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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Aug 17. 2024

생각하는 연습

가난한 자의 라이카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야시카일렉트로 35와 롤라이 35입니다. 




1

나는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지금도 오래된 AR-XA라는 턴테이블로 마일즈데이비스의 저명한 레코드 '카인드오브블루'를 듣고 있습니다. 


어떤 책에서 읽었어요.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가게에 가서 물건을 구매하는 건 '사람으로부터의  구매'라는 의미라고. 



2

십여 년도 더 전에 강남 교보문고의 음반코너는 꽤 컸습니다. 당시 나는 재즈를 그렇게 즐기지는 않았지만 그날따라 재즈음반들을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유니폼을 입은 간부급?(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직원이 오더니 제게 음반을 소개하더군요. 카산드라윌슨의 신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몇 가지 질문도 제게 했었어요. 그러더니 엘피(LP)를 듣냐고 묻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니까... 

에릭트루파즈의 신보 LP를 가져와서는, 카산드라윌슨의 CD와 함께 그 LP를 선물하는 거예요.(본인이 계산을 하더군요.) 그날 처음 본 '손님'인 제게 말입니다. LP를 듣는 사람이 그렇게 반가웠나 봅니다. (그날 이후 에릭트루파즈의 팬이 된 저는, 훗날 에릭트루파즈의 공연에도 가게 되죠. 나도 선물을 해볼까 해서 그 직원을 찾아간 건 한참 지난 후의 일인데... 인상착의를 말해도 다른 직원이 특정하지는 못해서 결국 못 찾았습니다.) 



3

어제  중고카메라를 사러 인천의 상점에 갔었어요. (본래부터 사러 건 건 아니고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필름카메라 바디가 문제가 있었는데 휴일이고 상점은 문을 열었다고 해서 반품도 할 겸 구매도 할 겸이었어요.) 하지만 이 가게는 결제가 인터넷에서만 이루어지더군요. 오프에서 만났지만 현금이나 크레디트카드를 건네지는 못했습니다. 



4

카메라를 사러 간 김에 제 오래되고 고장이 의심되는 야시카일렉트로 35를 수리 맡겼습니다. 이 상점은 아마도 '택배로 보내드릴까요?'라고 전화도 아닌, 카카오톡채널이라는 매개로 연락을 취해오겠지요. 디지털? 혹은 현대의 인터넷으로 이루어지는 상거래 등은 시간을 압축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의 압축은 생각의 상실 같습니다만...



5

문득 아날로그는 시간낭비가 아니라는 생각. 

그 시간은,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몸이 생각하는 시간 정도로 해두고 싶습니다. 

사우나탕에 들어가야만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되는 나로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다시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6

인천에 간 김에 친애하는 후배 최*석 카피라이터를 만나서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먹은 것은 간단한 스테이크와 맥주 한 모금, 두어 모금...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뒤섞인 세상입니다만 잘 모르겠고, 우리는 만나고 먹고 대화하고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한 것 같았습니다. 



7

아, 나는 저 사진 속의 롤라이 35를 사 왔습니다. 상점에서 인터넷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결제를 한 거지요. - 내가 부자가 아니고 또 그다지 가난하지도 않지만, '가난한 자의 라이카' 두 종의 카메라를 모두 가지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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