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소설집
하나님은 아주 좋은 마음을 선물하시도다.
성도들은 이 작은 은혜에서 큰 기쁨을 누리도다.
그렇도다.
그가 또한 죽음의 긴 고난의 길로 이끄시더라도
마지막에는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시도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참 잘하신 것이라
나는 지금 내 헛된 망상으로 쓴 잔을 맛보아야 하지만
결코 놀라지 않을 것이라
왜냐하면 주의 달콤한 위로로
내 마음이 기뻐할 것이기에
여기서 모든 고통이 사라지리라.
- 바흐 교회 칸타타 75번 (BWV 75)
해가 지고 있었다. 먼 서쪽으로부터 내가 선 옥상까지 넓고도 긴 석양이 드리웠다. 한여름이라곤 하지만 평소보다 더 느지막이 내려앉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빨래를 걷는 내 움직임까지 느긋해졌다. 깡마른 빨래들을 하나둘씩 걷어 내려서는 왼 팔뚝에 걸쳤다. 낡고 닳았지만 거무튀튀한 아버지의 작업복이 그중 묵직했다. 누렇게 색이 변한 엄마의 속옷들이며 빛이 바래고 흐물흐물해져 버린 내 청바지도 걷어 내렸다. 해가 잘 드는 맨 바깥 줄에 걸어 두었던 오빠의 하얀 셔츠들에는 아직 한낮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셔츠들은 곧 다려야 할 참이었다. 조금이라도 구겨진 오빠의 셔츠며 바지는 엄마가 못마땅 해 했다.
엄마는 해가 지기 전에 들어와 풋내 나는 배추들을 구겨 넣고 국을 끓이고 있었다. 얼큰한 배춧국 냄새가 빨래를 걷고 있는 옥상까지 올라왔다. 오빠는 매운 국을 좋아했다. 사내로서 별나게 하얀 얼굴을 가진 오빠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식성이었지만 엄마는 오빠의 식성을 내켜했다. 그때껏 아버지의 식성도 오빠와 같았는지는 잘 몰랐다. 아버지는 늘 별다른 말없이 국을 삼키곤 했으니까.
빨래를 다 걷고 나니 기분이 묘해졌다. 걷은 빨래를 평상 위에 내려놓고서 다시 서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 아래 먼 도시는 석양에 온갖 조명들이 어우러져 들꽃이 흐드러진 산처럼 보였다. 동네 가까이 움푹 팬 낮은 지대의 주택가에는 생채기의 표식인 양 붉은 십자가들이 어지럽게 박혀 있었다. 무슨 십자가가 저리 많담. 십자가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삐쭉한 것도 있고 가로가 보통 이상으로 짧은 것도 있었다. 색깔도 조금씩 달라 보였고, 빛을 받지 않았는데 번쩍이는 것도 있었다. 오빠가 밤이면 밤마다 듣는 음악들이 십자가들과 겹쳐졌다. 오빠는 성가 같은 노래들을 늦은 밤까지 매일 들었다. 언젠가 오빠는 그 음악이 ‘칸타타’라고 내게 말해 주었다. 칸타타 칸타타 하고, 오랜만에 중얼거리며 평상에 앉았다.
평상을 마당으로 들이던 날, 엄마와 아버지 나 셋이서 마루에 나란히 앉아 오빠가 학교에 돌아오기를 기다려 새 평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신문지에 둘둘 말린 채 핏기가 어리고 비린 돼지고기였지만 그때만큼 맛나게 먹은 적도 잘 없었다. 엄마는 오빠의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고, 아버지는 돼지기름을 내려받아 허옇게 굳도록 식힌 다음 밥을 비벼 먹었다. 살코기는 대부분 오빠 차지였지만 오빠는 한 점, 두 점 내게 미뤄주었다.
옥상으로 옮겨져 더 보기 싫게 낡아버린 평상에 앉아 있으려니 엄마가 소리를 지르듯 물어왔다.
“네 오빠는 아직이니?”
나는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하지 않았고, 듣지 못한 척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전화 좀 해 봐, 저녁도 안 먹고 아직 사무실인가 보다.”
아들과 텔레파시라도 통하는지 엄마는 확신에 차서 빠르게 말했다. 빨래를 내려놓고서 마루에 걸터앉아 오빠의 휴대전화 번호를 꾹꾹 눌렀다. 마지막 숫자를 눌렀을 때쯤 오빠는 반쯤 열린 대문을 슬쩍 밀치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나는 멍하니 오빠를 쳐다봤다. 오빠의 주머니로부터 흔해빠진 벨소리가 울려 나왔다. 내가 건 전화가 시차를 두고 오빠의 휴대폰 벨을 울려대는 것이었다.
오빠의 한쪽 손에는 고동색의 작고도 낡은 서류가방이 들려있었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그랬듯 다른 한 손에는 널찍한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레코드가 들어있을 것이 뻔했다. 그래도 그날따라 비닐봉지가 가벼워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오빠가 들어선 마당이 그다지 좁아 보이지 않았다. 오빠의 키는 180센티미터가 넘도록 컸고 마당은 오빠가 드러누우면 꽉 찰 만큼 좁게 느껴졌었다. 어느 날부터 그랬던 마당이었다.
멈춰 선 오빠는 부엌으로 눈을 돌렸다. 오빠는 부엌에서 내다보는 엄마에게 눈으로 인사를 했다. 레코드가 꽉 찬 비닐봉지를 든 날이면 늘 그래 왔듯 오빠의 얼굴은 미안해하면서도 약간은 상기되어 있었다. 언젠가부턴 느긋해질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빠는 그러질 못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오빠의 표정이 알 듯 모를 듯 평소와는 다른 것도 같았다. 방문 앞에서 잠시 멈칫거린 오빠는 힐끗 나를 돌아보고서는 곧장 방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댓돌 위에 덩그러니 놓인 오빠의 남루한 갈색 구두를 한참 쳐다봤다. 구두는 서로 토라지듯 브이자로 흩어져 있었다.
*
낮에 있었던 공장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봉제인형을 만드는 공장이라야 뻔한 것이 좁은 공간 안에서 많은 먼지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위까지 더해졌으니 한여름에도 코끝이 간질간질하고 맹맹했다. 늘 두통에 시달리고 목이 칼칼했다. 에어컨은 공장장의 방에나 있었고 작업장에는 벽에 달려있는 선풍기 두 대가 다였다. 공장의 직원이 모두 열한 명이니까 대략 다섯 명당 선풍기 한 대 꼴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틈날 때마다 물을 마시거나 더위를 식히기 위해 휴게실로 가기에는 눈치가 보이곤 했다. 휴게실과 공장장의 방이 미닫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따라 오전부터 더위를 타던 내가 물을 마시기 위해 휴게실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공장장이었다. 공장장은 휴게실 소파에 앉아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너희 오빤 요즘도 잘 나가냐? 동창회도 안 나오고 영 얼굴 볼 날이 없다야.”
공장장은 오빠와 중학교 동기동창이었다. 오빠는 공장장 얘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지만 공장장은 가끔 오빠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또 물어오거나 했다.
“오빠는 에어컨 술술 나오는 방에서 계산기나 두드리며 근무하지?”
공장장은 마치 자기 방에만 에어컨이 있는 것이 미안한 양 오빠를 빗대 이야기했다.
“오빠한테 시집보내달라고 해. 참, 너희 오빠도 아직 장가 안 갔지?”
나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그리고 공장장에게 등을 돌린 채 물을 따랐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오빠라 ……, 배가 고파도 밥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먹는 것조차 포기해버리는 오빠가 계산기를 두드린다고? 쪼잔하게 그 작은 버튼들을 두드린다고? 하긴 오빠는 밥상을 차려주지 않는다고 언짢아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밥 차려줘?’하고 물으면 오빠는 ‘난 밥 따위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듯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밥도 귀찮아하는 사람이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서류를 뒤적이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빠는 저녁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서 양치질을 했다. 양치질을 끝낸 오빠는 언제나 그랬듯 자기 방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엄마는 오빠의 등을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오빠의 등은 오빠가 좋아하는 레코드들의 재킷처럼 네모나고 널찍했다. 무어 잘난 아들이라고 그리 조심스러운지,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오빠가 못내 대견스러웠던지 숟가락으로 배춧국을 떠올리다 말고 평온한 미소로 닫혀버린 오빠의 방을 바라보았다.
지난 주말 오빠는 끝내 맞선 자리에 나가지 않았다. 오빠는 무심했고, 엄마는 그런. 오빠를 나무랐다. 오빠가 없는 자리이긴 했지만 엄마가 그토록 오빠에게 화를 내는 모습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엄마는 시래깃국을 얼큰하게 끓이며 퇴근하는 오빠를 기다렸다.
엄마는 근 며칠 동안을 침이 마르도록 맞선 자리에 나올 여자를 칭찬했다. 여자는 직업이 없다가 막 생겼는데 직업의 유무와는 무관하게 돈이 많은 집의 외동딸이었다. 여자의 아버지는 인근에서 소문난, 흔히들 말하는 부동산 졸부였다. 인물이 그만하면 썩 괜찮다고 엄마는 몇 번을 얘기했지만 오빠의 피부보다 더 까만 피부 하며 오빠의 어깨에도 못 미칠 작은 키를 나는 알고 있었다. 어느 해 겨울부터 동네 저 아래에 주유소를 차린 여자의 아버지가 외동딸을 주유소에 데려다 놓은 것을 나는 출근길에 종종 보았었다.
그 주유소의 이름은 ‘미선 주유소’였는데 ‘미선’이 그 여자의 이름인가 보았다. 여자는 주유소에서 소장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 이듬해 봄부터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고, 결국 일을 그만둔 모양이었다. 그 여자가 어떤 여자 인가와는 별개로 오빠가 과연 엄마의 청을 거절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것도 내 관심사였다.
그 집에서 먼저 오빠를 탐냈는지 엄마가 그 집으로 하여금 오빠를 탐내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빠의 맞선은 주선까지만 성공적이었다. 오빠가 그 특유의 무심함으로 보기 좋게 거절한 후에 나는 엄마나 아버지 또 내가 오빠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화를 내거나 할 자격은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좋은 명문대를, 그것도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법대를 다녔다. 법대를 나왔으니 졸부 집안에서 탐을 낼만 했다. 물론 아닐지도 몰랐다. 우리 집이라 해봐야 오빠밖에 내세울 게 없었고, 오빠라 해봐야 그 빛깔 좋은 학벌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오빠는 그 대학의 법대에서 반 수 이상이나 해낸다는 고시에 최종적으로 실패했다. 2학년 때던가 3학년 때던가 오빠는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다. 결과가 나오던 날 아버지는 기분이 얼마나 좋았던지 들고 있던 미장 도구를 던져버리고 집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래도 엄마는 파출부 일을 다 끝내고서야 들어왔다. 엄마의 표정은 달콤했다. 그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아들은 의연한 어깨로 엄마의 미소에 답했다. 그로부터 꼬박 7년 동안 오빠는 아무런 시험에도 합격할 줄을 몰랐다.
오빠는 담담했다. 실패가 거듭되던 그 어려운 시절을 오빠가 어떻게 보냈는지, 오빠의 표정을 보고서는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고시에 실패했을 때조차 오빠는 그저 다른 시험을 쳐보겠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오빠 같은 천재가 어떻게 시험에 붙지 않을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담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점점 오빠처럼 담담해할 수 없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
오빠는 결국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 오빠가 첫 출근을 하던 날은 기억나지 않지만 첫 월급을 받던 날은 지금도 또렷하다.
오빠는 큼직한 박스를 몇 개나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나 아버지에게 줄 선물이 아니었다. 물론 내게 줄 선물도 아니었다. 가까스로 박스를 든 오빠 뒤로 다른 박스를 든 사람이 뒤따랐다. 둘은 각기 몇 개의 박스를 들고 힘겹게 집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오빠를 뒤따른 사람은 택시기사였다. 택시기사와 오빠는 대문간 안으로 그 박스들을 부려놓고서는 다시 계단들을 밟아 골목길을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 뒤 그들은 같은 모양으로 또 다른 박스를 대문 안으로 들여놓았다.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나는 그 모습들을 마당에 서서 지켜보았다. 오빠는 겸연쩍게 웃더니 그 박스들을 하나 둘 자신의 방으로 옮겨갔다. 모두 예닐곱 덩이였던 것 같다.
“그게 뭐니?”
엄마가 묻자 오빠는 우물쭈물하면서,
“아무것도 아니에요.”하고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방으로 박스들을 들여간 오빠는 방문도 닫지 않고 박스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오빠의 첫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엄마와 아버지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첫 월급으로 사 올 선물을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그날로부터 매달 일정한 돈을 오빠가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막연하게나마 오빠의 월급이 끊이지 않는 한 우리 네 식구가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그 행복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을 우리 가족은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내용물을 꺼낸 빈 박스가 마당으로 던져질 때까지도 나는 첫 월급에 대한 뻔한 기대를 버릴 수 없었다. 못해도 엄마와 아버지의 내복은 사 왔겠지 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앞으로 행복해지리라는 믿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같았다. 하지만 오빠가 박스에서 꺼낸 것은 기계 덩이들뿐이었고 마당으로 내던져진 박스에는 기계를 감쌌던 포장지 외엔 아무것도 더 들어있지 않았다.
우리는 열린 방문 사이로 얼마 동안 오빠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곧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엄마와 나는 마당에 선 채 오빠의 방안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빠가 박스에서 꺼낸 것은 정녕코 몇 덩이의 기계 뭉치와 두 덩이의 큼직한 나무통뿐이었다. 그것이 오디오이고 스피커인 줄은 나중에 알았다. 내가 토라진 척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을 때에도 엄마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오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마저도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 후에도 나는 몰래 오빠를 지켜보았다. 그때부턴 그 오디오란 것에 눈길이 갔다. 기계치고는 얼마나 예뻤던지 팽개쳐진 박스도 멋지고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둥그스름한 나무는 결이 참 고왔다. 그 큼직한 나무판 위에 은색 판이 하나 놓이고 그 위에 전구처럼 생긴 네댓 개의 진공관이 꽂혀 있었다. 진공관이란 것도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날 밤 나는 진공관에서 정말 가녀리고 예쁜 불빛이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빠의 방 안에는 복잡하게 얽힌 선들이 늘어지게 깔렸다가 제자리를 찾아갔다. 앰프라 불리는 그 두 덩이의 오디오는 오빠의 책상 왼쪽에 나란히 앉혀졌고 그 앰프 옆에 레코드를 작동시키는 턴테이블이란 것이 곱상하게 놓였다. 그리고 스피커 중 하나는 책상 오른쪽으로, 나머지 하나는 얼마간의 고민 끝에 그 모서리의 반대편에 놓였다.
오빠는 방바닥을 손으로 대충 쓸고 나서는 손을 털면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다시 허리를 숙여 법전들이 꽂힌 책꽂이의 맨 아래 칸에서 레코드 한 장을 꺼냈다. 그 레코드는 오빠가 벌써부터 사둔 모양이었다. 레코드의 재킷에는 귀엽게 생긴 소녀천사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천사는 하늘을 바라보듯 재킷의 모서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는 레코드재킷을 감싸고 있던 비닐을 뜯어냈다. 그리고는 재킷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고, 다시 그 종이봉투에서 까만색 레코드를 꺼냈다.
그때 나는 오빠의 뒷모습을 눈여겨보았다. 뒷덜미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고 무거운 것들을 들고 날랐던 팔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의 움직임은 오디오를 설치할 때보다 더 느려진 것 같았다. 레코드를 꺼내고 들을 준비를 하는 오빠의 모습에는 시간이 정지된 공간에서나 느껴질 법한 독특한 기운이 있었다.
오빠는 무릎을 꿇은 채 오디오로 다가갔다. 그리고 레코드를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레코드는 돌아가기 시작했고 오빠는 레코드를 읽어내는 바늘을 조심스럽게 레코드 위에 올려놓았다.
해는 여전히 질 듯 말 듯했다. 빛들은 뻑뻑하고 습기 가득한 공기를 뚫고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마당 한편 오빠의 방에서 시작된 조그마한 소리가 마당의 빛과 어우러져 무언지 모를 투명하고도 큰 음향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악기들의 소리 속에서 높고 높은 목소리가 곱게 뽑아져 나왔다.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이 뽑혀 나오듯 말이다. 나는 ‘참 좋다’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공기가 맑아지는 것만 같았으니까.
내 방 문틈으로 마당 건너편 오빠 방을 지켜보던 나는 방에서 나와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오빠는 음악이 끝나자 바늘을 내려놓고 레코드를 뒤집었다. 그리고는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자기 방의 방문을 닫으려 했다. 그 순간, 나는 오빠의 눈빛을 보았다. 행복에 겨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난감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날 이후 3년 동안 나는 오빠의 그 눈빛을 마주쳐야 했다.
그날부터 오빠가 듣기 시작한 그 음악이 바흐의 칸타타였다. 나는 언젠가 구립도서관에 가서 칸타타가 무엇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바흐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이가 작곡한 그 음악을 알고 싶었다. 오빠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엄마나 아버지의 길고 길었던 세월을 보상해주지 못하게 만든 바흐의 칸타타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내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바흐의 칸타타는 200곡이 넘는다고 했다. 하지만 오빠는 5천 장 가까운 레코드를 사들였다. 그 레코드가 지금은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지만 칸타타 음반이 아닌 것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오빠가 들은 음악들은 모두 칸타타였다. 매일 밤 그 음악들은 하나 같이 비슷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