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아무리 잔재주를 부려봐도 한라산의 맑은 물은 넘어설 수 없습니다 - 강하면서 깔끔한 한라산
제주도에 내려간 어떤 후배님이 찍어 올린 인스타그램에는 강하면서도 깔끔한 카피가 적혀있다. 뭔가 억울한 [디아지오]의 [윈저 W12]가 생각난다. 아직 집행되지 않은 그 카피는, (시안 카피를 예로 들자)
맞춰봐요, 내 나이...- 윈저 W12
‘룸’에서 경쟁이 붙은 12년 산 블랜디드 시장에서 12년 산이라고 표기하지 못하면서 자리 잡은 위스키가 있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필드에서 비교를 통해...라고 했을 때 이미 사람들은 그 잡술을 몰아붙일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한라산]은 강점부터 화두에 올린다. 브랜드 네임이 이미 맑은 물이다. [삼다수]가 만들어놓은 좋은 물의 이미지는 한라산에서 더 강력해진다. 그리고 역시 맑은 병이다. 한라산은 5천 원에 한 병을 내어줘도 좋다. 병과 물과 잔과 맛이 모두 잔재주를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나 맑은 물 대신 폐수를 썼다는 기사도 있더이다.)
최근에는 점심에 한 병, 저녁엔 세 병 정도 마시는 것 같아서 내심 중독이 걱정된다. 일단 끊기로 한다. 담배도 그렇게 끊기 시작했다가 영원히 끊어버렸다. 술은 아마 그렇게 내내 끊기는 힘들 것이다. 한라산이 보이면 또 한 병 마시겠지. 술에 관한 카피는, 카피에서 나오는 술냄새로 재단하면 좋다.
[발렌타인]의 카피는 술냄새가 날 뿐만 아니라 왠지 [발렌타인]이라는 술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여자들은 구두를 살 때, 이런 주문을 외운대요.
좋은 구두는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
그래서! 우린 만나면 이런 주문을 하죠.
여기요. 발렌타인 주세요! 주문 잘하시네. 정우성 씨!
좋은 술이 분명 우릴 좋은 시간으로 데려다 줄테니까.
우리가 깊어지는 시간- 발렌타인
아놀드 하우저를 읽었으리라. 노래고 춤이고 태생은 기원(pray), 한자로는 呪文이다. 발렌타인의 카피가 말하는 건, 注文할 때 呪文을 왼다는 거다. 어찌 보면 꽤나 전복적 사고가 이루어진다. 브랜드를 살 때 기원을 한다는 거다. 좋은 곳으로, 또는 좋은 시간으로 데려다주세요.
아재개그스럽게 되어버려서 하나 덧붙이면, 祈願의 基源은, 그러니까 기원의 기원은 반복이었다. ‘수리수리 마수리’라든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 이렇게 반복하면 이루어진다고 믿었단다. 앙칼지고 멋지게 한마디 던지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소를 잡게 해 주세요, 소를 잡게 해 주세요. - 이렇게 반복하면 소를 잡을 수 있다고 믿었고 반복하다 보니 리듬이 생겨나고 리듬이 생겨나니 춤을 추었다는 거다. 오늘날의 詩나 랩이나, 그런 거다.
냄새의 결마저 황홀한 이 술냄새 가득한 정우성의 ‘잘하는’ 주문은, 몇 번이고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로 좋은 시간으로 가 있으려면 말이다. 이미 가 있는 것도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