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사이에서 비행기의 '오토파일럿'이 어디까지 해주느냐의 대한 논쟁은 우리 앞에 놓인 막 쪄서 나온 딤섬처럼 뜨거웠다. 무지몽매한 나의 친구들의 무의미한 논쟁이 지속되어갈수록, 나는 옆에서 이때다 싶어 딤섬을 하나라도 더 집어먹을 수 있었기에 그들의 열띤 토론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야 망고는 돈 진짜 쉽게 버는 거 아니냐? 요즘 비행기가 알아서 다 하는데."
딤섬 냠냠
"야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쟤가 아무것도 안 하면 비행기에 조종사가 뭐하러 두 명이나 타냐. 뭐라도 하겠지."
끄덕끄덕
"형 망고 저 놈 저거 얼굴 좋은 거 봐. 일이 안 힘들다는 거야."
꿔바로우 냠냠
나를 대신하여 나의 직업에 대해 열심히 싸워주는 친구들의 토론에 대한 결론이 선명해질 때쯤, 나의 배는 딤섬과 꿔바로우로 꽉꽉 채워져가고 있었다.
"아니, 근데 여기 있는 딤섬 다 어디 갔냐."
"자, 이제 내가 오토파일럿이 뭔지 얘기해줄게."
따듯한 딤섬과 경쟁자 없는 풍부한 양의 꿔바로우로 이미 배를 채워왔던 나는,
식어버린 딤섬과 남은 꿔바로우를 집어 먹으며 나의 설명을 기다리는 친구들의 결론부터 들어야 했다.
"그래서 오토파일럿이 어디까지 해줄 거 같아?"
"이륙은 니가 양심이 있으면 할거 같고, 하늘에선 뭐 다 해주겠지. 요즘 뭐 자동착륙도 있대매."
친구들의 결론이 놀라울 정도로 거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약간의 디테일에서의 차이는 있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더니만 세 명이서 머리를 굴려 나온 결론이 생각보다 정답에 근접했던 것이다.
녀석들, 머리 굴려서 이 정도까지 생각해내다니, 꽤 똑똑해졌구나.
기쁜 마음으로 친구들의 말에 하나하나 반박을 하기 시작했다.
"돈 쉽게 번다니, 남의 돈 버는 거 쉬운 일 아니야. 나도 일개 직장인이야."
"오케이 그건 인정."
나를 포함해 모인 4명 모두 직장인이었기에, 남의 돈을 버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쉽게 수긍을 했다.
"그리고 비행기에 두 명이 타는 건.. 이건 뭐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나."
"어차피 비행은 기장님이 다 하시고 너는 그냥 옆에서 알랑방구 뀌는 거 아니냐."
"하... 넘어가자 이건."
설명을 해도 도저히 이해시킬 자신이 없어서 두 번째 명제는 넘어갔다.
"그리고 얼굴 좋아 보이는 건 내가 잘생겨서 그래."
"그건 아니지."
"그건 아니야. 망고야."
"아니야."
마지막 명제에 대해선 빛보다 빠른 부정을 당했고, 우린 점점 마지막 주제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륙은 내가 하긴 해."
"야 그래도 양심은 있네."
"아니 아니, 양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동 이륙이라는 기능이 없어."
"그래도 밥값은 하네."
"그치? 그러니까 정말 열심히 살고, 정직하게 땀 흘려서 돈을 벌고 있다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친구들아."
"하늘에선 도대체 뭐 하냐 넌?"
하늘에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는 오토파일럿이 무엇인지부터 설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간혹 나도 분야가 다른 친구들의 직장생활 이야기에 100% 공감을 해주지 못할 때가 있는데, 비행이라는 어떻게 보면 친근하지 않은 직무에 대해서 내가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한들 친구들에게는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비행기가 알아서 일을 다 해주는 밥버러지 이미지가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미 호도당한 상태에서 사실로 진실을 뒤집기에는 여간 벅찬 일이 아니었다.
"오토파일럿이 알아서 비행을 다 해주는 게 아니라, 이륙을 하고 오토파일럿을 걸면 그다음에 내가 입력한 값대로 비행기가 비행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비행기가 다 해주는 거네."
"아니, 그게 아니라. 승객들 탑승하시기 전에 내가 비행기 컴퓨터에 입력한 내용을 토대로 비행기가 간다니까."
"비행기가 알아서 간다는 말이잖아."
이런 농매한 것들을 두고 얼마나 더 쉽게 설명을 할까 생각하다,
찰떡같은 비유가 생각이 났다.
"아니 아니, 비행은 비행기가 하는데 조종은 내가 하는 거지."
캬, 비행은 비행기가. 그리고 조종은 내가.
그 누가 들어도 나의 직무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나의 이런 직관적이고 통찰을 꿰뚫는 설명을 들은 친구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요즘 비행기가 똘똘해. 아주 혼자 다 하고 말이야."
"아 요즘 비행기 말도 못 하지."
"야 비행기 비싸잖아. 비싼 만큼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애석하기 짝이 없구나.
무지의 늪에 빠진 이 중생들을 어떻게 구해낼까 고민하는 와중,
다시금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꺼내어봤다.
얼마 전 노무사 자격증을 따고 일을 하고 있는 YI에게,
"YI야, 너 일할 때 컴퓨터 쓰나?"
"당연한 거 아냐?"
"그럼 일은 컴퓨터가 다 하네?"
"뭔 소리야."
"그래! 바로 그 소리야!"
캬.
그래, 그렇다.
비행기를 컴퓨터라 가정해서, 타자를 치고 마우스 클릭질도 하며 이 사이트 저 사이트 좀 들어가 보고, 상사가 어떤 프로그램으로 이런 이런 거 작성해서 프린트해달라 하면 프린트도 하고, 그러는 것이 바로 나의 일이었다. 컴퓨터가 있기에 그들의 일이 조금 더 수월해지고, 컴퓨터가 수기로 작성하는 노동에서 벗어나 다른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좋은 장치인 것처럼 오토파일럿 또한 조종사가 속도와 고도, 추력 등을 정확하게 맞춰주는 노동에서 벗어나 그 이외에도 많은 중요한 일들에 집중을 잘해줄 수 있게끔 조종사를 도와주는 장치인 것이다.
풀어 말하자면,
오토파일럿을 걸어서 입력한 값대로 비행을 하게끔 하고, 나는 비행기가 제대로 가는지 항상 감시를 하며, 때에 따라 관제사의 지시에 따라 비행기가 날아가는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난기류가 심하다 싶으면 난기류가 적은 고도를 찾아서 상승 하강을 하기도 하며, 앞에 위험해 보이는 구름이 있을 때는 옆으로 피해 갈 때도 있다. 또한 어쩔 수 없는 난기류에서 승무원분들과 승객분들이 다치지 않게 좌석벨트 사인을 켰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끄기도 하고 비행기에 문제는 없는지 수시로 점검을 하기도 하며 우리가 계획서대로 잘 날아가고 있는지 계획서상 해당 지점에서 연료와 시간 등을 체크하기도 한다. 안전하고 쾌적하게, 그리고 정시에 도착할 수 있도록 비행을 하면서 연료가 모자라지 않게 최대한 경제적인 방법으로 목적지 공항에 도착할 수 있게끔 전반적인 업무를 하는 것이 바로 나의 일이었다.
하늘에서 오토파일럿 없이 내가 직접 조종간을 잡아 고도와 속도를 맞추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는 말은, 컴퓨터를 쓰지 않고 수기로 모든 문서와 작업을 작성하며 회사생활을 해 내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말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물론 나 또한 비행 말고는 다른 직장에서 일반 회사 업무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컴퓨터로 비유한 나의 설명에 비로소 만족을 하였는지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러니까 오토파일럿은 엑셀이고, 너는 키보드라는 거지?"
"아니, 내가 키보드라는 게 아니라."
"이제 알겠다. 그래 너도 일은 하는구나."
"아니, 내가 키보드가 아니라."
"고생한다 우리 망고."
그렇게 하여 나는 결국 키보드가 되었지만,
속 편하게 돈을 벌고 있다는 누명에서 벗어난 것 같아 다행인 만족스러운 친구들과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