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2)
비가 내린다. 늙어버린 당신 생각이 난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른다. 물과 같은 기분이 되어 하늘을 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지만 수줍은 비행기처럼 어프로치! 당신에게 내리기 위해 빙글빙글 시간을, 보낸다. 내려다보면 비에 가려 활주로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부풀어 오르듯 살짝 부유한다.
지금이야 가지 않는 노래방, 그 시절엔 참 많이도 갔다. 2차나 3차쯤엔 어김없이 노래방엘 갔다. 거기 가면, 또 어김없이 담배를 피워댔다. 빈 담뱃갑을 구기면서, 여기 던힐 좀 사다 주세요. 했던가. 신나게, 또 감정을 잡고 노래 부르던 일행들이 갑자기 마이크를 건네 오면 슬픈 G코드가 시작. 그리고 D, E 마이너, B7, C, D를 지나 다시 G로 돌아온다. 같이 올 때마다 부른 노래니까 알아서 노래의 번호를 눌러주는 일행 중 한 사람. 그러고 보면 제목대로 비가 오는 날엔 대체로 이 노랠 불렀던 것 같다. 눈을 감고 두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한 음씩 <비와 당신>을 불렀다. 요즘은 저 노래를 부르면 ‘아재’라 한다지만 이십여 년 전의 우기에는 그저 꽃이 피고 지듯이, 노래가 시작되었다가 끝나고는 했다.
비와 당신
비는 교대 부근을 지나 효령로 사당 남태령을 넘어서 우리 집이 있는 안양까지 흩뿌려댔다. 그땐 참, 지난 7월처럼 비가 많이도 내렸다. 그리고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울먹였고, 만난 만큼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노랫말은 언제까지 아플 거냐 묻고 있지만 역시 묻는 자는 답까지 알고 있다. 비가 올 때마다 슬퍼지지 않겠냐고. 비가 내릴수록 슬픔의 깊이는 더해갈 거라고.
어두운 가로수길
<어두운 가로수길(Темные аллеи: Dark Alleys)>이라는, 제목에 끌려 사 온 책이 있었다. 저자는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Ivan Alekseyevich Bunin]인데 1933년 러시아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벨상은 <아르세니예프의 생>이란 장편으로 받았지만 이 작가는 단편에도 뛰어났다. 한두 편 읽기 시작하면서 남성적이면서도 아련한 이 단편들의 정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부닌은 표제작에서 러시아의 한 시골 주막의 쇠락한 주모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잊히지는 않아요
나는 이 한 줄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 사라짐으로써 기억과 추억이며 회한은 남는다. 하지만 잊힘은 있던 것도 없던 것도 모두 없애버린다. 대체 사라짐과 잊힘 사이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문장은 수정될 수 있겠다 싶었다. 결국엔 잊히고 말 테니까.
모든 것이 사라질 뿐이다
그럼에도 감정의 깊이가 소멸의 속도와 비례할 거라는 역설을 나는 믿는다. 내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