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발이 늦었기에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길이 미끄러운 탓에 고개를 내려서 걸음을 살피기 바빴고, 이따금씩 눈을 들어 앞을 볼 때면 해는 이미 지평선에 걸쳐 위태롭게 지고 있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에는 눈에 반사된 어렴풋한 밝음만이 있었고, 난 그것에 의지한 채 짧은 보폭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 바람소리보다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언덕을 넘으니 숙소는 그 시간에 도착한 늦은 여행자에게도 따뜻한 불빛으로 반겨주고 있었다.
도착하니 인상 좋은 주인이 나와서 나를 반긴다. 밝은 목소리로 방을 안내받으니 느낌이 좋다. 어느 공간에 머물 때 주인이 친절하면 다소 비좁은 방도 넉넉해 보이고, 조금 싱거운 음식도 맛이 괜찮다. 단면으로 잘라 대충 걸어놓고 말리고 있는 벌집도 주인의 고풍스러운 장식 취미쯤으로 생각한다. 내 취향은 그랬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면 뭐든지 조금씩 더 좋아 보였다.
즐거운 마음으로 흩어진 짐을 정리하고 다이닝룸으로 나왔다. 햄이 없는 클럽샌드위치로 가볍게 허기를 달래고 따뜻한 레몬 티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며 화롯불 근처에 모여있는 여행자들과 떠들고 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한 번도 별을 못 본 게 아쉽다는 나의 투정을 들은 어느 한 여행자가 말을 한다.
“올 때 하늘 못 봤어요? 밖에 별 많아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아래만 보고 왔던 탓에 하늘을 미처 볼 여유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을 보니 반짝이는 것들이 보인다. 숙소의 불빛만은 아니었다. 단걸음에 뛰어나왔다. 한동안 모질던 날씨가 미안해서였을까, 하늘은 겸연쩍은 듯 맑은 하늘에 조금씩 별을 수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별들을 앞다퉈 저마다의 색을 내고 있었다.
하얀빛 인 줄로만 알았던 별들이 색이 다 다르다. 파란색, 붉은색, 주황색, 그리고 알지 못하는 빛을 내는 별까지, 아, 정말 숨이 멎을 듯한 풍경이었다.
형형색색의 별들이 내 머리 위를 지나가자 다른 사람들도 구경을 나와 고개를 들어 시선을 별에게 준다. 누구든 오늘 같은 별은 처음 봤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이보다 더 한 별을 봤다 해도 여행지에서의 풍경은 질릴 일이 없을 테고 언제나 새로운 느낌의 것일 테니 마치 처음 본 사람처럼 감탄사를 내뱉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한동안 서서 멍하니 바라보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별을 놓치기 싫어 적당한 자리를 찾아 누웠다. 별을 덮고 누워있으니 분별없는 생각들이 몰려온다. 누군가 이 모습이 마음에 들어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아 나무판자를 세워놓고 빳빳한 캔버스지를 구김 없이 펼쳐 놓고 능숙한 솜씨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면 한 폭의 멋들어진 그림이 될 것만 같았다. 나도 그림 한 켠에 이질감 있는 여행자로 그려질 테지만, 아무렴 괜찮았다. 그림은 사진과 다르니 어느 화가의 변덕스러운 상상력쯤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 별들을 보면서 잠깐,
아주 잠깐,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무언가로 채우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넘쳐흘러 빛나는 그런 사랑.
주책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누워 바라보다, 바람 냄새에 정신이 들어 급하게 사진기를 들어 올린다. 눈에 보이는 것만큼 담기지 않는 사진을 보고 하늘 전체를 훔쳐 배낭에 넣어 오고 싶은 욕심도 부려봤지만, 눈 안에 넣었으니 됐다.
별들이 비추는 밝기보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휴대전화의 액정 불빛들이 더 빛나기 시작할 때 나는 방으로 들어와 일기장을 꺼냈다. 내가 받은 감동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묘사해 볼까? 나중에 언제든 일기장을 봤을 때 지금의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말이야. 어떤 표현을 써볼까. 내가 알고 있는 단어들을 어떻게 나열해야 사진으로 본 것보다 더 생생하게 지금을 기억할 수 있을까. 평소처럼 선뜻 펜을 움직이지 못했다. 분명 몇 분 전 넋을 잃고 보던 별인데 당장이라도 화려하고 그럴싸한 수식어를 붙여 풍경을 설명해야만 할 것 같은데 나의 손을 선뜻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지 못했다. 그 사이에 감동의 풀이 꺾인 건가. 아니면 처음 본 풍경에 낯선 긴장을 해서 그런 걸까.
어머니의 치마폭을 쥐고 흔드는 아이처럼 바람이 들어와 창문을 흔든다. 들고 있던 일기장을 놓고 닫으려는데 아까의 별들이 보인다. 여전히 아름다웠다. 감동의 풀이 꺾인 것도 긴장되는 마음도 아니었다. 오히려 설레는 마음에 두근거리는 작은 진동이었다. 굳이 어떤 표현으로 채워 넣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다시 보니 이 정도 풍경이면 굳이 단어들의 체계로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눈에 남을 것 같았다. 혹여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걸 이유로 한번 더 여행을 올 수 있으니 좋은 핑곗거리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이 이쯤 되니 나에게 굳이 긴 문장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침대 위에 놓여있는 펜을 들고 일기장에 적기 시작했다.
‘저마다 다른 색을 내고 있는 엄청난 별을 봤다. 내가 본 하늘 중 최고.’
나머지는 상상으로 채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