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것 간절하지 않은 것들을 부려보지 않으면 어떤가

by 망고 파일럿


여행을 하면 솔직해진다. 하루를 마치고 저녁 늦게 숙소 앞에 모여 차 한 잔 앞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얘기하고 있노라면, 친한 친구한테도 말하지 못한 내 감정과 생각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때론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내뱉으면 더러 정리가 될 때도 있다.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들을 스스럼없이 털어놓기 시작한다. 어차피 일면 부지의 사람들이니 부끄러울 것도 없다. 가끔은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내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니, 아무래도 괜찮았다.

또 가끔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이야기들이 재미있기도 하다. 돌아보면 그리 웃긴 일도 아닌데, 그때의 난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여행자의 턱수염에 묻은 눈이 웃기고, 그 사람이 코에서 숨을 뿜을 때마다 태풍 맞은 듯이 휘날리는 콧수염이 웃기고, 모자가 예쁜 똥처럼 생겨서 웃겼다. 내 모습도 웃겼고, 너도 웃기게 생겨서 웃겼다.

한 때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포기한 것들에 대해 아깝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여행비를 모으느라 포기한 옷들, 맛있는 음식, 뒷면이 깨지지 않은 휴대폰 그리고 여행을 가기 위해 포기한 시간들.

여행을 가기 전에 셀카봉이 한창 유행하기 시작한 때여서 나 또한 얼굴 사진을 많이 찍어오고 싶은 마음에 누나에게 셀카봉을 빌렸었다. 타이머나 자극을 주어서 사진이 찍히는 어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난 휴대폰을 흔들면 자동으로 사진이 찍히는 어플을 찾아서 다운로드하여 여행을 갔다. 여행지에서 셀카봉을 꺼내 휴대폰을 고정시킨 뒤 여러 군데를 다니며 흔들면서 사진을 찍다가 지탱하고 있던 고무가 약한 탓에 그만 휴대폰이 떨어지고 말았다.

바로 주워서 액정부터 확인을 해보니 다행히도 멀쩡했다. 뒷면으로 돌려보니 돌로 내려친 것처럼 유리가 쪼개져있었다. 사용한 지 꽤 오래된 휴대폰이었기에 그동안 잘 버텨온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해봤지만 허전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날 숙소에 돌아와 모여있는 여느 때처럼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 여행자가 나의 휴대폰을 보더니 왜 그렇게 되었냐며 묻는다. 나는 셀카를 찍다가 떨어트렸다고 대답했다. 내가 셀카봉을 들어 흔드는 시늉을 하니 다들 웃는다.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이왕 오래된 휴대폰인 거 여행 오지 말고 최신 모델로 살걸 하며 토로를 하니 그가 말한다.

“대신 그 안에 더 어마어마한 걸 넣었잖아!”

아,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것 인가. 난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벌게졌을 것이 분명한 얼굴을 어디에라도 감추고 싶었다. 잠깐이나마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겉이 좀 투박하면 어떤가. 그의 말대로 더 어마어마한 것들 것 그 안에 담겨있는데.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았을까. 무슨 욕심에 다 가지려고 했을까.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온전히 시간을 쏟아도 부족한데, 까짓것 간절하지 않은 것들을 부려보지 않으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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