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가거나, 국내선 스케줄이 끝났을 때 그 지역에서 레이오버를 하게 된다면 기장님과 이따금씩 맥주 한 잔을 할 때가 있다.
우리는 보통 그것을 랜딩 비어라 부른다.
딱히 사전에 등재된 용어도 아니고, 정식으로 통용되는 단어도 아니지만 착륙 후 마시는 맥주라는 의미에서
"랜딩 + 비어"
라고 보통 이야기를 한다.
이번에도 필리핀 세부에 도착 후, 다음날 저녁에 부산으로 돌아가는 비행이었기에 도착하자마자 기장님과 맥주 한잔을 하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주변에 문을 연 곳이 없어 기장님 방에서 피쉬 앤 칩스를 시켜놓고 우리는 실로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했고, 인생, 비행, 연애와 결혼, 등의 주제를 거쳐 어느덧 눈앞에 있는 맥주에 대한 열띤 애찬을 펼치고 있었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태생 맥주를 먹어야 한다는 기장님의 말씀에, 그럼 우리가 지금 여기 필리핀에서 산미구엘을 마시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내가 반문하니
"아이 망고 기장이 뭘 모르네. 산미구엘 필리핀 맥주예요"
"예?"
그렇게 좋아하며 마시던 산미구엘이 알고 보니 필리핀 맥주라는 사실에 놀라며 우리의 맥주에 대한 주제는 무르익어 어느덧 체코까지 왔다.
"버드와이저가 어느 나라 맥주인지 알아요?"
"아이 기장님, 저 미쿡에서 살다왔습니다. 미쿡꺼죠"
"이거 봐 이거 봐. 우리 망고 기장이 아직 맥주를 잘 모른다니까"
"미국 꺼 아닙니까?"
"버드와이저는 원래 체코 거예요"
들어보니, 체코에서 버드와이저를 마신 어느 미국인이 고국으로 돌아가 대량 생산과 함께 상표 등록을 해버렸던 것.
"아이 그건 좀 치사한데요?"
"그렇지"
체코 하면 떠오르는 맥주가 하나 더 있지 않는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젤 이야기를 했다.
"전 코젤을 제일 좋아하는데, 코젤은 체코 꺼 맞죠?"
"그치. 나도 코젤 좋아해서 체코 비행 갈 때마다 정말 엄청 마셨지"
코젤만큼은 자신 있었다.
비록 체코는 가보지 않았지만, 유리잔 입구에 묻은 시나몬 가루는 체코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한 장치였다.
"유리잔 입구에 시나몬 가루를 사악 묻혀서 맥주랑 같이 캬"
"이거 봐 이거 봐. 우리 망고 기장이 아직도 뭘 몰라"
"왜요 기장님?"
"체코에서는 난 단 한 번도 시나몬 가루를 본 적이 없어"
"정말입니까?"
이어지는 코젤에 대한 이야기,
"게다가, 각 집마다 코젤 맛이 달라"
"주조법이 다른 겁니까? 우리나라 김치 맛이 다르듯이?"
"그렇취"
언젠가는 체코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여쭈었다.
"그럼 그중에 코젤 맛집을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까?"
"있지"
"무엇입니까?"
옅은 미소를 띤 기장님이 답했다
"식당 주인 배를 봐야 돼"
"배요? 배? 스토믹 배요?"
"그렇취"
"배가 나올수록 코젤 맛이 좋습니까?"
"그만큼 훌륭한 코젤을 만들기 위해 직접 몸소 실천을 한 흔적이지"
"아!"
유레카
이래서 기장님들과의 수다는,
언제나 즐겁다.
뇌가 뚱뚱해지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