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장은 월드컵 경기장입니다

by 현진현

광고를 흔히 '포장산업'이라고 합니다. '포장'이라는 워딩에는 겉을 속과 다르게 만든다는 비아냥이 들어있어요. 그렇지만 때로 포장이란, 포장의 대상-보통은 물건이겠죠-에 개성과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쇼핑백도 마찬가지죠. 제가 뉴욕의 '라보' 매장에서 시티 라인의 향수를 산다면 쇼핑백도 한국으로 가져와 쇼핑백채로 그녀에게 선물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도시도 포장하고 쇼핑백에 담습니다. 안양을 중심으로 생활하다 보면 서너 개의 도시를 포장한 카피를 마주치는데요, 집이 있는 안양의, "시민과 함께 하는 스마트 행복도시 안양", 안양 옆 의왕의 "이왕이면 의왕", 그리고 수원의 "사람이 반갑습니다 휴먼시티 수원"을 가끔 곱씹어봅니다. 서울의 "I SEOUL U''는 큰 도시의 포장인만큼 꽤나 떠들썩했죠. "너와 나의 서울"이라는 설명 문구가 덧붙어있긴 하지만 '아이 서울 유'의 미스터리함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미스터리는 심해로 내려가지 않고서는 풀 수가 없을 만큼 의미심장했어요. 모르긴 몰라도 복잡다단한 서울을 드러내자면 간단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저는 그 간단함은 또 좋았습니다. 그 간단함이 '본질적'이었다면 더 좋았을 법도 합니다만.


상암동에 있는 '월드컵 경기장'의 네이밍 작업에는 수많은 전문가가 머리를 싸매고 깊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월드컵 경기장'이란 이름으로 결론을 내렸고 지금도 잘 불려지고 있죠. 이 네이밍에는, 피상적이나마 본질적인 질문 하나가 관통합니다."월드컵 경기장을 월드컵 경기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부를 것인가?"


소쉬르의 견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사물의 이름이야말로 사물의 본질적인 것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조상들은 같은 말을 반복함으로써 기원했죠. '들소를 잡았다 들소를 잡았다 들소를 잡았다' 하면 들소를 잡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었고요. 그럼, 서울시가 바라고 바란 기원은 대체 무엇일까요?

"I LIKE(엄지 척 이모티콘) SEOUL"

서울은 연대의 도시이고 광장의 도시입니다. 우리는 아무데서나 차별 반대를 주장하지 않아요. 아무데서나 공정한 수사를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아무데서나 그들의 직무유기를 지적하지도 않아요. 그런 의미라면,

"WE LIKE SEOUL"

투명한 포장지를 벗겨내고-브랜딩 중이고 예산을 썼으니 벗겨내어서는 안 됩니다만-비아냥을 피해서 그 간단한 본질을 드러내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 유명한 작사가인 양인자 선생은 다음과 같은 노랫말을 지었다.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서울 서울 서울 그리움이 남는 곳 서울 서울 서울 사랑으로 남으리 오오오 Never forget Oh my lover 서울"

이런 퍼블릭한 카피는 말을 만들지 않고 말을 발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습니다. 양 선생의 노랫말에는 '거리'라는 워딩과 'lover'라는 워딩과 'never forget'이라는 구절이 들어있습니다. 서울은 한강을 중심으로 범박하게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져 있어요. 고궁의 거리와 빌딩 숲의 거리, 그리고 강변의 거리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거리를 거닐어 본 사람들은 서울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나쁜 기억은 남지 않고 좋은 기억만 남긴 '러버'가 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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