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데 싫어한 것

에세이(1)

by 현진현

요즘에는 운전을 할 때 음악을 끄는 경우가 있다. 가솔린의 경우 밤에는 엔진 소리를 잔잔하게 즐긴다. 디젤은 엔진 소리보다는 그저 생각에 집중. 어떻거나 차 안은 음악적으로 느껴진다. 아마 오랫동안 음악을 들어와서 그런 것은 아닐까. - 음악은 끝났지만 음악이 머리 위에서 빙빙 돌고 있는 그런 느낌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바람의 노래는 내면의 소리 같은 것, 나한텐 엔진 소리 같은 거다. 엔진 소리를 듣지만 생각에 빠져드는 것처럼 바람은 각자의 몸속에서 불고 있다. 그저 느긋하기에도 바람이나 앰비언스가 좋을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의 첫 장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으며 삶의 신산스러움과 비틀스에 매혹당했다. 그게 '뻔한 의외성'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건, 생(生)이란, 신선한 우유처럼 목 넘김이 좋다는 것을 하루키의 초기작들이 알려주었다. 내 어렴풋한 기억에 -오래전에 읽었으므로- 하루키는 자신의 단편들을 첫 장편에 욱여넣었다. 그래서 장편을 읽다가, 혹은 단편을 읽다가 한 번은 읽었던 대목 같아서 피식 웃고는 했던 것 같다.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매혹적이라는 의미에서 완벽한 문장이다. 그럼에도 그의 선배 [오에 겐자부로 大江 健三郎]는 번역투 문장이라는 이유로 아쿠타가와상(賞)을 주기를 거부했다. -그 문학상의 기원이 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芥川 龍之介]의 글은 아주 고전적이다. 옛날 작가니까. 좀 다른 얘긴데... 하루키의 초기작들을 떠올리면 -오래전 기억이라 얘기를 이어나가기가 편하다- 펜더의 텔레캐스터(Fender Telecaster)라는 기타가 뒤따라 떠오른다. 까랑까랑한 그 소리의 맛이 꼭 하루키의 번역투 같아서 그런 것 같다. 나도 한때는 번역투 문장을 다짜고짜 싫어했다. 그게 좋았거든. 무슨 말이냐면, 좋은데 싫어한 것. -고전적인 텔레캐스터가 그렇다고들 한다- 좋아도 번역투 싫어도 번역투의 문제인데 알고 보면, 상투성이 더 큰 문제다.

영어를 잘하는 일본인이 외국에 가고 여자와 자고 음악을 듣고 음악 정보를 나열하고 환상에 빠졌다가 컬렉팅에 미치곤 하는 게 하루키의 소설이다. 그게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것인데 [마루야마 겐지 丸山 健二]가 주장하는 바도 일리가 있다. [다자이 오사무 太宰 治]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소설(私小說)을 쓸 뿐 세계와 대립하는 자아를 다루는 진짜 소설은 쓰지 않는다는 지적. - 그나저나 다자이 오사무는 좋은 대사를 쓰고 하루키는 꽤 괜찮은 문장을 쓴다.


음악을 꺼 주세요


[에어팟프로]의 가치는 주말의 마트에서 빛을 발한다. 사람들이 복작복작 걸어 다니고 굴러다니고 뛰어다니는 소리를 피하고 음악에 빠질 수 있어서가 아니다. 외려 적절하게 충전된 에어팟프로를 호주머니에 넣고 카트를 밀고 가다 보면 카트의 바퀴 소리와 여러 사람들이 내는 소음 속에서 나만의 생각에 깊이 빠질 수 있는 행운을 누린다. 음악이 없어서 섭섭한 게 아니다. 언제든 음악에 푹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은 호주머니에 들어있다. - 바람의 노래는 호주머니에 들어갈 수가 없다.


늘 그렇듯 문장의 본질은 문장 안에 있지 않고 저 밖에 있다. 더 멀리멀리 가서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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