해지며 내 처지를 깨닫는다.
올해는 엄마도 아빠도 안계신 첫 어버이날이다.
작년까지의 어버이 날에도 뭐 대단히 뻑적지근하게 효도를 다한것도 아니다.
그냥 남들처럼 마지못해랄까. 해야하니까 랄까. 그냥 형편 되는 대로 용돈도 드렸다가 꽃 한송이로 떼웠다가 이도 저도 안되는 진짜 바쁜 해에는 전화 한통으로 서운해 마셔라 서운해 마셔라 세상에서 제일 서운한 말만 전화로 드리고 얼렁 뚱땅 넘어가기도 했었다.
엄마는 항상 말씀하셨었다.
아이고 너 바쁜데 너 시간 될때 보자.
엄만 괜찮다.
며칠에 한번 전화를 하실떄 조차도 너 바쁜 시간을 뺏어서 어떻하니. 통화 할수 있니?
내가 시간 없다 그러면 나중에 전화드릴께요. 라는 내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먼저 얼른 전화를 끊어버리시곤 하셨다. 내 시간이라면 1초도 아껴줄려 하시고. 내 돈이라면 1원이라도 당신이 받아 쓰느걸 미안하게 생각하셨다.
그렇게 조심조심 마음의 정성을 다해주신 결과는 점점 지 밖에 몰라하는 딸년의 출현이었다.
사람은 참 못된 구석이 있는 생명체라서 배려가 반복되면 권리인줄 알고 이해가 반복되면 의무도 귀찮아 하게 된다.
딱 내가 그랬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산다고 엄마 전화만 오면 아...바쁜데.. 소리를 무슨 돌림노래 부르듯했다.
방금까지 팽팽히 놀고 심지어 동네 낯모르는 할머니하고 날씨얘기 동네 길냥이 새끼난 얘기등등을 하며 친절한척 좋은 아줌마인척 할 시간은 있지만 엄마 전화에 성의껏 받아드리고 엄마의 외로움을 덜어드릴 노력은 어떻게든 최소화 했다.
물론 한다고 했지만.
돌아가시고 나니. 그 한다고 했지만의 '한다고'는 참 부질없는 자기 최면이었다는걸 깨닫는다.
지금도 엄마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바쁘지?..
슬픈건. 내가 엄마의 전화 정도는 충분히 받아드릴 여유가 있다는걸 엄마는 알고 계셨다는거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시고 오늘같이 엄마가 그리운 날이 오면 그 미련했던 나 스스로를 자책하게 될꺼라는것도 알고 계셨다. 그래서 그때 한번도 나를 탓하거나 서운해 하지 않으셨던 것같다.
엄마가 서운해하면 미래의 내가 나를 더 미워할테니까.
엄마한테 미안해 하지 말라고. 엄마는 괜찮다고.
지나간 바람을 붙잡을 수 없고
부서진 파도를 일으켜 세울수 없듯이
엄마는 이제 안계시다.
엄마가 안계신 자리에 채워진것은 전화받을 시간까지 아끼더니 진짜로 부요해지 나의 시간도 마음도 아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을 자린고비 쌀자루 쥐어 틀듯 에지간히 짜게 굴었던 나 자신에 대한 불쌍한 연민이다.
그냥 그게 다다.
하늘나라에서 이런 나를 내려다 보시며 꼬소한 기지배 하고 엄마가 통쾌해 하시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나랑 같이 울고 계실까봐 그게 더 마음이 쓰인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어버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