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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택시 강도를 만난다면

다음에 돈 더 많이 갖고 와!

by 망고 파일럿


타자라기차를 타고 30시간 정도를 달려서 탄자니아에 도착했다. 3등석 좌석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잤고, 목은 쉬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기침 때문에 숨은 조여왔고, 물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먼지 많은 기차역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지만 오늘은 돌아다니는 것을 그만하고 얼른 방에 들어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었다.


당시에 아프리카 여행 정보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역에서 시내까지 택시비가 얼마 정도 나오는지와 같은 사소한 정보는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곧장 매표소로 가서 가격을 물어보면 바가지를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는 매표소 가기 전 근처 상점에 가서 물 한 병을 사고 가격을 물어보는 편이다. 보통 그러면 교통수단의 시세를 알 수 있다.

하지만 타자라기차에서 내리고 나서 역 밖으로 나가니 바로 택시들이 모여 있다. 조금 더 바깥으로 나가 상점을 들러볼까 싶었지만 당장 나에게는 휴식이 더 급했고 그들이 부르는 택시 가격이 적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같이 기차를 타고 왔던 여행자와 시내까지 가는 택시를 쉐어 하자고 했고 우리는 가장 가격을 싸게 부르는 택시를 잡아 탔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택시를 탔는데 조수석에 한 명이 더 앉아있다. 택시 기사에게 누구냐 물어보니 같이 일하는 호객꾼이란다. 나와 여행자도 두 명이고 그들도 두 명이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그래도 한 번 해볼 만하겠다 싶었다.

한 오 분쯤 갔을까, 역에서 시내로 가는 도중 길가에 갑자기 멈추더니 어떤 덩치가 큰 남자가 탄다. 마치 예견된 수순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탄다. 옆에 앉은 여행자가 운전자에게 이 사람 누구냐고 물어보니 친구인데 같은 방향으로 가길래 동승해도 되냐고 말한다. 양해를 구하는 것이 아닌 통보하는 그의 태도가 싫었다. 그러나 이미 출발해 버린 택시 안에서 우리의 의견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호객꾼은 자꾸 누군가와 스와힐리어로 통화를 하고 있고, 운전자의 자세도 그렇게 편해 보이지 않았다. 새로 탄 남자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자신은 선생님이라며 자꾸 말을 걸었고 택시는 점점 큰 도로에서 멀어지고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골목을 들어가도 너무 구석진 곳으로 자꾸 들어간다. 여행을 하면서 숱하게 봐 온 그런 골목들이라 무슨 일이 있겠나 싶었지만 평소에 그 골목을 갈 때의 느낌은 아니었다. 나는 옆에 앉은 여행자에게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라고 말을 했고, 그때였다.

골목 구석 그늘진 곳에 갑자기 차량을 세우더니 바깥에서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차를 두드리며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운전자 좌석 창문으로 한 명이 더 들어와 우리를 에웠다. 다시 말해, 앞에 운전자와 호객꾼 두 명, 뒷좌석 양 옆에 새로 탄 두 명, 그리고 그들 중간에 나와 여행자가 앉아있는 꼴이다. 본인을 선생님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돌변하면서 나를 위협한다. 나에게 협조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나의 몸을 뒤져 칼과 지갑을 꺼냈다.

순간적으로 죽지만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여행자를 보니 만지지 말라며 바둥대고 있었다. 좁은 공간이 아수라장이 됐다. 운전자는 시동을 걸고 다시 어딘가로 가고 있었고 앞의 호객꾼은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고 계속 소리치고 있었다.

옆에서 계속 바둥대던 여행자가 뺨 맞는 소리가 들린다. 그 모습을 보고 나를 위협하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돈이든 카메라든 다 가져가도 좋으니 목숨만 살려주시오.”

그가 답한다.

“협조하면 매우 매끄럽게 진행될 거야. 그렇지만 자꾸 이런 식으로 반항하면 나도 어떤 일이 있을지 장담 못해. 그리고 너네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어. 우린 마피아거든.”

나에게 겁을 주고 있는 그의 얼굴을 봤다. 청바지가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던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그의 얼굴에서도 커다란 땀방울이 보인다. 그 땀방울을 보니 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도 겁먹고 있다. 아니, 그도 긴장하고 있다. 어쩌면 정말 그도 이런 일이 익숙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침착하자. 그들이 원하는 건 나의 목숨이 아니라 돈이다.

그들은 우리를 데리고 한 시간이 넘도록 ATM를 돌아다니며 돈을 뽑았다. 처음에는 ATM기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말하면서 다른 ATM기로 옮겨 다녔지만, 아마도 한 군데에서 다 뽑으면 덜미가 쉽게 잡힐 수도 있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ATM기를 돌아다니는 동안 우리는 그들이 필요한 비밀번호 등을 알려주었고 소란스럽지 않은 우리의 태도에 그들의 위협적이었던 태도 또한 누그러지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세 번째 ATM기에 갔을 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들이 나에게 제법 온화한 말투로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고 나는 신선한 공기를 좀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택시 바깥으로 내보내 준다면 소리라도 지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곧 풀어줄 테니 그건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믿은 순진한 스물세 살의 마음이 배신당한 것 때문일까. 그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가 애처로워 보였는지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돈을 뺏기고 있는 사람에게 이름을 묻는다. 난 목숨이 오늘, 내일하고 있는데 그들은 친구처럼 이름을 묻는다. 그들이 미웠다. 하지만 분위기로 짐작하건대 그들은 정말 돈만 뺏으면 우리를 풀어줄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작은 복수가 시작됐다.

“뭐.”

그렇다. 복수였다. 한국말로 ‘뭐’라고 말했다. 그들이 나에게 이름이 ‘뭐’가 뭐냐고 물었고 난 그것이 한국 이름이라고 했다. 소심하지만 목숨을 위협받았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내 최대한의 복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한국말로 욕이라도 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아마 미움보단 두려움이 더 컸으리라.

한 시간쯤 흘렀다. 아니, 솔직히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지도 모르겠다. 여섯, 일곱 군데의 ATM기를 들러 돈을 뽑곤 우리를 다시 골목 구석으로 데려간 뒤 말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

대체 뭔가. 아까는 경찰이 무섭지 않은 마피아라더니 이제 와서 경찰에 신고하지 말란다. 하지만 택시에서 내리기 전까지 나는 무조건 예스맨이 되어있었기에 알았다고 대답했다.

양 옆에 앉았던 그들 두 명이 먼저 내리고 우리도 뒤따라서 택시에서 나왔다. 그리고선 우리에게 2만 원 정도를 쥐어주며 이거면 시내를 갈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집에 연락해서 돈을 받아 계속 여행을 하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목숨이 붙어있다는 다행스러운 마음과 나를 위협할 때는 그렇게 무서웠던 사람이 좀도둑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 막상 상황이 끝나니 겁을 잔뜩 먹었던 내 자신의 모습이 웃겨서 웃음이 났고, 처음에 목숨만 살려달라던 내가 이제는 한 5만원정도만 더 주지하는 욕심이 들어 웃음이 났다.

여전히 미운 강도들을 뒤로하고 걸어가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잘 가! 다음에는 돈 더 많이 갖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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