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어느 여름, 광화문이었다.
아, 그전에 내가 어떻게 소개를 받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해야겠다.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망고야, 너 소개팅 받을래?"
이때만 해도 나는 부기장 훈련생의 신분으로 회사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공부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연애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소개팅은 무슨, 나 지금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야."
"그럼 주위에 괜찮은 친구 없어?"
"아, XXX 항공사 다니는 아는 동생 한 명 있다. 그분 사진 몇 장 보내봐 봐. 동생 사진도 보내줄게."
하고 받게 된 소개팅녀의 사진,
친구에게 답장을 했다.
"야, 내가 받을게."
"뭔 소리야. 연애 사치라며."
"선생님, 자신 있습니다. 제가 받게 해 주세요. 부디. 제발."
긴 생머리에, 수수한 옷차림.
그리고 그 수수한 옷차림에서도 보이는 한껏 업된 엉ㄷ...
아니아니,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한 흔적인 건강한 신체와, 한눈에 봐도 선해 보이는 인상과 예쁜 얼굴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노래를 듣는 일과 같다.
처음에 멜로디에 끌려 듣다 보면, 가사가 들린다. 그리고 결국 가사에 빠져서 반복해서 듣다 보면 멜로디가 더욱 아름답게 들린다.
사람도 그렇다. 처음에 외적인 모습에 반하여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생각, 철학에 끌린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점이나 나와 다른 점이 보여 반하게 되면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보다 더욱 예쁘고, 멋있게 보인다. 누군가는 이것을 콩 깎지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 허덕인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그렇다.
나는 그때의 소개팅녀(현 아내)의 사진만 보고 허덕이기 시작한 것이다.
친구가 말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너랑 잘 맞을 것 같은데? 이 친구도 글 쓰는 거 좋아하고, 광화문 교보문고도 좋아해. 그리고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고... 너랑 진짜 잘 어울리는데?"
글 쓰는 것 좋아한단다. 나도 그렇다.
광화문 교보문고를 좋아한단다. 나도 한 달에 두 번은 간다.
운동하는 것을 좋아한단다. 나 또한 1주일에 4번 이상은 운동을 간다.
비록, 아직 소개팅녀를 보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사랑.
그렇게 나는 김칫국 한 사발 드링킹 한 한껏 들뜬 마음으로, 소개팅 장소인 광화문을 향했다.
멀리서 사진에서만 봤던 그녀가 보였다. 가까워질수록 확신했다.
이것은 사랑.
물론, 그날의 소개팅은 망했다.
우선 그녀가 그날 새벽을 꼬박 새워서 오는 비행을 했기에 너무 피곤한 상태였고, 나는 그런 피로감에 대한 눈치가 하나도 없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 온갖 헛소리를 남발했다.
두 번째 만남을 잡으려고 연락을 했을 때 무려 8시간 동안 카톡을 읽지 않으셨던 소개팅녀는
"죄송해요. 바빠서 답장이 늦었네요."
라는 한마디로 그 이유를 대신했고,
"많이, 바쁘셨죠. ^^"
라고 애써 웃음 짓는 나의 카톡과는 달리,
현실에선 울고 있는 나는 슬픈 마음은 지난날의 나의 행동에 대한 후회만 가득할 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그건 남자가 아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괜찮다. 나를 좋아하게 만들면 된다.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스르륵 작전을 통해 나는 두 번째 식사 약속을 잡았고, 장소는 양재역 근처에 있는 '브루스리'라는 음식점이었다. 브루스 리는 대학생 때부터 가끔 다녔었는데, 그곳에 있는 '부귀새우'라는 메뉴가 정말 예술이다. 크림 양념에 통통한 새우튀김이 버무려져 나오는 요리인데, 내가 그녀에게 내일 죽는다면 오늘 먹을 음식이라 꼭 같이 먹으러 가자고 사정을 했었다.
다행히 나의 스르륵 작전이 통한 것일까?
첫 번째 헛소리만 가득했던 만남과는 다르게,
우리는 제법 진솔하게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현재 삶을 대하는 태도, 미래를 살아가고자 하는 가치관, 관심 있는 분야와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통했던 것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세상을 구하기 위한 답을 얻고 싶어 아프리카로 여행을 갔던 시절이 있었고, 그녀는 그런 세상을 궁금해하였다.
그녀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갖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세상이 궁금했다.
그렇게 세 번째 만남,
영종도의 어느 공원.
착륙하는 비행기를 보며 그녀에게 나는 연애할까 물었고, 스르륵 작전이 완벽하게 먹혔는지 그녀는 나에게 그러자고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나의 아내가 되었다.
승무원과 결혼해서 좋냐고 주위 친구들이 많이 묻는다.
그럼 나는 친구들에게 대답 대신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바로, 신혼여행에서 아내의 회사 복지로 나온 비즈니스 항공권.
친구들은 말한다.
"제수씨 친구 소개팅 좀 해줘. 아니, 해주세요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