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여튼, 스트레칭(4)

by 현진현

좋아하는 광고가 몇 있다. 개취가 강하다 보니 그런 광고들은 과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개취는 개취답게 비대중적이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에서 라디오 CM을 만들었다. 10년도 더 지났던 것 같다. 맑은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 절간의 도랑, ㅎㅎ 도량의 도랑인가 보다. 징검다리다. 누군가(아마도 어린아이) 시내를 건넌다. 성우는 내레이션 한다. 여자의 맑은 목은 "하나"라고 소리를 낸다. 그리고 물소리만 들린다. (바람 소리도 들렸던가.) 무려 몇 초를 기다렸다. "둘"하고 소리를 낸다. 그랬다. 그것은 사상 초유의 사고 같은 RCM.

기억컨대 메시지는 '천천히 느리게 가라'는 투자에 관한 것이었을 것.

'하나'와 '둘'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자,라고 한다면 그건 스트레칭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사이를, 채워야지 하고 불안 비슷해한다면... 힘겹다. 비어있는 시간은 그 '비어있음' 그대로다. 그대로를 고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소요'다. 산책의 첫걸음과 두 번째 걸음 사이, 그리고 마지막 집으로의 귀환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사이에는 그녀와 나의 대화가 있을 뿐인데 알다시피 그런 대화는 대화 이상이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요컨대 내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왜 하나에서 둘 사이를 기다리지 못하는가?"

태어남과 죽음의 사이는 그토록 연장하려고 하면서 말이다.

아직도 그녀를 기다린다고 한다면 맹목적인가? 이미 그녀를 잊었다 하며 이렇게 떠올린다면 공허한 것인가? 사람의 기다림에는 무궁한 아름다움이 있다. 가수 '초아'가 다시 무대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기다림에도, 토요일 늦은 오후에 산 복권을 추첨하길 기다리는 기다림에도 무궁해서 자유로운 영적인 형태가 있다. 부디, 기다림을 즐기고 싶다.

PS : 요사이 흔한 유통, 배달에서 '주문'과 '배송', '반품'과 '처리' 사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그대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둥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