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카피 다시 쓰기 No. 17

by 현진현

(오랜만에 '학술적으로(?)' 써 보려던 이 글은 쓰고 보니 아이러닉 하게 '널뛰기'처럼 되어버렸다.)


명절 연휴 오랜만에 들르게 된 처갓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TV 뉴스를 보았다.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뉴스도 있었고 도쿄 올림픽에 관한 뉴스도 보았다. 태능선수촌에 있는 유도 국가대표들의 훈련 장면이었다. 굵은 땀을 흘리는 선수들...

"이번 올림픽은 불참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피폭될 수도 있는데..."

내가 말했고 처남이 답했다.

"긴 시간 훈련해서 인생의 목표일 텐데 불참을 시켜서는 안 되지 않나?"


지난해 1월 즈음해서 나는 도쿄에 서너 번 드나들었다. 여권 기록으로 보면 총 18일 동안 도쿄에 있었다. 촬영을 위한 출장이었고, 그 촬영은 업무였지만 업무 이상으로 나는 촬영을 좋아했다. 게다가 씨즐 촬영에 있어서 최고 수준이라는 일본 스텝들과의 촬영이었다.

처남의 말대로, 어쩌면 선수들에겐 피폭보다 '올림픽'이 우선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나는

몹시 후회하고 있다.


100과 99의 차이는 무엇일까?

1이다.

100과 97의 차이는 무엇일까?

3이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몇 번은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고 내가 다시 쓰려고 하는 이 카피도 익숙할 것이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Impossible Is Nothing'이라는 스포츠 브랜드의 카피를 번안한 카피다. 하지만 광고에서의 스포츠 정신은 그 자체로 오류이며, 스포츠를 삶으로 둔갑시켜 크나큰 일반화를 향한다. 불가능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가능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애초에 이 카피는 잘못되었다.


스포츠에 있어서도 이 불굴의 정신을 강조하는 카피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달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달리면 그 어떤 것도 가능하게 한다는 우격다짐이다. 비가 오는 날은 달리기를 쉬어야 한다. 눈비가 내리는 날은 미끄러지기 쉽다. 다친 몸을 이끌고 달리면 결국 부상이 오고, 심지어는 불구가 되기도 한다.

다음의 카피에 나는 동의한다.

불가능, 그것은 나약한 사람들의 핑계에 불과하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불가능,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다.
불가능, 그것은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불가능, 그것은 사람들을 용기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가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저 카피가 '광고적 접근'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증진'을 도모하는 이런 좋은 카피들의 마무리는 어쩌면,

100과 99의 차이는 1이 아닌 100이라고 주장하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쉽게 연결시킬 수 있는 문제는 아나지만 '불가능과 가능을 등치 시키는 정신'은

이 사회의 질병이다.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 관계적 상태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 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 [한병철,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2012)]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keyword
이전 06화월드컵 경기장은 월드컵 경기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