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경주에 ‘릉’이 있다. 많다. 독특한 것은 집 앞의 마당에도 무덤이 있다는 거다.
신민아의 대사 : 경주에서는 릉을 보지 않고 살기 힘들어요.
경주
장률, 2014
장률 감독의 ‘경주’에서는 여러 명이 죽는다. 첫 장면에 등장했던 모녀부터 죽는다. 현재가 오히려 고대를 대유(代喩)한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보진 않았다. 신민아가 커튼을 젖히는 대목, 그래서 창 너머 릉이 보이는 장면 정도까지 봤다.
영화 속이나 영화 밖이나 동일하다.
나의 대사 : 삶에서는 죽음을 두지 않고 견디기 힘들어요.
‘경주’는 현실적이고 좋은 영화이다.
흔하디 흔한 이탈리아 출신 이무지치(I Musici)의 사계를 참 좋아한다. 많고 많은 사계지만 펠릭스 아요(F. Ayo)의 연주가 좋다. 아요는 없었지만 언젠가 이무지치가 한국에 와서 사계를 연주했다. 느리고 세부가 아름다운 연주였다. 라디오가 중계하는 그 콘서트를 테이프에 녹음해서 몇 번이고 들었다.
막스 리히터(M. Richter)가 편곡한 버전(Version)도 아름다웠다. 오늘 라디오에서 그 버전의 사계를 해설하는 중에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의 죽음이 알려졌다.
오후 방송에 권혁주의 연주가 전파를 탔다. 소박하지만 매끄럽고 충실도 높은 그의 연주는 아요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나는 오늘 밤 내내 유튜브로 권혁주의 베토벤 협주곡을 듣고 보았다.
네 개의 계절은 끊이지 않고 회귀한다. 삶과 죽음도 회귀한다. 삶은 한 계절일 수도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2016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