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해 질 녘에 아주 오랜만에 꺼내 든 RF 필름카메라
15년쯤 된 흑백필름을 넣고 천변 산책 겸 출사를 나섰지.
오래된 필름이니까 조리개를 확 열어야지 생각한 다음,
아마도 나는 조리개를 확 조였던 거 같아.
나중에야 조리개를 확인한 나는 말했다.
"이렇게 멍청해서 어쩌지?"
아내 역시 반혼잣말로 말했다.
"정말 멍청함을 걱정하는 거 같아. 진정성이 묻어나네요."
2
아름답고 멋진 스피커를 보았다. 사진 속에서.
그 사진은 10여 년 전 내 방을 담고 있었다.
'대체 저 스피커는 왜 판 걸까...'
저 매킨토시 앰프는 왜? 왜? 왜?
세상에 60만 원 하는 매킨토시 인티앰프가 어디 있냐고!
지금 내 방, 스테레오는커녕 뚱땅뚱땅 하는 블루투스,
키스 자렛 아저씨에게 미안해집니다.
3
내 아름다운 커스텀 기타를 팔았던 사실은,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가 않다.
저를 멍청함에서 구출해 주십시오. 주여.
(사진은 2006년의 로사리오 성당, '마티스흔'이 진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