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고메모하기

여튼, 스트레칭(6)

by 현진현

나야 만년필 마니아이긴 한데... (주변에 연필 마니아도 있고 볼펜 마니아도 있긴 하던데) 필기구 찾아 헤매면서 꿈꾸는 (꿈만 꾸지 않기를) 게 몇 가지 있고, 그중 하나는 바로,

책에 밑줄을 그으며 책 속에 메모를 남기는 일이다.

이런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서는 책을 사고(팔지 않기로 맘먹고), 책을 읽고,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행위가 시퀀스로 구성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오늘 언젠가 빌려 읽었던 황현산 선생의 책을 구입하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특히 좋아하는 (당사자들은 그리 내켜하지 않겠으나) "쑥"은, 책을 거의 난도질하다시피 했다. 당시 씹어먹는다, 는 표현이 없었음에도 그런 표현을 썼던 것을 보면 책에 불이 붙지는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쑥을 지켜보았던 기억이 크게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쑥은 뭔가 꽂히는 구간에 이르러, 빨간 말보로 담배의 갑을 열어 빨리 타는 그 양담배를 피워 올렸다. 막 난도질을 마치고 양반다리를 한 채 담배를 맛있게 피우던 쑥의 표정은,

스트레칭 다음의 느긋한 표정 아니었을까.

그때도 그것을 무지 따라 하고 싶었지만 내가 보는 책과 쑥이 보는 책은 뭔지 달랐다. 때로 쑥이 내가 가진 책을 갖고 싶어 교환을 요청하면 들어주는 정도였는데 쑥이 좋아하는 책들은 음... 아주 깊고도 맑았다. 한 번은 쑥이 내 라이방을 가지고 싶어 했는데 그때 그것을 주지 못한 것이 지금도 조금 후회스럽다. 아마도... 그 선글라스를 쑥이 쓰고 책상에 앉아 있다면, 스트레칭의 시공간이 될 것이었는데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다시 만년필 얘기로 돌아가면... 내 성격을 빌어 해석해보자면 책에 남길 메모가 번지거나 필체가 유려하지 못하면 아니 되니, 나는 일본산 EF혹은 UEF를 찾아 헤맨 것임이 틀림없다. 언제든 메모할 수 있는 파일롯트 데시모 EF를 구하고, 나는 그만 창원에 남았다. 몇 자루의 필기구가 몇 백을 훌쩍 넘어... 아, 더는 집으로 가지 못했던 것이다. 스트레칭을 도모하기 위해 스트레칭을 포기하는 이런 행위는, 왠지 90년대 일본의 환경 윤리학자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논리와도 닮았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며 환경을 오염시키는 행위' 같은 것.

여튼, 스트레칭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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