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카글리아가 아니라 파사칼리아(passacaglia)지. G는 묵음이야."
헨델을 듣는 중에 앞줄의 몇몇이 파사카글리아가 어쩌고 하는 소릴 귀 밝은 준하가 듣고서는 빈정댔다. 또 한 회원이 귀국길에 사들여온 축음기로 발터(bruno walter)의 모차르트를 돌렸는데, 준하는 스타일러스(stylus), 그러니까 전축 바늘에 대해서도 알았다. 준하는 자신만만하고 옹골찼다.
우리는 '예육회'라는 단체에 속해있었다. 예육회는 동아리 같은 성격도 있었지만 가끔은 스폰서를 구비해서 콩쿨을 열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음악을 듣는 친목단체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 말고는, 딱히 공통분모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준하는 작곡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고, 나는 철학을 전공하는 휴학생이었다. 경옥 누나는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대학생들도 서너 명 있었던 것 같다. 아, 서양화를 전공하던 회원도 두 명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녹향'이라는 음악 찻집에 앉아 바흐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 온갖 음악을 들었는데 녹향에 앉아 듣는 음악은 대부분 다 좋았다. 하지만 도무지 감정이 잡히지 않는 곡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였다. 나중에야 '밤의 음악의 표본'이라며 몇몇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게 되었지만 지금에도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즐겨 듣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띄엄띄엄 나타나던 준하는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고 나서 오랜만에 녹향에 나타났다. "러시아로 갈까 봐." 지휘 공부를 위해 러시아행을 선언한 그날이 준하를 본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는 예육회의 그 누구도 다시 준하를 만나지 못했다. 그날 준하는 브람스에 관한 얘길 해주었다. "브람스는 D학점이야. 기말 작곡 시험에 내가 브람스 4중주를 그대로 베껴서 제출했거든. 그 단발머리가 D를 준 거야. 브람스인 줄도 모르고."
단발머리는 귤 피부를 가진 50대 초반의 작곡과 학과장이었다. 그렇게 브람스에 D를 받아주고서 준하는 러시아로 떠났다.
어젯밤 TV를 켰는데 놀랍게도 드라마의 제목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주인공은 로베르트 슈만(R. Schumann)의 트로이메라이(Traümerei)를 연주한다. 주인공은 호로비츠가 수십 년 만의 귀국 연주에서 청중을 눈물짓게 했던 그런 느낌으로 연주했다. 내게 브람스는 교향곡이나 인터메조(Intermezzo) 같은 피아노 소품이었지만 준하에게는 고전주의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사실 브람스보다 슈만의 팬이었다. 슈만의 '숲의 정경'을 특히 좋아하고 '외로운 꽃(Einsame Blumen)'은 미친 듯이 좋아했다.
고전미의 최극단은 환상에 있었다. 바로크든 고전주의든 출발은 도발적이었지만 지쳐버린 고전주의는 권위주의적 양식에 다름 아니었을지 모른다. 상징적으로 보자면 슈만은 그런 고전주의 속에서 고전주의를 탈출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그는 결국 미쳐버려서 미칠 듯이 아름다운 피아노곡들을 만들어냈고, '어린이 정경', '숲의 정경' 같은 곡들로 묶어 출판했다.
영화 '클라라(Clarara)'를 보면 첫 장면에서 슈만은 지휘를 하고 클라라는 남편의 협주곡을 연주한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면 슈만을 치료하기 위해 뇌에 전기적 충격을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끔찍하다. 고전적 출발과 환상적 결말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반듯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물어본다. 그러면서 문득, 그 단발머리 교수님의 헤어스타일이 슈만의 초상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단 교수님은 슈만을 더 좋아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