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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여기 아프리카지.”

by 망고 파일럿



탄자니아 국경에서 수도인 다르에스살람으로 가기 위해 이동수단을 찾고 있었다. 대충 어림잡아 추려보니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이동수단은 버스, 기차, 택시 정도가 있었다. 가난한 대학생 여행자에게 택시는 사치였고 버스는 여행하는 동안 늘 타고 다녔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마음에 기차를 타보기로 했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오는 타자라 기차였는데 마침 다음날에 내가 묵는 마을 기차역을 지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표를 미리 사놓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역으로 들어가니 널찍한 공간이 나온다. 높은 천장과 유리로 된 창문은 트인 느낌을 주었고 벽에 걸려있는 고장 난 시계들은 이 공간이 얼마나 관리가 안 되고 있는지 짐작하게 해 주었다. 드넓은 역 안에는 조촐한 의자 몇 개가 전부였다. 이 넓은 공간과 어울리지 않게 사람이라곤 표를 파는 역무원 한 명이 전부였다. 그에게 다가가 좌석을 물으니 1등석부터 4등석까지 있다며 설명을 해준다. 1등석은 한 방 안에 네 개의 침대가 있고, 2등석은 여섯 개의 침대, 3등석은 넓은 의자, 그리고 4등석은 불편한 의자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았고 그는 24시간 정도면 도착한다고 했다. 잠비아에서 시작했다면 몰라도 하룻밤 자는 것쯤이야 24시간쯤은 앉아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3등석 티켓을 사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괜찮으냐고 재차 물어보았고 그의 의중을 당시에 이해하지 못한 나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3등석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출발하는 날, 2시 반에 온다고 한 기차를 타기 위해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할 수 있게 부지런히 기차역으로 향했다. 어제 내가 본 역이 하루 만에 기적적으로 바뀌지만 않았다면 역 내에 한국처럼 몇 정거장 전에 있다든지, 언제쯤 도착한다든지, 또 몇 좌석이 남아 있는지에 대한 전자 안내판 따위가 여전히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일찍 올 지, 늦게 올 지, 아니면 기적적으로 제시간에 올 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는 가장 보수적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한 방법이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 늦게 도착해서 기차를 놓쳐버리느니, 어차피 여행지에서 내가 유일하게 풍족하게 가진 시간을 넉넉히 잘라내어 조금 일찍 간 것이다.

기차역 안에 들어서니 사람이 몇 없다. ‘그래, 1시간 일찍 온 것이면 꽤 여유롭게 온 것이지. 사람들이 아직 없을 만 해.’라는 생각으로 나를 달래며 몇 없는 의자 하나를 골라 잡고 앉았다. 오후 2시 30분을 향해 빠르게 채워지는 내 시계의 숫자들과는 다르게, 몇 없는 사람의 숫자는 더디게, 매우 더디게 채워지고 있었다. 불안하기 시작했다. ‘그래, 뭐 정시에 오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잖아?’. 그렇게 두어 시간쯤 지나자 나와 다섯 칸 정도 떨어진 의자에 앉아있는 외국 여행자가 다가온다.

“혹시, 기차 언제 오는지 아니?”
“글쎄, 2시 30분에 오는 기차니까… 지금이 5시 조금 안됐네. 곧 오지 않을까?”
“역무원에게 들은 건 없니?”
“응, 아마 그도 잘 모를 거야.”

알겠다고 말하고는 역무원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한다. ‘소용없을 텐데…’ 그의 행동이 무의미하다는 건 이미 체념한 듯한, 아니 기차가 늦게 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 역 내에 현지 주민들의 표정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기차는 더 늦게 올 것이다. 그리고 언제 올 지는 아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다. 그것이 내 결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자는 역무원과 짧은 몇 마디만 나누곤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 답답한 기분이 풀리지 않은 듯한 그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약간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거봐, 내가 소용없다고 그랬지?’

한 네 시간쯤 더 지났을까, 옆에 있던 여행자가 참다못해 폭발했다.

“무슨 기차가 10시간이나 지연되나”
“여기 아프리카잖아요.”
“그래, 여기 아프리카지.”

아프리카 에선 비상식적인 상황들에 대한 인정이 빠르다. 이미 날은 어둑해졌고, 큰 역 안이 제법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열 시쯤 되자 현지 주민들은 낮에 몸을 덮고 있던 천을 펼쳐 바닥에 깔아 누워 자기 시작한다. 진 풍경이었다. 기차가 늦는다 하여 어느 하나 크게 소리 내어 항의하는 사람 없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눕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진 풍경이었다. 불편한 표정의 사람들은 몇몇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들뿐이었다.


새벽 한 시가 다 되어서야 열차가 왔다. 난 늦은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따지고 싶어서도 아니고 불만, 불평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었길래 열 시간이 넘게 지연이 되나 정말 궁금했다. 내 자리에 앉아 옆은 다음 내 옆에 있는 중년의 여성에게 물어봤다.

“열차가 무엇 때문에 늦어지게 됐어요?”
“국립공원 지나다가 선로에 코끼리가 자고 있어서 깰 때까지 기다리느라 좀 늦었어요.”
“아하 별거 아니었네요.”

이런 상황이 신기했고, 무엇보다 '흔한 일이네'하며 이해한 내가 신기했다. 그렇게 기차는 기관사가 피곤하다며 자느라 6시간 정도 더 있다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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