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롤리의 시벨리우스
ATM 기계가 석 대쯤 놓인 대략 두 평 정도의 공간이었다. 저녁 9시 무렵부터 쪼그리고 앉아서 한참을 울었다. 드나드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았겠지만 나는 고개를 파묻고 끝없이 울었다. 머리가 띵해질 때까지 하도 울어서 새벽녘에 그곳을 나섰을 때는 얼굴에 두꺼운 가면을 쓴 것만 같았다. 양재역 네거리에 있었던 기업은행의 ATM시설이었다.
나는 여태껏 아내와 잘 지내는 편인데, 그건 아마 어려서부터 아내에게 기대어 지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대하고 나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타당한 이유였으리라) 나는 집으로부터 찬밥신세였고 스물세 살의 복학생 딱지는 96년 당시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기 힘들게 했다. 나는 당시 두 가지에 집중했다. 하나는 통역 학원에 다니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여러 사람이 농담처럼 여기지만 불교철학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아내가 될 여자를 만나는 중에도 나는 중이 될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영어를 공부했다. 영어에 대해서만큼은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절밥을 먹지 못한다면 지방대 학생의 입장에서 영어라도 능숙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대학과 영어학원에서 강사생활을 했던 아내 덕택에 대학도 졸업하고 그 시절 음악도 여유롭게 들을 수 있었고 여전히 불가에 귀의하지는 못했다.
그런 아내에게 나는 사사건건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편이지만 저 당시 ATM 앞에서 있었던 일은 지금껏 말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비슷하게 울적한 일들이 74년생인 내게 일어났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었고...
2008년쯤이었으니 대략 30대 중반이었다. 회사에서는 어이없는 이유로 나를 내몰았다. 세세한 기억은 없지만 돌이켜보면 30대 중반이야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특히 내 성정에서야...
살아오면서 세상의 '급변'을 여러 번 느낀다. '82년생'인가 하는 소설과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아 74년생처럼?'이라고 생각했다. 학력고사와 수능, IMF의 전과 후, 세대 차이의 간격 차이, 신자유주의의 도래,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막 떠오르는 것만 이런 정도다.
살면서는 분명 저러한 급변을 '하루아침에' 몸으로 느꼈을 테다. ATM 이야기야 어떤 무리들이 '나쁜 짓을 쉽게 저지르는 사회적 급변'이라고 보고... 여하튼 기억에 반듯하게 남아있는 저런 급변들을 공교롭게 겨울에 맞이했다.
신상에 뭔가 치명적인 일이 생기면 나는, 차갑디 차가운 겨울날 한저녁 방안에 들어앉아 바비롤리의 시벨리우스를 듣고서 나직하게 아내와 상의했다. ATM 이후로는 말이다.
그때 시벨리우스 가운데 돋보이는 한 장.
John Barbirolli,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Sibelius : Symphony #2, 1962년 녹음
'차갑지만 뜨겁다'는 역설이 증명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레코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