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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Aug 16. 2021

기나긴 경쟁

-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컴투게더’라는 회사에서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 야근을 핑계로 가끔씩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저는 밤새 술을 마신다거나 사무실에 홀로 남아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밤 내내는커녕 일에는 조금 지지부진했다고 할 수 있겠고요. 일을 했다고 해도, 술을 마시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1층으로 옮긴 내 공간(물론 팀원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긴 하지만 진짜 방처럼 구분되어 있었습니다.)에 들어가서 후드 모자를 덮어쓰고 한두 시간 일을 했을 겁니다. 

그러던 어떤 날 아침, 아트 디렉터 무경이 출근 시간을 30분이나 넘어서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그의 안색이 창백했습니다. 출근 시간을 강요하지 않지만 늘 출근 시간을 맞추려고 하는 이 친구가 왜 늦었으려나 생각해보려는데 본인이 먼저 말을 건네 왔습니다. “팀장님, 출근길에 휴대폰을 잊어버렸어요. 그걸 찾아보느라 늦었습니다.” 그제야 그의 다급함이 느껴졌습니다. “전화는 해봤어?” 괜한 질문을 했다 싶었습니다만. “예,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네요.”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는다. 신호는 가는데… 결론적으로 무경의 아이폰4(5일 수도 있습니다.)는 제가 찾아주었습니다. 마치 제가 탐정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전화기를 잊어버리기 전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과 잊어버린 것을 알게 된 순간을 설명해보렴.” 무경이 침착한 양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타기 전에는 있었어요. 한데 버스를 타고나서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탔던 정류장으로 돌아가서 주변을 샅샅이 뒤졌어요. 인도에도 도로에도 없었어요.” 아이폰이 투명망토를 걸친 것도 아닌데… “잘 생각해봐, 정류장에서 버스를 올라탈 때 뭔가 떨어지는 소리는 듣지 못했어?” “모르겠어요,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탐정처럼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정류장에는 출근시간이라 사람들이 꽤 있었겠군. 그렇지?” 저는 사무실에 비치해 둔 오디오의 FM을 켰습니다. 때마침 바흐의 마태수난곡 중 베드로의 아리아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의 전주가 흘러나왔습니다. ‘때마침’이라는 건 그 아리아를 듣는 순간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이기도 했고, 뭔가  명탐정 진현의 테마곡 같은 느낌도 없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경에게 A4 한 장을 가져오라고 일렀습니다. 그리고 당시 회사의 사장이시던 한 사장님처럼 재떨이에 연필을 깎았습니다. 연필을 나름 늘씬하게  깎은 다음, 제 자리 옆의 소파를 가리키며 “앉아라 무경.”이라고 무경을 불렀습니다. 무경은 소파에 앉고 저도 자리를 옮겨 나란히 앉았습니다. 저는 A4에다 그릴 필요도 없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무경아, 잘 봐봐. 여기 인도와 도로 사이에 틀림없이 하수구가 흐르고 있을 거야. 틀림없어. 가서 봐. 이 하수구를 덮고 있는 덮개가 있을 것이고.. 이것을 열고 버스 진행방향 반대편으로, 반대편이야, 깊숙이 손을 넣어봐. 거기에 네 아이폰이 있을 거야.” 무경이 500원짜리 동전 같은 눈으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오늘 비 소식이 있으니까  얼른 가보는 게 좋을 거야.”하고 덧붙였습니다.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무경이 아이폰을 손에 쥐고 돌아왔습니다. 눈빛으로 “팀장님은 명탐정~” 같은 노래를 부른다고 느낀 건 아마도 착각이 아닐 겁니다. 

하수구가 있었던 것부터 신기했다고 무경이 말했습니다. (하수구는 그 길이 생기면서부터 늘 있었을 거야.) 그리고 하수구를 덮고 있는 구멍 뚫린 무쇠 덩어리가 너무 무거워서, 게다가 도로에 속해 있어서  구청의 담당자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무경의 보챔에 장비를 대동하고 나타난 구청의 직원은 가볍게 교통을 통제하고 곧바로 간단하게 하수구 덮개를 들어냈습니다. 무경은 버스 방향의 반대편에 굵은 팔뚝을 밀어 넣었습니다. 손이 바닥을 긁자마자 아이폰은 주인의 온기를 느꼈는지 진동을 하면서 반겼다고 하더군요. 
 

제가 무경과 지냈던 그 시절과 ‘필립 말로’와 ‘테리 레녹스’가 살았던 시공간은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장편의 초반에 등장하는 주차원의 말대로 당시 역시 “경쟁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경쟁의 시대가 아닌 시대는 없었어요. 산책로 집 앞만 나가봐도 모두 경쟁을 하고 있더라 같은 이야기는 좀 따분하겠지만 사실이고, 환웅의 시대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시대 이순신의 시대 칼 막스의 시대 YS의 시대 그리고 지금 시대 모두가 경쟁의 시대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탐정 소설을 읽고 이런 것을 느끼게 되지만 어쩐지 저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같은 말로 범죄의 시대 아닌 시대도 없었고 경찰은 늘 그렇고 검시관도 늘 그래 왔고 깡패도 늘 그래 왔고 갑부도 늘 그래 왔다는 거죠. 가끔 검찰과 사법부까지 합세해서 역할을 서로 맞바꿔 수행하기도 합니다만. - 경쟁은 범죄를 불러일으킨다고 가정할 수 있겠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요만. - 어찌 되었던 최소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만 한탄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툭 하고 돌이켜보면 뭐든 있었던 것들이 처음처럼 덮쳐오는 거란 말이죠. 


주워듣기로는,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의 이 장편 [기나긴 이별]에서의 필립 말로가 가장 수다스럽다고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말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렇다 치고 무엇보다 말로는 기름지면서도 깔끔한 비유를 쏘아댑니다. 이런 말도 내뱉습니다. “인간의 재능을 이보다 더 정밀하게 낭비하는 경우는 광고 회사를 제외하고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그 대상은 ‘체스’입니다.) 밑줄을 치고 싶은 수많은 레토릭들이 있어서인지 챈들러의 작품을 ‘추리’라고 해야 할지 ‘탐정’이라고 해야 할지 ‘문학’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말로는 이런 말까지 주워 삼키니까요. - “이별을 할 때마다 조금씩 죽어가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아마도 영어 원문으로 이 ‘롱 굿바이(The Long Goodbye)’를 세 번 읽었을 겁니다. 세 번쯤 읽으면 몸에 배기 마련인데 저는 번역본으로 한 번만 읽어서인지 어떤 요소가 하루키에게 영향을 준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넷플릭스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금의 작가 지망생들도 세 번쯤 읽으면, 하루키까지는 아니어도 90년대의 극작가만큼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에 김무경에게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그가 다시 내 팀으로 와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인데 그는 고향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다 건너 고향까지 왜 갔는지는 물어보질 못했습니다. 왠지 당장에라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통화하는 동안 저는 실제로는 만나보지 못한 머리칼이 긴 그의 아내가 제주의 바람에 날리겠구나, 또 그들 사이에 태어난 어린아이가 얼마나 귀여울까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무경은 디자이너라 그런지 아주 감각적이었습니다. 유행에도 민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무경은 차분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의 무경은 어떤지 참 궁금합니다. 세상의 경쟁과 부패는 세상의 이치만큼 늘 그대로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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