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독한 사랑에 빠져있었음이 틀림없다

라이프스트레칭 045

by 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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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을 받으면 CD를 사거나 LP를 샀다. 2000년 2월, 첫 월급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샀다. 단 한 장도 읽지 못했다. (그 초판본 전집을 몇 주 전에 중고장터에 팔았다. 그리고 잠시 울었다.) 가끔은 오디오를 들였고 오디오는 CD의 100장 값이거나 LP의 서른 장 값이었다. 음반을 듣기 위해서 정신을 차렸는데 회사일이 바빠 도대체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코드들은 짐이 되고 캠핑에 취미를 붙인다거나 하여... 요컨대 샀던 책을 다시 사게 된 이유처럼 내 방에 이 음반이 있었다니, 하고 놀라게 된다. 아무거나 집어 든 아침, 첼리비다케가 도쿄에서 지휘한 브람스 4번이었다. 음악이란 이런 것이었지 하며 스피커 앞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책상머리에서 듣기에는 풍부한 것들, 그 풍부한 것들은 80년대였다. 그리고 70년대, 90년대, 2000년대... 풍부하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다. 도통 알 수 없는 옛 가수 옛 노래가 나오면, 틀림없이 그 옛 시절 우리는 지독한 사랑에 빠져있었음이 틀림없다. 음반마다 메모를 적던 시절이 그립다. 그랬다면 그 지독한 사랑의 대상을 기억할 수 있을 텐데... - 4악장의 파사칼리아에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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