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이라곤 한쪽밖에 남지 않은 헤드라이트가 전부였다. 11시간쯤 달렸을까, 버스는 성냥개비처럼 박힌 종착역의 불빛을 그어 희미하게 불을 붙인다.
치파타 역에 도착하자마자 보따리처럼 품은 사람들을 한바탕 풀어놓는다. 지칠 대로 지친 버스는 잠시 시동을 끄는 듯하더니 다시 힘겨운 소리를 내며 터덜터덜 돌아간다.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을 가진 어느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누우니 다리가 저려온다. 천장에는 나보다 먼저 들어와 쉬고 있는 도마뱀이 보인다. 고개를 돌리니 손바닥만 한 거미도 붙어있다.
둘 다 움직이지 않는 걸 보니 자고 있나 보다.
늦은 시간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뒤죽박죽 섞인 생각들이 지나간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시간을 보내는 요령이 생길 법도 한데, 어쩐 일인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사람에 지쳐 혼자 있어보려는데 무슨 고약한 심보인지, 사람에 지칠수록 사람이 더 그리워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그제야 배가 고파온다.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나가니 작은 바가 보인다.
바 라고 부르기 무색할 정도로 허술한걸 보니,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숙소는 아닌듯하다. 아무렴 어떠랴, 파인애플 주스를 한 잔 시키니 직원이 말을 건다.
산드라 : 뭐 타고 왔어?
나 : RONSIL 버스.
내 말을 들은 그녀가 한바탕 웃는다.
산드라 : 제일 쓰레기를 타고 왔네?
그럼 그렇지,
여행 책에는 분명 6시간 거리라고 했는데, 또 당한 것이다.
나 : 본인들 버스가 엄청 빠르다고 하길래.
산드라 : 물론 빠르지! 걸어오는 것보단.
그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털어놓자 나를 놀리느라 신이 났다. 끝없이 놀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 당한 모양이다. 그렇게 한동안 기분 좋은 놀림을 받고 파인애플 주스를 두어 개 더 비운 뒤, 방으로 돌아왔다.
도마뱀이랑 거미는 여전히 자고 있다.
더블 룸이라 그런지 휑하다. 나를 반겨주는 건 땀냄새가 배긴 배낭과 손때가 타 닳아버린 여행 책뿐이다. 여행을 잘하고 있는 걸까. 외롭다. 고흐의 방에 물건들을 두 개씩 그려 넣은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하다.
여행은 원래 기꺼운 쓸쓸함이라더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