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큰아이가 고3이 되면서 공부를 조금은 하는 것 같다.
싶었다. 그런데 어젯밤,
안방으로 들어와서는 장롱 앞에 쭈그려 앉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거지. 아내와 나는 줄돔과 석화와 낙지와 소주를 먹고 마시고 와서는 그 횟집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네 친구 부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아들이 말했다. 고3인 아들이 말했다.
"베이스를 배우고 싶어."
"좋은 악기이지. 좋은 악기이긴 하지. 그런데 꼭 지금 배워야겠어?"
"응. 일주일에 화요일 목요일이 있어. 레슨비는 20만 원이고 악기는 거기서 대여해주나 봐."
"그래? 그럼 일주일에 하루만 쳐. 악기는 아빠가 구해줄게."
"^^:;"
"그런데 꼭 고3인 올해 배워야겠니?"
"네."
"콘트라베이스도 좋은데... 그건 플랫리스지. 잭 부르스도 플랫리스를 쳤지."
"네."
'공부를 공부로서' 할 수밖에 없는 아들이다. 좋아하는 역사와 국어조차도, 모르긴 몰라도 시험을 준비하는 식으로 공부하겠지. 정말 피곤한 일이고... 것보다 레슨비가 그렇게나 비싼가? 그런데 베이스 기타라고? 좋은 악기를 골랐네, 녀석.
공부를 공부로서 하는 건, 일을 일로서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일이나 일 비슷한 것을 '즐겨' 한다는 건 그런 말의 쉬움이 경멸스러울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다. 말장난 같지만,
"공부를 공부로 하지 않고 배움과 습득의 의도로 하면..."
"일을 일로 하지 않고 일을 하는 과정의 그 배움을 즐기며..."
즐긴다는 건 쉽지 않은 일.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게 그렇게나 멋진 인생으로 인도하는 거다. 그건 그렇고.
"일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하면 피곤해지는 게 그 증거다."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라는 프랑스 문학 거장의 말이다.
다행히 광고일은 내 본성까지는 몰라도 적성에 맞다.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다. 일 자체 외의 다른 일-미팅이라든가 대화라든가 관례적인 업무라든가-은 물론 피곤하다.
거장의 카피를 다시 읽어보면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 읽고 나면 뭔가 피로가 몰려온다.
나는 종종 광고회사에 다니는 후배들에게 어쩌면 '예술'을 권해오곤 했는데,
"여보시게 후배, 자신만의 작업을 하시게. 회사일만으로도 힘든 것은 알고 있네만 오히려, 오히려 자신만의 작업을 한다면 회사일 또한 잘 될 걸세. '라떼는 말이야'(실제로 나는 그랬어, 하면서...) 새벽 2시에 퇴근해서 3시에 집에 오면 세 시부터 네 시까지 소설을 썼어. 그리곤 8시 전엔 반드시 출근길로 나서지. 매일처럼 말일세."어떤 선배는 그림을 그렸고 어떤 선배들은 책을 썼다. 최근의 어떤 선배는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었다. '자신의'의 뜻은, '잘할 수 있는'이겠지.
친애하는 선배들께서 가끔 내게 훈계-나는 훈계가 싫지 않다-를 하신다.
"자신만의 작업은 틀렸네. 광고를 해야지. 하나에 집중해서 광고를 해야지."
난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아들아, 가끔 베이스도 치고 가끔 공부도 하고... 그렇게 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